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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③] 10월 26, 27일 열린 ‘한국영화 100년 기념 광화문 축제’ 현장 스케치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9-11-06

한국영화의 유산을 확인하는 자리

<한국영화 100년 기념 음악회>에서 한국 영화음악 인기 O.S.T를 성악가의 음색으로 들려준 바리톤 박정민, 소프라노 김수연, 테너 박지민(왼쪽부터).

“한국영화 100년의 뿌리는 이제, 천년의 숲으로 갑니다.”(이장호 감독, 배우 장미희) 2019년 10월 27일, 최초의 한국영화가 개봉한 날로부터 100주년 되던 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한국영화 100년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한 세기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한국영화 수록곡을 다양한 뮤지션의 목소리로 들어보고, 한국영화의 ‘시간’, ‘사랑’, ‘사람’, ‘꿈’을 주제로 세대를 아우르는 배우들이 스토리텔러로 나서 이야기를 들려주며, 공연 사이사이 한국의 영화감독 100명이 참여한 100초 단편영화 프로젝트 ‘100×100’을 상영하는 자리였다. 음악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열린 ‘한국영화 100년 기념식’에서는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이장호 감독, 배우 장미희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문화계 귀빈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영상을 통해 축하의 말을 건넨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은 “이제 온라인 플랫폼의 발전 등 5세대 통신 시대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영화산업은 또 다른 100년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며 강소 제작사 육성 펀드, 독립·예술영화 유통지원센터 설립 등 지난 10월 14일 문체부가 발표한 ‘한국영화산업발전계획’을 바탕으로 “한국 영화산업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뒷받침을 계속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배창호·이명세·봉준호 감독, 배우 전도연·류승룡·김규리·조정석·임윤아·김의성·이유영·강신일 등 영화인들의 축사도 이어졌는데, <기생충>으로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한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에 작게나마 힘을 보탤 수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한국 최초의 영화이자 연쇄극인 <의리적 구토>를 재현하는 쇼케이스 공연이었다. <의리적 구토>는 1919년 10월 27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된 작품으로 김도산이 연출과 각본, 주연을 맡고 신극좌 단원들이 배우로 출연한 연쇄극이다. 이 작품은 연극 중 무대 위 스크린에 영상을 삽입하는 연쇄극(키노드라마)의 형태로 상영되었고, 1962년 ‘영화의 날 제정위원회’에 의해 최초의 한국영화로 명명되었다. <의리적 구토>가 처음 공개된 10월 27일이 ‘영화의 날’로 지정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의리적 구토>는 필름 원본이 남아 있지 않을뿐더러 당시 이 작품을 관람한 관객도 현존하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후대 아티스트들의 상상력으로 <의리적 구토>를 쇼케이스 형태로 재현한 이번 무대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변사 김병춘의 구성진 내레이션과 함께 포문을 연 <의리적 구토> 쇼케이스는 부암골 출신 명망 있는 가문의 자제 송산의 여정을 다룬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송산은 계모의 학대를 견디며 청년으로 성장한다. 시름을 잊으려 의형제들과 함께 술집을 찾은 송산은 우연히 기생에게 송산의 계모가 야쿠자 무사시와 손잡고 송산 가문의 재산을 빼앗으려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송산은 의형제 죽산, 매초와 의기투합해 야쿠자와 계모에 맞서려 한다.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 속 흑백 영상을 통해 송산 일행과 야쿠자 일당의 혈투를 관람하던 관객은, 어느새 무대에 오른 배우들의 액션 연기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린다. 이날의 쇼케이스는 영상과 연극이 결합된 연쇄극의 매력을 맛보기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 음악회>를 비롯해 광화문에서 열린 모든 공연, 전시의 총 연출을 맡은 양윤호 감독은 “11월 1일부터 대학로 안똔체홉 극장에서 두달간 상연될 연극 <의리적 구토>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영화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등정 장면을 재현하는 참가자. ‘영화촬영현장재현’은 연기부터 VFX, FX 등의 시각특수효과까지 참가자들이 영화 제작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광화문광장을 지나가던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부산행> 좀비 체험’의 한 장면.

‘로봇 VR 영화관’에서 영상을 보며 즐거워하는 시민들.

10월 27일 열린 <한국영화 100년 기념 음악회>는 10월 26일부터 27일까지 양일간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한국영화 100년 기념 광화문 축제’의 일환이다. 감독, 배우부터 촬영, 분장, 시각특수효과팀, 영화 홍보사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영화 스탭들이 참여한 광화문 축제는 단순히 한국영화가 걸어온 길을 대중에 알리고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행사 첫날인 10월 26일에는 영화의 한 장면을 관객이 직접 체험해보는 ‘영화촬영현장재현’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광화문광장 입구에서는 <부산행>에서 배우 최우식이 입었던 ‘신연고교’ 야구 재킷을 입은 한 무리의 시민들이 좀비 분장을 한 배우들에게 쫓기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 시민들이 힘을 다해 전력질주하는 바람에 이들을 뒤쫓던 촬영팀도, 좀비를 연기하는 배우들도 녹초가 됐다. 광화문을 거닐던 시민들이 이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한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는 <히말라야>의 주인공이 된 시민들이 그린 스크린을 배경으로 레일 위를 걸으며 빙산의 크레바스 사이를 건너는 장면을 체험했다. ‘영화촬영현장재현’ 프로그램을 진행한 남진아 촬영감독은 “참가자들에겐 얼어붙은 얼굴을 특수분장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가장 인기 있었다”며 “실제 영화 작업이었다면 한달에서 두달 정도가 소요됐을 CG 작업을 실시간으로 작업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처럼 시민들이 주연배우로 출연하고 영화 스탭들이 실시간으로 촬영해 편집과 후반작업을 거친 영상은 참가자들의 이름을 크레딧에 넣어 USB로 증정됐다.

한국영화 100년을 상징하는 기록물을 담은 타임캡슐 봉인식에 참석한 이장호 감독, 신영균 한국배우협회 명예회장, 배우 장미희(왼쪽부터).

<이등병의 편지> <봄날은 간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등 한국영화 인기 O.S.T 19곡을 감상할 수 있는 ‘한국영화 100년의 시간여행 존’ 부스.

10월 26일 행사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영화 축제였다면, 10월 27일 열린 <한국영화 100년 기념 음악회>는 지난 100년간 한국영화가 남긴 유산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1976년 <성춘향전>으로 데뷔해 어느덧 44년차 배우가 되었다는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장미희 공동위원장은 “영화를 통해 다양한 인생을 살았지만 특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연기를 많이 했다”며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을 사랑했고,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 덕분에 지금의 배우 장미희가 있을 수 있었고, 오늘 한국영화 100년이 있을 수 있었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이장호 공동위원장, 신영균 한국배우협회 명예회장과 함께 한국영화 100년을 상징하는 사건, 기록, 물품 등을 시각적 형태의 디지털 파일로 기록한 타임캡슐 봉인식을 진행했다. 신영균 명예회장은 “기록이란 가장 소중한 것”이라며 “타임캡슐에 봉인된 100년의 역사가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효율적 가치가 있을 수 있도록 남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타임캡슐 봉인식과 축사, <의리적 구토> 쇼케이스가 끝난 뒤에는 본격적인 음악회가 이어졌다. 바리톤 박정민과 테너 박지민, 소프라노 김수연이 영화 <비 오는 날의 수채화>의 동명 주제곡,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풍문으로 들었소>, <왕의 남자>의 <인연>, <베사메무쵸>의 <베사메무쵸> 등 지난 100년간 사랑받았던 한국영화 삽입곡을 불렀고, 가수 임재현이 <건축학개론> 속 <기억의 습작>을, 국악인 이봉근이 <아리랑>의 동명 주제곡을, 가수 임희숙이 <접속>의 <A Lover’s Concerto>,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가수 김태우가 송창식의 <우리는>, 김윤아가 <봄날은 간다>의 테마곡을 불렀다. “기억은 또 다른 꿈을 낳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기억해야할 우리의 아름다운 꿈”이라는 배우 안성기의 말처럼, 지난 100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영화의 꿈은 이제 또 다른 꿈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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