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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제24회 영화평론상 공모전 후기
주성철 2019-08-16

“우리는 시간과 공간으로 둘러싸인 상자 안에서 살아간다. 영화는 그 벽에 난 창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다른 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중략) 영화를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지난 2013년 향년 70살로 세상을 뜬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자신의 평론집 <위대한 영화>에 머리말로 남긴 글 중 일부다. 글에서‘영화’를 ‘영화비평’으로 바꿔 “사람들이 영화비평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영화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라 써도 맥락은 엇비슷하다. 마찬가지로 그 앞의 문장도 “영화비평을 통해 영화감독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 과포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갈수록 비평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그 순간, 혹은 그러고자 하는 사람들을 쉬이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비평의 위기’의 본질이 바로 거기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씨네21>은 창간 이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영화평론상 공모전을 열어 지속적으로 평론가를 발굴하고 있다. 해마다 주목할 만한 평론가도 눈에 띄고, 그렇게 당선된 평론가들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접수마감일을 앞당긴 관계로 올해 다소 줄긴 했지만, 오히려 공모 접수 편수는 지난 몇년간 계속 늘어난 추세다. 여기에는 얼마간 설명이 필요한데, 몇해 전 ‘당선자 없음’ 상태로 재공모를 하며 접수마감일 자체가 대폭 늦어진 적 있었다. 그래서 올해와 내년은 접수마감일을 몇 개월씩 앞당겨, 1회 때부터 창간기념일에 맞춰 이어져온 원래의 마감일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라 봐주시면 되겠다. 그래서 미리 공지를 드리자면, 내년 역시 접수마감일을 2개월 정도 당겨서 대략 5월에 접수를 끝내고 6월에 당선자를 발표하는 일정으로 잡고 있다.

다시 <위대한 영화>로 돌아가, 로저 에버트는 “영화감독은 관객의 상상력이라는 현악기를 연주한다”고 했다. 그 말 또한 “영화평론가는 독자의 상상력이라는 현악기를 연주한다”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매슈 보몬트가 테리 이글턴과 나눈 대화를 엮은 <비평가의 임무: 테리 이글턴과의 대화>에서도 매슈 보몬트가 계속된 대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은, 개인적인 의견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위대한 비평가는 자신의 비평적 분석을 토대로 다른 이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발터 베냐민의 메모였다. 물론 비평가로서 날카로운 주장을 펼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책무라 할 수 있겠지만, 결국 비평가는 그 비평을 완성해야 한다는 소명을 부여받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과정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의 두 당선자는 무척 흥미롭다. 지난해의 두 당선자가 영화평론상 응모 ‘삼수’ 만에 수상의 영광을 안은 이들이라면, 올해의 당선자들은 일단 영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한 당선자는 50매 분량의 긴 영화글을 처음 써보았다고 했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인 송경원 기자의 얘기처럼 “영화 전공자도 아니고 특별히 이론적인 공부를 한 적도 없으며 그저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아서 용기를 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도 얘기했다. “좋아하는 영화가 왜 좋은지, 자신이 사랑하는 말의 힘을 빌려 차분히 전달하는 것. 어쩌면 그거야말로 영화비평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올해 영화평론상 공모전은 결과도 그랬지만, 심사과정에서 여러 신선한 체험을 하게 해줬다. 당신도 꼭 용기를 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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