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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숏폼 콘텐츠의 부상이 의미하는 것
장영엽 2020-09-11

“극장 좌석마다 모니터를 놓아야 할까봐요.” 언젠가 극장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휴대폰으로부터 10분도 눈을 떼기 힘든 관객이 적지 않은 만큼, 두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게 하려면 좌석에 모니터를 설치해 인터넷과 메신저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특단의 조치라도 취해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에서 나온 얘기다. 그의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던 건, 우리가 손을 뻗어 TV 리모컨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5G 시대를 이미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나 터치 한번으로 초연결이 가능한 사회에서 오랜 시간 한 가지 콘텐츠에 깊이 집중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대중이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니 매체들도 앞다투어 변화를 선언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올해 8월 말을 끝으로 81년 만에 지면에서 TV 편성표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확고하게 스트리밍의 시대에 와 있다. TV 편성표가 더는 사람들의 TV 시청 방식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더이상 TV 편성표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 웹상에 쏟아지는 수많은 콘텐츠들 가운데서 어떤 작품을 봐야 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는다. 10~2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공략하는 숏폼 콘텐츠의 부상은 효율성과 편리함이 최고의 미덕인 이 시대에 필연적인 변화로 느껴진다.

앞으로 이러한 변화의 상승폭이 점점 더 가팔라질 거라 짐작되는 건 9월1일 개국한 카카오TV의 사례와 같이 저예산, 1인 크리에이터 중심으로 제작되던 숏폼 콘텐츠의 생태계에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수연, 김소미, 배동미, 남선우 기자가 취재한 이번호 특집 리포트 ‘숏폼의 시대, 숏폼의 미래’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만날 수 있다. <문명특급> <여우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 <네고왕> 등 주요 숏폼 콘텐츠 생산자들의 경험담과 시장 예측을 취재했고, 회당 100만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화제의 웹드라마 <연애혁명>의 촬영 현장을 직접 찾아 배우 박지훈, 이루비, 영훈을 만났다. 기사에 따르면, 숏폼 콘텐츠가 짧은 시간 안에 급부상한 이유는 시청자들의 소비 패턴에 최적화된 포맷 덕분이기도 하지만 러닝타임이 길고 규모의 제작비가 요구되는 콘텐츠에 비해 의사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고 주제 선정이나 방송 수위에 있어 레거시 미디어보다 도전적인 기획을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5~18살, 19~22살’처럼 비슷한 연령대에서 시청자들의 타깃을 세분화해 공략하려는 시도도 귀감이 될 만하다.

숏폼 콘텐츠가 영화의 미래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소비자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숏폼 콘텐츠 창작자들의 노력이 영화와 같은 롱폼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있을 거라고 본다. 이번 특집 기사가 엄혹한 시기에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창작자들에게 유의미한 자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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