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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스토리4>가 기존 3부작을 계승하면서 차별화된 재미를 만들어가는 방식
임수연 2019-06-26

버릴 것은 버려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버즈(팀 앨런)를 더 사랑하는 팬들에겐 서운할 수 있는 진실 하나.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내내 우디(톰 행크스)의 성장담이었다. 앤디(존 모리스)의 새로운 선물이 도착할 때마다 자리를 뺏길까 걱정하고 버즈를 질투하던 우디가 진정한 우정을 배우고(<토이 스토리>(1995)), 언젠가 어린이에게 버림받을 것이라 두려워하던 그가 행여 그런 날이 온다 해도 현재에 충실하리라 마음먹으며(<토이 스토리2>(1999)), 비로소 찾아온 이별을 성숙하게 받아들인다(<토이 스토리3>(2010)).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인간에 의지하는 숙명을 안고 태어난 장난감이 언젠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상시적 두려움에 대처해나가는 우디의 긴 여정이다.

9년 만에 찾아온 후속편은 우디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토이 스토리4>는 시리즈를 아울렀던 ‘잃어버린 장난감’(Lost Toy)의 이미지로 문을 연다. 우디와 그의 친구들이 폭우에 쓸려갈 위험에 처한 RC카를 가까스로 구출하지만, <토이 스토리3>에서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고 대사로만 언급된 보핍(애니 포츠)과 그의 양들– 빌리, 고트, 그러프- 은 급작스럽게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앤디에게 장난감을 물려받은 보니(매들린 맥그로)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한다. 그는 우디에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우디는 선택받지 못하는 상황에 폭주하던 1편의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고, 어린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 유치원에 가기 두려워하는 보니를 위해 몰래 예비 소집에 동행한 그는 플라스틱 눈알과 반짝이 풀, 파이프 클리너와 포크 숟가락으로 조립한 포키(토니 헤일)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함께한다. 보니의 사랑 덕분인지 포키는 다른 장난감처럼 생명력을 얻었지만, 어쩐지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보니의 가족이 자동차 여행을 떠나던 날 캠핑카에서 탈출한 포키를 설득하기 위해 우디는 그의 뒤를 쫓는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납치당하고 장난감 군단이 구출한다”

“누군가가 납치당하고 장난감 군단이 구출한다”는 시리즈를 아우르는 플롯은 이번에도 반복된다. 클리셰를 교란하는 것은 “애들은 늘 장난감을 잃어버린다”며 버려지는 상황을 침착하게 받아들였던 보핍의 재등장이다. 그는 주인이 꼭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우디의 신념과 전편의 전제를 뒤흔든다. 우디는 “중요한 건 어린이의 사랑을 받고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시리즈 내내 동료들을 설득해왔고, 설득당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앞선 3편의 영화에서 장난감이 인간에 종속되는 것은 당연한 전제였다. 영화의 경쾌한 분위기에 망각하기 쉽지만, 이는 자의식을 가진 생명체에게 꽤나 잔인한 설정이다. 태생이 제멋대로인 인간은 앤디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장난감을 성심껏 사랑하지 않는다. <토이 스토리3>가 쓰레기 소각장에서 추락을 앞둔 장난감들의 모습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결말을 염두에 둔 적이 있다는 에피소드가 충격적이지만 수긍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인간의 변심에 상처받은 장난감은 2편의 제시(조앤 쿠색)가 그랬듯 앤디 같은 선인에게 구원받거나, 3편의 랏소(네드 비티) 같은 악역이 되어 우스운 결말을 맞이한다. 어린이에게 유통 기한이 있는 사랑을 받는 삶과, 즐겁지 않지만 영원할 수 있는 삶 사이의 양자택일을 요구한 <토이 스토리2>에는 장난감이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선택지가 배제되어 있었다. 보핍은 1편이 나온 지 24년 만에 그 길을 택한 최초의 장난감이다. ‘잃어버린 장난감’들이 굳이 앤디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었다는 진실이 비로소 제시된다.

인간이 만든 세계에서, 주인공들의 실존적 위기가 인간에게서 비롯되면서, 정작 인간으로부터의 자유를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위선이다. 이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는 한 앞선 시리즈에서 우리가 장난감의 심정을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은 ‘인간 입장’에 대입한 결과물이거나 일방적인 연민에 불과하다. 조시 쿨리 감독은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연출을 맡은 나에게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해 질문하고, 무언가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고 말한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우디가 앤디의 부재한 아버지를 대신한다는 오래된 해석의 영향일까, 장난감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항상 그들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토이 스토리4>가 버린 것은, 장난감은(그들이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인간과 늘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는 전제 자체다.

흥미로운 것은, <토이 스토리4>에서 우디가 각성하는 과정은 포키의 정체성 찾기와 병행된다는 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존재 목적이 있다. 장난감은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생명을 얻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 또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데 있다고 깨닫는 포키의 여정은 일견 우디의 서사와 대치된다. 하지만 막 태어난 그가 “신생아 같은 존재”(마크 닐슨 프로듀서)라는 점을 상기할 때, 포키는 우디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보니는 괜찮을 것”이라는 버즈의 말을 듣고 비로소 모험을 떠날 용기를 얻는 우디는 쌍방향적인 감정 교류가 한 실존체의 삶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음을 포키를 통해 재확인한다. 우디가 우연히 발을 들였다가 위기를 맞이하는 공간, 세컨드 찬스 골동품 가게에서 만나는 개비 개비(크리스티나 헨드릭스)는 공장에서부터 결함 있는 장난감으로 태어났다. 그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사랑’에서 존재 의미를 찾는 존재다. 누군가는 보핍처럼 자유를 갈망하지만 누군가는 다른 이와의 관계로부터 존재 이유를 확립한다.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선택지 중 원하는 길을 스스로 찾을 기회가 우리의 장난감 친구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토이 스토리4>는 어느 한쪽만이 옳다는 납작한 결론을 내놓거나, 모두가 깊은 철학적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장난감 군상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다양한 방식의 가능성을 점친다. 자신의 ‘진심’을 고민하던 우디와 달리 버즈의 ‘마음의 소리’는 버튼을 누르면 랜덤으로 나오는 메시지로 치환돼 유머로 작용한다. 시리즈의 전제를 뒤흔드는 우디의 선택은 그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복잡한 캐릭터였기에 성립 가능하며, 보핍의 전복적인 캐릭터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실현된다.

새로운 세대에 숨을 불어넣은 속편

전편의 성립 조건을 뒤집지만, <토이 스토리4>가 전편의 영광까지 부정하는 프로젝트는 아니다. 공교롭게도 <토이 스토리>의 중심에 있는 우디부터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래된 장난감 아닌가. 1, 2편의 연출을 맡고 디즈니-픽사의 최고창작책임자(CCO)를 역임했던 ‘픽사 1세대’ 존 래시터가 “우디와 보핍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겠다”고 한 아이디어가 중심 줄기를 이루고, 최초에 공동연출로 거론된 그는 8명의 스토리 크레딧에 포함됐다. <스타워즈>와 <스타트렉>, <쥬라기 공원> 시리즈까지 다양한 레퍼런스를 즐기던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이번 편에서도 <프랑켄슈타인>풍의 호러 터치를 즐긴다. 하지만 “존 래시터와의 작업은 월트디즈니와 일하는 것과 같다”(<토이 스토리3> <코코>의 리 언크리치 감독)고도 비견됐던 그가 픽사를 떠나면서 제작 과정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는 픽사의 여성 직원들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해온 혐의를 인정하고 2017년 안식년을 가진 후 2018년 말 회사를 떠났고(현재 그는 <스카이댄스> 애니메이션팀으로 이직했고, 픽사의 CCO 자리는 <업> <인사이드 아웃>의 피트 닥터가 대신한다), 픽사의 공동창립자이자 사장이었던 에드 캣멀 역시 직장에서 은퇴했다. <토이 스토리4>의 시나리오에 참여한 라시다 존스와 윌 매코맥은 존 래시터의 성추행 혐의가 공식화되기 직전 회사를 나갔다. 일부 언론에서는 라시다 존스 역시 피해자였다는 점이 원인이었다고 발표했지만, 두 사람은 보도를 부정하며 “픽사 스튜디오와 창의적이고 철학적인 차이가 있었다. 픽사에는 여성과 비백인들이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없는 문화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라디오타임스>와 애니 포츠의 인터뷰에 의하면 <토이 스토리4>는 제작 단계에서 원래 시나리오의 75%를 교체했다. <토이 스토리> 개봉 당시 15살이었던 조시 쿨리 감독이 제작 중반 <토이 스토리4>의 단독 연출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이전에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 참여한 적이 없어 팬의 마음가짐으로 임했다”는 그는 시리즈의 가장 거대한 전제를 깼다. <토이 스토리4>는 시리즈의 성실한 계승자이면서, 작품 안팎으로 새로운 세대에 숨을 불어넣은 속편이다.

우디의 파격적인 선택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보핍 캐릭터의 변화다. <토이 스토리2>의 DVD/블루레이에 수록된 제작진 코멘터리 중에는 “조스 웨던이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의 눈을 이용해 보핍 원피스 안을 볼 수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는 대목이 있다(“1편은 장난감을 좋아하는 남자들끼리 만든 남자애들의 영화였으니 2편에서는 강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는 제작진의 공식 발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이런 농담이 통용되던 분위기였다). 우디, 버즈와 동등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성희롱의 대상이 됐던 이 온순한 성격의 장난감은 <토이 스토리4>에서 세컨드 찬스 골동품 가게와 카니발 현장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스토리 아티스트와 애니메이터, 모델러, 그리고 목소리 연기를 맡은 애니 포츠가 팀 보(Team Bo)를 결성해 전편에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살피고 논리적인 이유로 “원피스를 입지 않을 자유”(캐리 홉슨 스토리 아티스트)를 부여했다. 혹자는 사소한(?) 섹스 스캔들 때문에 능력 있는 자를 배척할 경우 예술이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이 스토리4>는 내용 면에서나 제작 과정에서나 버릴 것을 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구세대의 유물은 완벽하지 않고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을 결과물 자체로 방증한다.

앞으로 더 과감한 시도를

<토이 스토리4>의 성과는 최근 픽사의 모기업, 디즈니가 안고 있는 숙제와도 이어진다. 백마 탄 왕자의 구원을 거부하는 <라푼젤>(2011)과 <겨울왕국>(2014)은 수십년간 디즈니가 쌓은 과오를 스스로 청산하겠다는(혹은 청산하는 것처럼 보이겠다는) 의지를 표력한 시작점이었다. 애니메이션 <알라딘>(1992)에서 자파를 속이기 위해 불필요한 키스를 하던 자스민 공주는 실사화 <알라딘>(2019)에서 직접 술탄이 되어 법을 바꾼다. 스튜디오가 과거에 쌓은 업적에 존경을 표하되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것을 과감히 거세하는 행보는 대중성과 ‘진보적’ 이미지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 거대 미디어 그룹의 영리한 전략이 됐다. 하지만 존 래시터를 내보냈던 디즈니는 최근 소아성애 및 강간에 관한 글을 남겨 퇴출됐던 제임스 건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의 감독으로 다시 소환했고, 픽사 스튜디오는 여전히 백인 남성 중심으로 굴러가는 창작 집단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과거 픽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카산드라 스몰식 그래픽 디자이너는 <버라이어티>에 기고한 칼럼에서 “래시터의 유산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간부 한명을 교체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디즈니-픽사는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독점한 백인 남성들만큼이나 여성, 과소대표된 소수자들의 능력을 인지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저런 한계가 남아 있지만 픽사의 격변기에 탄생한 <토이 스토리4>는 그들이, 디즈니가 좀더 과감한 시도를 해도 괜찮다는 근사한 신호를 준다. ‘완벽한 마무리’였던 보였던 <토이 시리즈> 3부작이 다시 돌아온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지만, 존 래시터로 대표되는 픽사 1세대의 산물은 작품 안팎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예상 밖으로 시리즈 사상 가장 성숙한 태도를 보여준 <토이 스토리4>는 시대가 바뀜에 따라 새로 도착해야 할 것이 남아 있음을 명징히 보여준다. 앞으로 픽사 스튜디오와 디즈니가 선보일 야심작들에 좀더 희망을 걸어도 될 이유가 선명해지고 있다.

● <토이 스토리> 시리즈로 보는 컴퓨터그래픽의 발전

“어차피 컴퓨터그래픽은 플라스틱 느낌이 나지 않나. 그럴 바엔 장난감 이야기를 하자.”(존 래시터) <토이 스토리>(1995)는 1986년 루카스 필름에서 독립한 이후 <룩소 주니어>(1986), <레드의 꿈>(1987), <틴 토이>(1988) 등의 단편으로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일궈낸 픽사 스튜디오가 100% 컴퓨터그래픽만으로 완성한 최초의 장편영화다. 기본적으로는 수작업한 스케치를 컴퓨터 화면에 옮긴 후 캐릭터 도안을 완성했지만, 시드의 개 스커드처럼 진흙 모형을 먼저 만든 후 공간 위치에 대한 디지털 정보를 도출해 컴퓨터에 옮긴 사례도 있다. 또한 2차원 애니메이션과 달리 미리 만든 캐릭터의 움직임 정보, 즉 ‘컨트롤’을 저장해 이를 필요할 때 불러오는 식의 시스템으로 제작됐다. 채색은 3차원 이미지를 2차원의 컴퓨터 화면으로 옮겨주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했다. 이후 제작된 <토이 스토리2>는 전편에서 다소 아쉬웠던 인간 캐릭터를 보다 자연스럽게 구현해냈다. 또한 오프닝 장면은 당시 컴퓨터그래픽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겹침 현상’을 훌륭하게 극복한 사례였다. 버즈의 몸이 배터리를 통과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시각화됐다. 여기에 더해 1편의 마지막 신에서 앤디 집에 입성하는 강아지, 버스터의 털을 실감나게 구현할 수 있는 기술 진보가 이루어졌다. <토이 스토리3>에 이르러 픽사 스튜디오는 비닐봉지의 움직임과 음영, 역광까지 표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3편의 악역 랏소는 실제 인형을 제작해 애니메이터들이 참고하며 완성됐는데, 털과 마찰효과를 구현하는 것은 물론 플라스틱이 아닌데 무게감 있는 물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전반적으로는 새로운 셰이딩 기술을 도입해 캐릭터에 볼륨감과 부피감을 부여하는 진보가 이루어졌다. <토이 스토리4>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오프닝에서부터 기술 발전을 보여준다. 장난감의 눈높이에서 더 위압적으로 다가오는 빗방울의 크기나 빗물과 길바닥, 장난감과의 상호작용이 섬세하게 구현됐다. 우디와 포키가 밤새 대화를 나누는 신은 아스팔트의 거친 표면과 그 위를 걷는 포키의 반동까지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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