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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빈 무비다 대표, "창작자 육성 텃밭, 제대로 물꼬 튼다"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19-09-19

“사람들은 변화에 대해 너무 겁을 내요. 처지가 아무리 나빠도 거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바꾸기가 힘든가 봐요.”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소년 트레버는 ‘세상 바꾸기 프로젝트’에 대해 취재하러온 기자에게 이렇게 답한다. 때론 선한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거기에 행동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선한 영향력이 현실이 되어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올해 초 문을 연 영상제작지원 플랫폼 무비다는 ‘당신의 창작을 도와줄 스마트 플랫폼’을 기치로 내걸고 선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무비다는 효율적인 이타주의를 기반으로 도움이 필요한 제작자에게 환경과 기회를 제공 중이다. 특히 지난 5월 1일부터 2019 무비다 단편영화 공모전을 시작, 5천만원의 상금을 걸고 미래의 크리에이터들을 모으고 있다. 김도빈 무비다 대표를 만나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무비다는 익숙한 듯 생소한 플랫폼이다. 크라우드 펀딩과 콘텐츠 플랫폼이 결합한 형태인데, 무엇을 목표로 운영 중인가.

=독립영화인들이 제대로 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 기존의 크라우드 펀딩 방식이 보상으로 굿즈나 관람권을 제공하는 단발성 이벤트에 그친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창작자에게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기본적인 컨셉은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후원자를 공동저작권자로 등록해 수익을 나눠 가지는 구조다. 수익과 분매는 플랫폼 내 사이버머니인 ‘스타’ 포인트로 이뤄진다. 단순히 수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특기, 물품, 장소 등의 유무형의 후원 제공도 가능하다. 최종 목표는 젊은 제작자들이 영화를 찍는 거다. 찍어서 영화제에 출품하고, 장편 입봉 기회를 얻고, 언젠가는 봉준호 감독처럼 세계적인 연출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거다. 당장 성공하지 못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 말하자면 일종의 창작자 육성 텃밭이라고 할까.

-얼핏 들으면 공공기관에서 해야 할 일처럼 보인다. 처음에 어떻게 기획하고 설립하게 되었나.

=나는 영화에 문외한인 공대생이다. 우연히 한 모임에서 독립영화인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꿈을 듣고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영화산업 내의 카르텔과 정체된 현실, 창작자들에게 정당한 수익이 분배되지 못하는 구조에 대해 알게 됐다. 무엇보다 현실에 불만이 있지만 어떻게 해보지 못한다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보다 빵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아예 플랫폼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영화계를 전혀 몰라서 시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변에서도 무모하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일단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바깥으로 눈을 돌려봐도 새로운 통로와 기회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현실을 너무 잘 알면 오히려 행동에 제약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와 무관한 사람이었다는 점이 오히려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업은 따로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토목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엔지니어링 연구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무비다는 애초에 수익을 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분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한국영화 시장은 결코 적지 않다. 문화소비 활동도 다양하다. 그런데 유독 영화 시장은 상업영화에만 집중된 것 같아 아쉽다. 나는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고 극장 밖에서까지 이어지는 영화를 좋아한다. 나중에 보니 그게 주로 독립영화들이었다. 내가 느끼는 이런 재미를, 기왕이면 좀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이유다. 요즘엔 무비다를 통해 제작의 기회를 얻은 분들의 기뻐하는 목소리를 접하며 또 다른 기쁨을 느낀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내고 있다.

=현재 70편 정도의 단편영화들이 모였다. 제작 프로젝트는 15건이 등록됐고 그중 6건은 펀딩이 완료되어 제작 준비 중이다(8월 30일 기준). 물론 아직까진 사이트 자체의 수익은 전혀 없다. 운영비용의 대부분은 내가 낸 개인비용으로 충당하고 있다. 사실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은 없다. 주변에선 나라에서 할 일을 왜 네가 하냐고 걱정해주는 분도 계신데, 누가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일이 씨앗이 되어 환경 자체가 바뀌면 모두에게 큰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의도에 공감하고 다양한 형태로 동참해주는 분들이 늘고 있는 것도 큰 힘이 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작자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 영화과 대학교수님들이 졸업작품 제작지원을 위해 문의하시기도 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곳에서 길이 열리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저변이 넓어지다보면 결국 원하는 곳에 도달할 것이다. 성격이 느긋한 편이라 인내심은 자신 있다. (웃음)

-현재 진행 중인 1회 무비다 단편영화 공모전 상금이 무려 5천만원이다. 적지 않은 규모인데.

=그것도 자비로 진행 중이다. 플랫폼을 만들면 기본적으로 마케팅비가 들어가는데 불특정 다수에게 홍보할 바엔 차라리 제작자들에게 돌려드리자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6개월 단위로 1년에 2번 진행하는 게 목표다. 보통 공모전은 전문적인 심사위원들이 수상작을 선정하는데 무비다에서는 참여 횟수를 정량적인 기준으로 정했다. 스타를 가장 많이 후원한 회원, 스타 후원을 가장 많이 받은 프로젝트, 조회수가 가장 많은 영상 순으로 수상한다. 1회 참여가 어렵더라도 2회가 있으니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무비다’라는 회사 이름은 어떻게 정했나.

=흔히 믿기 힘든 일이나 대단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영화 같다’고 표현하지 않나. 우리 플랫폼을 통해 영상을 제작하고 그게 계기가 되어 장편영화 데뷔를 하면 그 상황이 진짜 영화 같지 않을까. 그러길 바라며 ‘무비다’라고 이름지었다. 짧은 홍보 영상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는데 반응이 꽤 좋다. 실은 실사로 찍고 싶었는데 제작비 문제로. (웃음) 그런데 무비다에 올라오는 영상들을 보면 단편만 있는게 아니라 애니메이션, 웹드라마 등 포맷이 다양하다. 결과적으로는 적절한 접근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지향하는 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영상이다.

-기존 크라우드 펀딩이나 플랫폼 업체와 변별점은 무엇인가.

=다음 제작을 위해 영상 수익을 나눈다는 거다. 여기서 수익은 공간, 재능, 장비 모든 것을 아우른다. 현재는 수익을 낼 수 있는 창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유튜브를 비롯한 외부 창구를 이용하고 있다. 차후엔 옥수수나 티빙처럼 국내 플랫폼 업체와 같은 규모를 확보하여 독자적인 창구를 만들고 싶다. 실제로 부딪쳐보니 오프라인 창구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현재 이태원 아트살롱에서 정기적인 상영회를 가질 수 있도록 협의 중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실제로 접해보니 예상과 다른 부분들이 있어 미세하게 조정 중이다. 아직은 제작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플랫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점차 콘텐츠 소비자들로 넓혀가려 한다. 궁극적으로는 제작자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나눠주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현재 다방면으로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모색 중이다. 내년 초엔 해외용 사이트를 개설해 미국 독립영화 시장과도 교류하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플랫폼이 어느 정도 자리잡으면 콘텐츠를 더 잘 이해하는 분에게 맡기고 싶다. 내 역할은 제대로 물꼬를 트는 것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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