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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해외스탭들 ④] 우아한 관능과 야생성 - 클레르 마통
김소미 2020-03-12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애틀랜틱스> 촬영감독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호수의 이방인>

2019년 제72회 칸국제영화제는 촬영감독 클레르 마통의 전성기를 알리는 쇼케이스장이기도 했다. <애틀랜틱스>가 심사위원대상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각본상을 받으면서 주요 부문에서 빼어난 미학을 자랑한 두 영화 모두 한명의 촬영감독이 만진 결과라는 사실에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 출신의 촬영감독 클레르 마통은 2006년 데뷔해 알랭 기로디 감독의 영화 <호수의 이방인> <스테잉 버티컬>로 특유의 스타일을 인정받은 바 있다. 40대 중반에 이르러 힘 있고 완숙한 기세를 보여주고 있는 마통의 모습은 흡사 <위대한 유산>(1998)을 거쳐 <이 투 마마>(2001), <뉴 월드>(2005) 등으로 뻗어나가고, 일련의 테렌스 맬릭 영화로 도약했던 촬영감독 에마누엘 루베스키의 존재감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부터 프랑스 뤼미에르영화제, 뉴욕비평가협회상, 전미비평가협회상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클레르 마통의 아름다운 화면과 그 뒤편의 이야기들을 정리해봤다.

1. 마통 스타일: 정교하게, 초자연적 에너지를 담아

기묘한 에너지로 서서히 압도하고, 세속적 풍경에 야생적 힘을 불어넣는다. 클레르 마통의 카메라는 그래서 초자연적이라는 수식이 잘 어울린다. 화면에 감상적인 무드를 허락하는 대신 단정하게 절제할 줄 아는 태도가 우아하기까지 하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마티 디옵의 <애틀랜틱스>, 알랭 기로디의 <호수의 이방인>과 <스테잉 버티컬>은 이러한 마통의 감각이 유난히 돋보이는 영화들이다. 두 여성의 사랑을 그린 18세기 시대극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마통은, 화실에 비밀스럽게 모인 두 여자와 광활한 자연을 쏘다니는 두 여자를 담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내보인다. 특히 레일을 설치해 카메라를 이동시키는 트래킹숏과 카메라를 수평으로 움직이는 팬 기법을 마치 안무를 추듯 정교하게 구사하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세네갈에서 임금 체불로 고통받았던 주인공 남성이 실종된 뒤, 그를 사랑한 여성이 겪는 기묘한 일화를 그린 <애틀랜틱스>는 빛나는 바다와 먼지가 날리는 공사장, 누추한 생활공간과 화려한 밤의 클럽을 오가며 일상의 틈새를 엿본다. 마통은 2018년 봄에 세네갈에서 <애틀랜틱스>를 촬영하고, 같은 해 가을에 바로 프랑스로 돌아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찍었다. 그는 “두 작품은 대서양 연안을 배경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러브 스토리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사실 매우 다르다. <애틀랜틱스>에서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구사하는 다큐멘터리적 접근과 장르적 미학의 결합을 시도했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안무에 가까운 시대극의 카메라를 고민했다”(<필름 코멘트>)고 답한다. 어떤 쪽이든 마통의 카메라는 19세기의 프랑스를, 현대의 세네갈을 때로는 불온하고 또 때로는 한없이 신비롭게 비춘다. 로맨스와 호러가 공존하고, 과한 기교를 배제했지만 종종 어지러울 정도로 마술적이다. 두 영화 모두 유령적 표현이 등장하는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는 오르페우스 신화 속 에우리 디케를 떠올리게 하는 신화적 이미지를, <애틀랜틱스>에서는 호러 장르에 가까운 육체의 이미지를 포착하며 선명한 변주를 보여준다. <호수의 이방인> 이나 <스테잉 버티컬> 같은 알랭 기로디의 영화들 역시 호숫가, 시골의 숲속 등 야생적인 자연의 이미지가 늘 함께하는 셈이니 이쯤되면 클레르 마통을 대지 위의 주술사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2.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

1998년에 예술학교를 졸업한 마통은 1999년에 단편영화의 카메라 조수로 필모그래피를 열었고, 이후 2006년에 배우 겸 감독인 마이웬의 장편영화 <리실리언스>로 데뷔했다. 데뷔 후 14년차를 맞은 2020년까지 마통은 장편영화 외에도 단편영화 27편, 다큐멘터리영화 12편(TV프로그램, 단편 포함) 을 작업하는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장편 극영화는 제쳐두고 연이은 단편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느라 3, 4년씩 투자하는 건 예사다. 장편 데뷔 전에 단편영화를 작업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마통처럼 독자적으로 단편 작업을 꾸준히 지속하는 촬영감독은 무척 드물다. 그의 예술가적 야심과 뚝심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호수의 이방인>으로 프랑스 세자르상에서 처음 촬영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이후에도 마통은 다음 스텝을 서두르지 않고 늘 해왔던 것처럼 단편과 다큐멘터리에 다시 관심을 기울이는 신중한 선택을 내렸다.

3. 여성감독

마통의 역사는 여성감독들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편영화 데뷔를 마이웬 감독과 시작해 이후 <몽 루아>를 작업했고, 마이웬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배우 겸 감독인 발레리 돈젤리, 소피 르토어뉴 감독과 <칙스> <사랑의 여왕> 같은 작품을 연달아 함께했다. 그 밖에도 카트린 코르시니 감독, 극작가로도 활동하는 발레리 므레장 감독 등 마통의 커리어 초기에 현장에서 메가폰을 든 인물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 첫 상영을 마친 뒤 셀린 시아마 감독과 서로 어깨를 끌어안고 감격을 나누던 마통의 모습은 여성 중심의 영화 프로덕션에서 긴밀한 관계를 쌓아올린 연출자와 촬영감독의 애틋함이 묘사된 진풍경이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마통은 영화의 그림을 담당한 화가 엘렌 델메어, 시아마 감독과 함께 루브르박물관을 비롯한 각종 전시장을 드나들면서 오랫동안 작품의 레퍼런스를 공부했다고 알려진다.“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그림에서 대상을 향한 내밀함과 예민한 감수성을, 자크루이 다비드의 그림에서 정밀함을,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뎅의 그림에서 섬세한 질감과 마무리 처리”(<필름 코멘트>)를 발견하고 영감을 얻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이렇게 프리 프로덕션에서부터 촘촘히 주고받은 협력에 감사하듯, 마통이 뉴욕비평가협회상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직후 자신의 SNS 계정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촬영 후반부의 인상적인 사진 한장을 게시했다. 시아마는 화랑 장면을 찍을 당시에 카메라를 뒤로한 채 마통과 자신이 서로를 지탱하듯 포옹하고 있는 모습을 공개하는 것으로 촬영감독을 향한 존경과 애정을 표현했다.

2019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 <애틀랜틱스> 2018 <라울 타부린> 2017 <코르시카의 형제들> 2016 <스테잉 버티컬> 2015 <몽 루아> 2015 <투 프렌즈> 2013 <호수의 이방인> 2012 <쓰리 월드> 2011 <꽃다운 아이리스> 2009 <사랑의 여왕> 2009 <칙스> 2006 <리실리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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