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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낯설지만 압도적인 - 백현진 《Csimplex 04》

백현진을 생각하면 입을 여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어어부 프로젝트로 활동하던 시절 부조리한 이야기로 전개되던 가사를 포효하던 패기가 그렇고, 여러 솔로 작업에서도 감각적인 언어와 탁월한 음율로 부르던 노랫말이 그의 입에서 두드러졌다. 할 말이 많은 아티스트라고 생각했고, 그가 고른 낱말과 문장과 이야기들은 갈수록 깊이를 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입을 닫았다. 11년의 공백을 깨고 2019년에 발표한 《가볍고 수많은》에선 사람들이 기대하던 가볍고도 수많은 백현진표 감정을 담은 가사로 출렁거렸는데, 이번엔 의미를 알 수 없는 청각적 기호들만으로 채운 음반을 냈다. 열세개의 트랙은 A1번부터 A7번까지, B1번부터 B6번까지 건조하디건조한 제목으로 나열돼 있고 크라임 신(Crime Scene)이 찍힌 야간 CCTV 같은 아트워크만이 이야기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일한 단서다. 모든 곡은 전자음으로만 구성되었고 B 트랙에서야 귀를 기울이면 알아챌 수 있는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그마저도 심하게 왜곡돼 있다. 화성이 없고, 멜로디가 없으며, 노랫말이 없다. 그런데 음원을 클릭하는 순간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 세계에 유리 막을 씌운 듯한 강한 단절을 체험하게 된다.

영화나 게임의 사운드트랙에 더 가까운 백현진의 음반은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주변의 풍경에 효과음을 입히고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사물들에 대한 청자의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과 주위가 전부 비현실의 세계처럼 낯설게 다가오는 체험을 하다 보면, 백현진이 의미 없는 소리만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표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하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백현진의 새 음반 《Csimplex 04》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상투적인 수식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그의 소리로 덧입힌 새로운 세계관 속에서 하는 경험이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PLAYLIST+ +

클리프 마르티네스 《The Wilds》

1980년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드러머로도 활동했던 클리프 마르티네스는 1990년대 이후 가장 중요한 영화음악감독을 꼽을 때 주저 없이 등장할 이름이다. 2016년 칸국제영화제에서 베스트 사운드트랙상을 받은 이후 쉼 없는 행보를 보이던 그가 이번에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 <더 와일스>(The Wilds)의 스코어로 돌아왔다.

키세와 《BULLET BALLET》

화성, 멜로디, 감성이 배제된 차가운 사운드, 즉 인더스트리얼 계열의 음악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의 전자음악 신에서도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파괴적인 감각이 날카롭게 구조화된 음반이 바로, 키세와의 《BULLET BALLET》이다. 음원과 카세트테이프로만 발매된 이 음반 역시 A1부터 A6까지, B1부터 B5까지 건조하게 나열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