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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죽음, 드라마가 된 음악
2001-03-22

에바 캐시디의 `Time After Time`

`Time After Time` 에바 캐시디/명음레코드 수입

음반이든 영화든 소위 리뷰라는 글줄들을 읽다 보면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는 단어가 ‘effortless’이다. 별 힘 안 들이고 그냥 설겅설겅하는

것 같은데도 그게 전부 걸출하다는 뉘앙스의 칭찬이다. 말하자면 자연스러워서 능란하다는. 헌데 자연스럽다는 것은 기술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전략도 없다. 전략이 없기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에바 캐시디의 노래는 이런 상념을 가능하게 한다. ‘effortless’한 가수의 전략

없는 한줌 인생. 팝송은 물론 재즈, 트래디셔널 민요 및 포크, 블루스와 리듬앤블루스, 가스펠 모두를 똑같은 강도의 감정으로 소화할 줄

아는 그녀 최고의 매력을 확신하고서 그녀에게 정식 레이블 계약을 맺게 해 주려고 애썼던 그녀의 매니저는, 역설적으로 주 스타일이 뭔지 분명히

하라며 번번이 거절하는 음반사 직원들만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그 사이 주변의 친우들과 평소 그녀의 (자신의 노래를 취미 이상의 직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는) 성격을 아는 몇명의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음반들이 그들만의 추억거리로 제작되었고, 오직 그 반경

내에서 사랑받았다. 이 과정은 모두, 너무 자연스러워서 참 이상한 여자였던 에바 캐시디가 한사코 자신의 노래 재능을 확신하지 않으려 했고,

그것이 설상가상 답답할 정도로 수줍은 그녀의 성격을 통해 가당찮은 겸손으로 받아들여진 탓에 거치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미국 워싱턴 시 교외에서 자전거 타기와 전원을 (너무) 사랑하며 사는 풍경화가 에바 캐시디에게 음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질, 친구들 사이의 놀라움, 소박한 자기만족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에바 캐시디는 1996년, 서른세살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이 지점에서 그녀의 노래는 드라마가 되기 시작했다. 죽음, 그것도 때 이른 죽음은 필연적으로 때늦은 후회를 부추기고 불필요한

미화를 낳게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결코 야단법석처럼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노래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녀의 레퍼토리는 모두 커버곡이었지만

그녀는 마치 그 모든 곡의 싱어송라이터처럼 들린다. 리메이크의 키포인트가 되는 ‘해석’의 경지에서 그녀가 자신의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보여주는

감탄할 만한 중용의 도(中庸之道)는 스팅의 `Fields Of Gold`나 샹송의 고전인 `Autumn Leaves`,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 그리고 상당수의 에바 캐시디 팬들을 양산한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가 `Over The Rainbow` 들을 통해서

조용히 웅변적으로 체험된다. `Time After Time`은 이전에 나왔던 `Songbird`와 함께 에바 캐시디의 그와 같은 면모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앨범이다. 타이틀곡이자 아까 언급된 신디 로퍼의 80년대 히트곡인 `Time After Time`을 비롯, 빌

위더스의 `Ain’t No Sunshine`, 조니 미첼의 `Woodstock`, 전해내려오는 포크 고전 `I Wandered By A

Brookside`와 가스펠 고전 `Way Beyond The Blue` 등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Way Beyond The

Blue`와 `Time After Time` 그리고 첫 곡인 폴 사이먼의 `Kathy’s Song`을 역순으로 듣는 체험은, 아쉬우나마

왜 모든 레코드사에서 그녀에게 주 스타일이 뭔지 분명히 하라고 말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게 해줄 훌륭한 샘플 코스가 될 것이다. 더불어 전략

없는 인생에 발버둥치지 않는 ‘effortless’의 노래가 어떤 방식으로 위안이 될 수 있는지도 알려줄 지 모르는.

성문영/ 팝음악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