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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계속된다] 임순례 감독 - 즐겁고도 심오한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21-04-08

1 내 생애 최초의 극장 경험. 또는 내가 영화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순간.

=7~8살 때쯤이었다. 옆집 친구 엄마가 어렸을 때 만주에서 살다와서 중국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 가족이 영화를 보러 소사(지금의 부천) 극장에 갈 때 꼽사리 끼어서 갔던 게 첫 영화 경험이다. 처음으로 영화예술 혹은 영화 매체가 강력한 인장을 남긴 작품은 중2 때 시험 끝나고 단체 관람으로 봤던 <빠삐용>이다. 그리고 대학 다닐 때 프랑스 문화원에서 150여편의 프랑스 고전영화를 보면서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2 영화가 나를 구원한 순간은 언제인가.

=어렸을 땐 영화를 수동적으로 즐겼다면 날 능동적인 관객으로 만들어준 건 프랑스 작가영화들이었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문학 작가, 위대한 고전음악이나 미술에 뒤지지 않는 만큼 영화가 인생을 성찰하게 하는 심도 깊은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파리에서 영화 공부를 할 때 시네마테크에서 늦은 시간 상영된 영화를 보고 센강을 따라 1시간 반 정도 집까지 걸어오며 영화를 계속 곱씹고 여운을 되새기곤 했다. 그 역시 스크린을 넘어서 영화와 함께하는 시간이었고,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3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명대사와 명장면.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희생>에서 소년이 하늘을 보며 던지는 마지막 질문.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에서 비 오는 엔딩 장면.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에서 안개 속에 갇힌 남매의 모습. 그리고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에 항상 등장하는 빈 병 버리는 등 굽은 노파의 모습.

4 언젠가 연기하고 싶은, 혹은 연출하고 싶은 궁극의 캐릭터와 영화가 있다면.

=코미디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모든 세대와 계층의 사람들이 깔깔대면서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무런 불행을 맛보지 않고 그 사람을 만난 모든 이들까지 행복이 전염되는 그런 캐릭터도 그려보고 싶다.

5 영화에 하고 싶은 말, 영화에 듣고 싶은 말.

=영화야, 너는 잘하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우리가 잘할게. 영화는 인류가 아무리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도 우리에게 아름답고 즐겁고 심오한 것들을 줬다. 다만 영화가 가진 가능성, 그 어떤 매체보다도 심오한 울림을 줄 수 있는 고유의 순수한 예술적인 본질이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본질을 잊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영화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고 친구이고 예술로 영원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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