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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도시2>의 ‘저작권 및 임금 미지급’ 문제에 대해 영화인신문고 중재위원회 판단 보류 결정
김성훈 2020-01-31

부적절한 선례를 그만 만들어야

<경계도시2>

<경계도시2>와 관련된 논란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영화인신문고는 지난 1월 10일 중재위원회를 열고 김명화 굿필름 대표가 홍형숙 감독을 상대로 신청한 ‘<경계도시2>(감독 홍형숙, 2009)의 저작권 및 임금 미지급’ 문제에 대해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 <경계도시2>에서 프로듀서였던 김명화 대표가 제작자로서 자신의 저작인격권(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갖는 정신적·인격적 이익을 법률로 보호받는 권리.-편집자)이 침해됐고, 스탭들이 영화가 개봉한 뒤 지금까지 인건비를 한푼도 받지 못한 것을 두고 지난해 8월 16일 홍형숙 감독을 상대로 영화인신문고에 중재를 신청한 사건이다.

영화인신문고는 “이 사건과 동일한 내용으로 ‘영상제작자지위부존재확인소송’이 지난 1월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된 사실을 확인했으니, 민간중재조정기구로서 사법기관과 다른 판단을 할 수 없어, 해당 사건 처리를 일시적으로 보류했다가 법원 판결 이후에 속개하기로 했다”고 판단을 미룬 이유를 함께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홍형숙 감독이 김명화 대표를 상대로 영상제작자 지위를 확인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니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경계도시2>와 관련된 논란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명화 대표가 정리한 <경계도시2> 정산 내역 중 일부.

김명화 대표, <경계도시2> 제작비 3347만여원 중 3176만여원 충당

지난 5개월간의 조정기간 동안 첨예하게 쟁점이 됐던 건, 김명화 대표의 크레딧 침해 문제다. <씨네21>에서 연속 보도(1238호 국내뉴스 ‘웰메이드 다큐멘터리의 민낯’, 1239호 국내뉴스 ‘독립영화의 제작 관행?’)된 대로, 홍형숙 감독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지급하겠다”고 사실을 인정한 바 있는 스탭 인건비 미지급 문제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김명화 대표의 크레딧 침해 문제를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경계도시2>가 처음 기획됐던 2003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홍형숙 감독의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졸업 논문인 ‘다큐멘터리 <미래제화연구소> 제작보고서-연출을 중심으로’와 김명화 대표의 같은 대학원 졸업 논문인 ‘다큐멘터리 <미래제화연구소> 제작보고서-Producing을 중심으로’를 살펴보면, 당시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졸업을 앞둔 홍형숙과 김명화씨는 <경계도시>의 주인공인 송두율 교수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송두율 교수의 ‘37년만의 귀향’을 컨셉으로 한 작품을 찍기로 결정했다. 송두율 교수의 한국체류 기간을 약 3주로 예상하고 출발했지만 송 교수가 갑자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촬영은 1년가량 계속됐다.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의 졸업작품 제작비는 연출을 맡은 사람이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김명화 대표는 “프로듀서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비를 충당해 제작을 진행했다고 말한다. 2004년 1월 당시 김명화 프로듀서가 작성한 <경계도시2> 정산 내역서를 살펴보면 2004년 1월까지 진행된 프로덕션에 투입된 제작비 3347만여원 중에서 김명화 프로듀서가 사비를 포함해 3176만여원을 충당한 반면, 홍형숙 감독과 강석필 프로듀서가 제작비로 보탠 돈은 167만여원에 불과하다. 167만여원조차도 <경계도시>(서울영상집단 제작) 영상사용료 명목으로 MBC와 SBS로부터 각각 받은 70만원과 50만원, 서울영상위원회로부터 받은 47만2500원을 합친 돈이다.

<경계도시2> 촬영 초기 독일 촬영을 맡았던 강석필 프로듀서의 1회차 촬영분을 제외하면 프로덕션 단계까지 홍형숙 감독의 사비는 거의 지출되지 않았다. 이 영화에 참여한 홍종경 촬영감독은 “촬영 장비 대여비, 테이프 구입비, 유류비, 식대 같은 진행에 필요한 비용들은 김명화 프로듀서로부터 받아 촬영을 진행했다. 당시 김명화 프로듀서가 제작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제작진 모두의 동의를 받아 인건비 100만원을 지급받은 조감독을 제외한 나머지 스탭들이 한푼도 받지 않은 반면, 홍형숙 감독은 연출료 300만원을 받았고, 일일 진행비 외에도 감독 개인 진행비 200만원을 정산해 지급받았다. 영화 제작자는 영화 제작과 관련된 전체 공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투자를 받았든 사비를 투입했든 영화 제작과 관련된 비용을 운용하고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사람이다. 이런 연유로 김명화 대표는 자신이 <경계도시2>의 제작자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김명화 대표의 이름은 <경계도시2> 제작 크레딧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는 “제작진을 이끌고 촬영을 포함한 제작을 진두지휘”했으나 자신의 팀이 촬영한 테이프(60분 분량의 DV-CAM 테이프 350개의 촬영 원본)를 홍형숙 감독에게 모두 넘겨준 후반작업부터 업무에서 배제당했다고 말한다. “홍형숙 감독으로부터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 채 후반작업에서 배제됐고, 그 이후 진행된 배급 과정 또한 하나도 공유받지 못했으며, <경계도시2>와 관련된 소식은 언론을 통해 간간이 확인할 뿐이었다”는 게 김명화 대표의 설명이다. 그가 홍형숙 감독의 남편인 강석필 프로듀서가 <경계도시2>의 기획, 프로듀서, 제작사(감어인필름, 홍형숙과 강석필 두 사람이 당시 설립한 제작사) 크레딧에 오른 것을 알게 된 건, 영화가 개봉되기 전인 2009년 8월 22일 엔딩 크레딧이 첨부된 홍형숙 감독의 메일을 받으면서부터다. “영화와 관련된 어떠한 논의도 요청받지 못했으며 단 한번도 가편집본을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김명화 대표는 “제작자 지위가 자신 대신 강석필로 바뀐 부분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었다”고 설명했다.

홍형숙 감독의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졸업 논문인 ‘다큐멘터리 <미래제화연구소> 제작보고서-연출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강석필 프로듀서는 서울영상위원회에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었으며, 퇴근한 이후에도 육아와 가사를 담당했다고 한다.

김명화 대표의 요구 4가지는

10년이 지난 현재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 김명화 대표는 홍형숙 감독에게 크게 네 가지를 요구했다. △영화의 제작자로서 강석필의 기획, 프로듀서, 제작사 지위를 인정할 수 없으니 영화 개봉 전후로 온·오프라인에 공표된 모든 타이틀에서 역할을 수정, 정정할 것. △<경계도시2>로 발생된 모든 수익에 대한 배급사의 정산회계 목록을 열람하고, <경계도시2> 배급 계약을 맺은 계약주체(감어인필름)를 변경할 것. △김명화 프로듀서가 이끈 팀이 촬영한 원본 테이프와 그것을 디지털화한 복사본을 되돌려줄 것. △공개 사과할 것.

하지만 홍형숙 감독과 강석필 프로듀서는 스탭들에게 지급하지 못한 인건비를 정산하는 것 이외에 김명화 대표의 어떤 주장과 요구도 수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홍형숙 감독은 김명화 대표가 <경계도시2>의 제작자라는 주장에 대해 “저작권법상 영상 제작자란, 영상 저작물 제작의 ‘전체를 기획하고 책임지는 자’를 말하는데, 김명화씨는 당시 다큐멘터리를 처음 하는 사람이라 현장을 지휘할 수도 없었다”며 “감독이자 제작의 총괄 책임자로서 김명화씨에게 제작자 역할을 부여한 바도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홍 감독이 강석필씨를 프로듀서라고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강석필은 이 작품의 전체를 기획하고 <경계도시>에서 인연을 맺은 송두율 교수를 포함해 주요 출연진을 섭외했을 뿐만 아니라 주요 촬영, 후반 작업, 개봉까지 책임진 적법하고 합당한 프로듀서”라며 “작품이 완성된 뒤 10년이 지난 현재 강석필의 프로듀서 크레딧을 삭제하라는 요구는 부당하다”고 말했다.

제작자의 역할에 대해 묻는다

<경계도시2> 크레딧 논란과 관련된 쟁점은 제작자로서 강석필 프로듀서의 역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문제는 <경계도시2>에 참여한 주요 스탭들이 “당시 촬영 현장에서 김명화 프로듀서가 제작을 도맡아 진행했다”고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정치적 움직임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제작진은 효율적으로 사건을 담아내기 위해 두팀으로 나뉘어 움직였다. 김명화 프로듀서가 이끈 팀은 검찰, 국정원, 기자 등 여러 사람들이 뒤엉키는 분주한 현장을, 홍형숙 감독이 맡은 팀은 ‘송두율 교수 사건 비상대책위원회’와 송 교수의 가족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이 영화에 참여한 임재수 촬영감독은 “강석필 프로듀서가 현장에 나온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촬영 전 스탭들끼리 합숙할 때와 현장에서 한두번 얼굴 본 것 말고는 그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홍종경 촬영감독은 “당시 김명화 프로듀서가 제작을 진행해 당연히 그가 제작자인 줄 알았다. 반대로 강석필 프로듀서는 촬영현장에서 한두번 봤다”고 말했다. 김명화 프로듀서 또한 “강석필 프로듀서는 두 차례의 독일 촬영과 보충촬영에 참여한 게 전부”라고 전했다.

제작자가 촬영 현장을 많이 찾지 않는 상업영화와 달리 열명 남짓한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제작자나 프로듀서가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경계도시2> 스탭들의 증언은 간과하기 어렵다. 또 홍형숙 감독 본인이 <경계도시2>의 제작 과정이 담긴 대학원 졸업 논문인 ‘다큐멘터리 <미래제화연구소> 제작보고서-연출을 중심으로’의 60페이지에 “남편(강석필 프로듀서)은 직장(서울영상위원회)을 다니면서 육아와 가사를 전담했고, 작업에 필요한 서류작성이나 기타 손이 필요한 일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고 기술한 점도 추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처럼 <경계도시2>의 제작자 크레딧을 둘러싼 주요 스탭들간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향후 진행될 <경계도시2> 관련 ‘영상제작자지위부존재확인소송’에서 보다 자세하게 다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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