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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올해의 미국영화
장영엽 2020-11-20

이번호 특집은 데이비드 핀처의 신작 <맹크>다. 이 작품에 ‘미로’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가 당황하게 될 독자들을 위해서다. 1930, 40년대를 배경으로 당대 할리우드의 천재 작가이자 기인이었던 허먼 J. 맹키위츠의 <시민 케인> 각본 집필 과정을 조명하는 <맹크>는 대담하게도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사의 걸작과 1930년대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라는 OTT 플랫폼에서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한 관객이라면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맥락에 대한 최소한의 사전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거침없이 대사를 쏟아붓는 초반부에 관람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자 여러분에게 <맹크>에의 도전을 제안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몇 가지 진입 장벽을 넘어선 이들에게- 실은 영화를 즐기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수 없는 장벽이다- <맹크>는 영화라는 매체의 신묘한 비밀을 가감 없이 알려준다. <시민 케인>의 공동 각본가인 맹키위츠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감독 오슨 웰스와의 크레딧 논쟁을 주요하게 다룰 거라 예상됐던 이 작품은 막상 공개되고 나니 영화 창작 과정과 협업의 의미를 탐구하는 영화였다. 데이비드 핀처는 특히 영화 제작에 수반되는 “강제적 협업”이 때때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맹크>는 <시민 케인> 프로젝트를 총괄한 감독 오슨 웰스와 각본가 허먼 J. 맹키위츠의 은근한 기싸움과 더불어 맹키위츠의 원고 마감을 돕는 팀원들의 지난한 노고를 공들여 묘사한다. 60일이라는 마감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시나리오 작업과 관련된 모든 인물들이 술이 없으면 못 사는 작가를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 마침내 탈고에 이르는 과정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다른 한축에서 <맹크>는 자기 자신과 싸우는 아티스트의 초상에 주목한다. 셰익스피어적인 재능보다 상업적 감각과 정확한 마감 일정을 중요시하는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창작자가 신념을 잃지 않으려면 시스템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상황을 주시하며 안온한 대세라는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잡는 수밖에 없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때로는 타협이라는 선택지를 택할지라도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는 태도의 미덕을 이야기하는 <맹크>는 수십년간 작가로서의 노선과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오가며 미국영화의 지평을 넓혀온 데이비드 핀처의 행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핀처가 지난 2003년 작고한 아버지 잭 핀처와 함께 30여년의 세월을 경유해 꿈꿔온 ‘드림 프로젝트’인 <맹크>는 20세기 폭스사의 중역들에게 <에이리언3>의 후반작업 편집권을 빼앗기고 자신의 데뷔작을 스스로 부정하는 굴욕을 경험했던 한 미국 감독의 통쾌한 승리담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아무쪼록 올해의 가장 주목해야 할 할리우드영화 중 하나인 <맹크>를 둘러싼 이번호 특집 기사의 다채로운 글들이 데이비드 핀처의 세계관과 다소 난해해 보이는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유의미한 안내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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