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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이로운 소문' 염혜란 - 치유하고 공감하며
남선우 사진 오계옥 2021-01-14

능력자들 사이엔 중재자가 있기 마련이다. 각자의 기술과 개성이 또렷한 카운터들 중에도 그런 캐릭터가 있다. ‘언니네 국수’의 ‘언니’이자 <경이로운 소문>의 힐러를 맡고 있는 추매옥이 바로 그런 사람. 흥분과 차분을 오가며 주변인들을 북돋아주다 자신의 힘이 필요한 곳을 향해 스카프를 바싹 매고 달려가는 매옥은 카운터들간의 융화는 물론 존속도 가능케한 베테랑이다. 매옥을 연기한 배우 염혜란 또한 <경이로운 소문>팀에 그런 존재인 듯했다. 표지 촬영 내내 유준상 배우가 앞장서서 파이팅을 불어넣고, 조병규·김세정 배우가 전천후로 에너지를 발산할 때 그는 엷은 미소로 이들의 등을 토닥였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제 몫을 다하는 그의 아우라는 과연 추매옥을 닮아 있었다.

-데뷔 21년차에 <경이로운 소문>으로 전에 없던 액션 신을 소화 중이다.

=다른 카운터들에 비하면 액션 신이 많지는 않은데, 달리는 신은 많은 편이다. 너무 잘하고 싶고 욕심도 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많이 느낀다. 아무래도 출산 후라 체력이 더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훈련이 더 필요했나 싶다. 평소에 헬스도 다니고 필라테스도 했는데, 한번 쫙 달리고 나면 근육이 놀란다. (웃음)

-그래도 매옥에겐 치유 능력이 있다. (웃음) 액션과 더불어 절절한 감정 연기를 요하는 부분이다. CG 처리도 염두에 두고 움직이나.

=어느 때보다 염두에 둔다. 판타지 장르가 어려운 게,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 진짜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하더라. 특히 치유 신을 찍을 때 내 연기가 진짜가 아니라 흉내내는 것으로만 보이면 우스워지겠구나 싶어 절절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의사는 아니어도 누군가가 낫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연기했다.

-9화에서 크게 다친 소문(조병규)을 고쳐주며 <엄마 손은 약손>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그 간절함이 부각됐다.

=혹시 노래 부르는 게 웃기진 않았나. 웹툰에서는 <아! 옛날이여>를 부르고 드라마 대본에선 노래가 삭제됐는데 기자가 보기엔 어땠나.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서로를 위해 부를 법한 노래라 생각한다.

=생사를 오가는 위험한 상황인데 노래를 부르면 튈까봐 고민이 많았다. 이런저런 노래를 많이 찾다 <엄마 손은 약손>으로 감독님에게 제안을 드리면서도 너무 ‘착붙’이라 별로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감독님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셔서 결국 부르게 되었다.

-그 장면에서 매옥이 소문의 상처에 스카프를 동여매주지 않나. 초반부터 매옥의 패션 아이템으로 쓰인 스카프가 매옥의 초능력과 연결되면서 더 눈에 들어 오더라. 다양한 디자인의 스카프는 어떻게 준비했나.

=처음에는 중년 여성이 입는 등산복 차림의 일환으로 손수건을 두르겠거니 생각했는데 촬영에 나서면서 실제로 손수건을 매는 순간, 이게 치유 과정에 이용될 수 있겠다는 직감이 확 들었다. 치유의 상징으로 계속 가져가면 좋겠다고 해서 엄청나게 많은 손수건을 준비했다. 극이 밝은 분위기일 때는 밝은색을, 자고 일어났을 때는 가제수건을 매치하고 있다. 9화 같은 경우 피 색이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연한 톤으로 신경 써봤다.

-스카프는 매옥이를 넘어 염혜란 배우의 시그니처가 된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에서 어린 지영을 버스에서 도왔던 ‘과거 스카프 여자’ 역도 떠오르고.

=와, <82년생 김지영>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배역 명도 그랬다.

-언제든 누군가를 위해 손수건을 건네줄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 바로 매옥이다. 신체 능력과 공감 능력 모두 훌륭한 매옥의 또 다른 힘이 바로 동료들의 활약을 열렬히 응원하고 칭찬하는, 그러니까 ‘알아봐주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들으니 너무 좋은 능력이다. (웃음) 카운터 한명 한명을 떠올렸을 때 매옥이 ‘엄마 카운터’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웹툰을 그린장이 작가님도 네 사람이 가족처럼 보이기를 원했다고 하더라. 엄마 같다는 말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긴 하지만 없으면 뭔가 허전한, ‘이 사람이 우리의 구심점이었구나’ 싶은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어른으로 보일 수 있는 기성세대이고 싶었다. 꼰대 같지 않은, 어린 세대와 함께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 ‘워너비’ 기성세대가 현장에서는 (유)준상 선배님이다. 우리 팀의 구심점으로서 모두를 포용해주신다.

-시청자들은 댓글에 염혜란 배우의 옛 일터도 소환한다. 드라마 <도깨비>의 은탁 이모, <쌍갑포차>의 염라대왕을 언급하며 저승과의 인연을 기억하더라.

=당시에는 그저 판타지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었을 뿐 내가 실질적으로 어떤 능력을 크게 발휘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요즘에는 세계관이라는 표현을 쓴다던데, 사실 그 세계관 속에서 하는 대사들이 한 꺼풀만 벗겨도 말이 안되지 않나. 현실에 없는 단어들도 많이 쓰고. 배우로서도 그런 대사들이 낯설 때가 많은데 어떻게 시청자를 설득해야 할지 늘 고민스럽다. 할리우드에서 히어로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진짜 잘하는 배우들이라는 걸 절감했다.

-원래 이런 장르에 친숙하지 않은 편인가.

=현실에 닿아 있는 작품들을 많이 보지 현실에 없는 이야기는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경이로운 소문>이 엄청난 도전이었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나 지금 되게 새로운 거 하고 있구나’ 되새겼다.

-그럼에도 판타지와 리얼리티를 열심히 오가며 연기 중인데, 극의 세계관이나 장르에 따라 배우로서 마음가짐에 차이가 생기나.

=판타지 장르일수록 연출과 촬영을 비롯한 수많은 요소가 서로 의지하고 합을 맞춰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모든 것이 그럴듯하고 그럴싸하게 보이려면 내 연기 외에 엄청난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으며 시작한 2020년에 <야구소녀> <이웃사촌> 개봉과 더불어 드라마 <쌍갑포차> <슬기로운 의사생활> <경이로운 소문>에서 활약했다. 2021년에도 <새해전야> <빛과 철> <시민덕희> <태일이> 같은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다작 비결이 궁금하다.

=지난해 상반기는 육아만 하면서 쉬었는데 찍어놓은 게 많다보니 뭐가 많이 나왔다. 비결은, 거절을 안 해서? (웃음) 물론 어쩔 수 없이 거절하는 작품도 생기기 마련인데 자꾸 욕심이 난다. 작품마다 다른 매력이 발견된다. 내게 오는 작품들이 다 반갑다. <경이로운 소문>을 찍으면서는 내가 가진 게 많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2021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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