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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픽처스] <위로공단> 임흥순 감독, “육체노동자들이 감정노동까지 하고 있다”
박지훈(영화평론가) 사진 오계옥 2019-07-12

<위로공단>은 수출의 여인상이 세워지는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시작된다. 이 동상을 세우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노동이 아니라 수출일 뿐이다. 열악했던 노동환경과 착취, 그 속에서도 열심히 일했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은 수출이라는 이름 뒤로 가려진다. 그러나 은폐된 과거는 현재로 침입한다. 30년 전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고통받던 여성노동자들의 삶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생명을 위협당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삶과 다르지 않으며, 해고의 공포 때문에 반인권적인 처우를 인내해야 했던 여공들은 지금의 수많은 비정규직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위로공단>은 과거를 현재와 연결함으로써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려는 다큐멘터리의 숭고한 이상을 품고 있다.

-영화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

=1998년, 대학을 졸업할 때부터 노동자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런 관심이 영화적으로 확장된 계기는 <비념>(2012)에서부터다. 졸업작품을 한 뒤에 가족에 대한 주제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는데 <위로공단>을 통해 다시 가족을 보게 됐다. 노동문제, 사회문제라는 큰 범주이기 이전에 ‘내 가족의 삶’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는 70년대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에서부터 캄보디아 여성노동자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감정노동자들까지 지역적으로, 시대적으로 넓게 다루고 있다.

=노동 주제의 다큐멘터리에서 여성노동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비교적 적었고, 그래서 여성노동을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랐다. 뛰어난 작품성보다는 10대, 20대들이 노동현장에 뛰어들기 전에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백과사전식 지침서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백과사전식이라고 말한 것처럼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로 집중되지 않는다.

=아마도 미술 작업을 하던 영향인 것 같다. 미술 작업의 접근방식은, 예를 들면 완성된 라디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를 모두 분해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분해된 라디오를 재조립해서 다양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보게 한다. 파편적인 몽타주에 익숙해져 있는 편이라서 <위로공단>을 만들 때 굳이 기승전결이나 짜임새의 완벽함에 부담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70년대 육체노동자에서 현재의 마트 노동자, 승무원, 다산 콜센터 직원 등 감정노동을 아우르는 여러 직종들을 다루고 있다. 왜 이 직종들이었나.

=예전의 많은 육체노동자들이 현대에 와서 감정노동까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찾아보니 감정노동에 대한 대표적인 직종이 승무원이더라. 우리는 승무원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편견을 깨고 싶었다. 마트 노동자나 콜센터 직원은 가족들이 일했던 직종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그 직종의 노동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오프닝과 가발공장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이미지와 음악이 스산하고 기괴하게 느껴진다.

=한국 사회는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 인식을 새롭게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오프닝에서 폐허가 된 캄보디아의 유적지를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새롭게 다시 시작될 태초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발공장은 영화에 나오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과 연결된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이 항암 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데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데, 이 노동자들이 이전 시대에는 가발을 만드는 노동자들이었다. 현대에는 신체와 생명을 위협하는 노동환경이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공포를 표현하고 싶었다.

-개미나 새 같은 자연물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서 타인으로부터도 멀어지고 개인으로만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구로공단의 김영미 선생님이 이런 꿈 이야기를 해주셨다. 꿈에서 경찰에 쫓기고 있어서 노조원들의 이름이 적힌 수첩을 땅에 묻어 숨기려고 하는데, 흙으로 된 땅은 없고 시멘트로 된 바닥밖에 없었다는 거였다. 노동의 문제도 70, 80년대 급격한 근대화, 도시화의 문제와 불가분의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멀어진 현대의 삶을 자연물들을 통해서 다시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눈을 가린 사람, 얼굴을 가린 사람의 이미지를 보여준 의도는 무엇인가.

=하나로 정의되지는 않는 것 같다. 먼저, 시각적인 감각이 아니라 다른 감각들로 구로공단을 느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두 번째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조금이나마 가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얼굴을 가림으로써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영화 후반부에는 반복적으로 방울 소리를 들려준다.

=종은 영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면도 있지만, 동시에 산 사람을 일깨우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방울소리도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측면도 있지만 산 사람들이 인식을 새롭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썼다.

-차기작은 무엇인지.

=올해 8월에 개봉하는 <려행>으로, 북한 이주여성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남과 북을 상상으로나마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터미널 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 Review_ <위로공단>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여성노동자들은 경제발전과 노동운동의 주축이었음에도 여성노동자들의 말에 주목한 다큐멘터리는 많지 않았다. 영화는 70, 80년대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인터뷰로 시작된다.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YH무역농성사건, 구로동맹파업과 같은 노동운동사에 중요한 사건이 조명된다. 그리고 영화는 과거에서 현재로, 캄보디아로, 이주노동자들의 삶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비정규직들, 캄보디아의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당시의 여공들이 겪었던 착취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과거는 단지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사측이나 국가의 야만성을 지적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얼굴과 말을 통해서 이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보여주는데 주목한다. 인터뷰 사이에 삽입된 짧은 영상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도시와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한다.

● 추천평_ 김혜리 여성 노동자들의 ‘깊은 목소리’ ★★★☆ / 박지훈 함께 아파하며 찾아가는 위로 ★★★☆ / 이주현 삶이 곧 노동인 이 땅의 여성들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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