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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안병호 위원장의 <최후의 증인>

이런 영화가 있었네!

감독 이두용 / 출연 하명중, 최불암, 정윤희, 한혜숙 / 제작연도 1980년

옛날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요즈음은 좀 뜸해졌지만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주 찾았다. 안국역 근처의 아트선재센터 시절부터 낙원상가 옥상을 거쳐 지금의 서울극장 자리까지, 영화가 고플 때 자연스레 발길은 그곳을 향했었다. 처음 시네마테크를 찾을 때만 해도 반은 의무감으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영화사에 길이길이 회자되고 있는 영화니 나에게도 길이길이 남겠지 싶었다. 몇몇 영화들은 시대를 넘은 감동을 전하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그저 봤다는 데 의의를 두기도 했었다. <최후의 증인>을 만난 것도 서울아트시네마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서였다. 그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옛날 영화들은 외국영화들이 대부분이어서 한국영화 상영 소식이 반갑기도 하고, 복원판이라고 하니 궁금하기도 했다. 사정을 들으니 1980년 개봉 당시 검열로 인해 154분의 원본이 이리저리 잘려 100분으로 개봉됐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다른 영화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두웠다. 어두운 화면에 불만을 가질 법한 이들을 의식했던지 “얘기도 어두운 얘기, 화면도 어둡다. 80년대엔 이러한 어둠이 사라졌으면 한다”로 마무리되는 자막은 시작부터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두건의 살인사건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한 형사에게 사건이 맡겨지고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형사 역으로 하명중 배우가 나오고, 지금 영화에서 접하는 형사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웅크린 듯 구부정한 자세, 곱슬머리에 긴 코트, 그다지 실용적일 것 같지 않은 작은 가방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한국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어 흡사 반공영화의 느낌마저 들었다. 그 와중에 관련 인물을 하나하나 수사해가면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건 수사로 시작된 이야기는 진실을 파헤치는 데 초점이 모아지고, 수사에서 탐사로 자연스레 옮겨가면서 형사가 아닌 기자 같아 보이기도 한다. 형사의 친구로 기자가 등장하나 기자로서의 도움이 아닌 돈을 빌려주거나 좋은 호텔에서 묵게 하는 등 돈줄 역할을 하고 있고 정작 탐사는 형사가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영화를 소개하기로 한 것은 결말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한국영화에서 이런 결말도 가능하구나 싶었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원본이 반 이상 잘려나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릴러로 시작된 영화는 진실을 찾는 형사로 인해 탐사가 되었고, 영화는 끝내 인간적으로 마무리된다.

영화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은 영화 현장의 노동환경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눈 기자로부터였다. 영화 현장의 노동환경이 아니라 영화를 소개해 달라고, 가볍게 쓰면 된다고 가볍게 전했다. 인생 영화에 대해 생각한 지도 오래되었다. 지금은 스크린 앞보다 스크린 뒤, 카메라 뒤가 더 궁금하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영화 일을 시작했고, 영화 만드는 현장이 더 인간적이길 기대했다. 몇년 사이 점점 나아진 현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영화를 보고, 영화 일을 하고, 일하는 곳이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 어쩌면 또 다른 시네필의 정의가 될 수도 있겠다. <최후의 증인>은 결말이 결말인지라 말을 아꼈다. 한국영화의 재미와 어두운 영화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찾아보길 권한다. 80년대 한국영화엔, 이런 영화도 있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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