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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82년생 김지영>의 배우들을 만났습니다
주성철 2019-11-08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고르라면, 거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양장점 주인(김미경)과 신애(전도연)가 나눴던 대화다. 그 주인은 신애의 충고대로 가게 인테리어를 밝게 바꿨더니 실제로 손님도 늘고 매상도 올랐다며 좋아한다. 영화의 어느 지점부터 웃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던 신애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감돈다. 바로 그 전 장면에서, 신애는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고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에 들렀다가 아들을 죽인 유괴범의 딸과 마주쳤었다. 소년원에서 미용기술을 배웠다는 그 딸도 살인자 아버지로 인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신애의 마음이 다소 누그러들 수도 있으리라, 그 딸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신애는 “왜 하필 이 집이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었다. 그런데 영화의 초반부, 밀양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신애가 처음 양장점에 들렀을 때 ‘가게 인테리어를 바꾸면 장사가 더 잘될 것 같다’고 오지랖 넓게 건넸던 충고가 드디어 통하게 된 것이다. 그 충고 이후 양장점 주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신애에 대한 뒷담화를 하며 서먹한 관계가 이어졌었다. 아무튼 그렇게 영화 속 하나님의 말씀이 신애를 신앙의 길로 이끄는 데는 실패했지만, 신애의 말씀은 양장점 주인을 가게 리모델링의 길로 이끄는 데 성공한 것이다. 누군가가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다는 것, 나로부터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소중한 경험이다.

<밀양>에서 양장점 주인을 연기한 김미경 배우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정유미)의 시어머니로 등장한다. 이번호 특집 ‘<82년생 김지영>의 배우들’ 인터뷰에 따르면, ‘부산의 박정자’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부산의 유서 깊은 극단 가마골 출신인 김미경은, 이정은 배우가 김도영 감독에게 직접 추천해서 이뤄진 캐스팅이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당시 <밀양>은 동네 사람들 캐스팅을 위해 무려 3천명 넘는 배우들의 오디션을 봤다. 종찬(송강호)에게 “니는 인상이 멜로가 아니고 코믹쪽이다”라고 얘기했던 영화 속 중국집 주방장 친구를 연기한 이성민 배우를 필두로,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배우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이정은 배우만큼이나 존재감이 달라진 <니나 내나> <기생충>의 장혜진 배우도 신애와 함께 공부하는 신도들 중 한명으로 출연했고, <증인> <걸캅스>의 염혜란 배우도 장례식장에서 만난 신애의 시댁 식구 중 한명으로 출연했다. 독립영화계의 든든한 친구들인 박명신, 김미향, 김종수 배우는 물론 최근 <극한직업> <마약왕>으로 주목받은 이중옥 배우도 호프집 아르바이트 단역으로 1초 등장한다. 그는 실제로 이창동 감독의 조카이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을 계기로 평소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배우들을 만났다고 하면 되겠다. 김도영 감독 또한 <살아남은 아이>(2017)의 ‘준영 엄마’ 등 수많은 영화에서 마주쳤던 배우 출신 감독이다. 시어머니를 연기한 김미경 배우 외에도 어머니를 연기한 동명이인 김미경 배우부터 지영의 아버지를 연기한 이얼, 지영의 언니 은영을 연기한 공민정, 김 팀장 역의 박성연, 지영의 직장 동료 혜수 역의 이봉련까지, 배우를 보는 김도영 감독의 밝은 눈이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더 많은 미지의 배우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여기에 당신은 또 어떤 이름을 추가하고 싶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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