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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X전여빈X차승원의 제주도 누아르, <낙원의 밤> 첫반응
송경원 임수연 조현나 2021-04-09

<신세계><마녀>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6번째 연출작 <낙원의 밤>이 4월 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누아르 장르 세계 안에서 주로 ‘혈전’을 그려왔던 박훈정 감독은 전작 <마녀>에서 잠깐 십대 소녀와 초능력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가 이번에는 제주도라는 공간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다면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혈전’을 다루는 영화가 될까.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던 <낙원의 밤>이 드디어 공개됐다.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한 줄 소개만으로는 가이드가 부족하다고 여길 독자들을 위해 스포일러 없는 가이드를 준비했다.

송경원 기자

“내성적인 갱스터.”(Radio Ca' Foscari).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박훈정 감독의 여섯 번째 영화이자 서정적인 누아르물인 <낙원의 밤>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합을 통해 이색적인 감흥을 자아내고자 애쓰는 영화다. 낙원처럼 아름다운 제주도와 밤처럼 어두운 조직폭력배의 세계. 처절한 누아르의 폭력성과 아련한 멜로드라마의 조합. 의도는 이해 간다. 보색 효과처럼 섞이지 않는 것들을 대비시키는 것만으로 비장미가 농후해질 수도 있다. 박훈정 감독이 이를 위해 택한 전략은 치밀한 음모나 복잡한 플롯이 아니다. 대신 상황과 장면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누아르 특유의 차갑고 어두운 색감과 제주도의 푸른빛이 더해져 밤바다의 심연을 그리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영화는 ‘내성적’이란 단어를 다소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캐릭터가 말수를 줄이고 가만히 바라본다고 깊이가 더해지는 건 아니다.

<낙원의 밤>의 가장 큰 패착은 정작 캐릭터(혹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영화의 의도와 스타일, 서사가 모두 겉도는 안타까운 상황에 봉착한다. 그나마 엄태구, 전여빈, 그리고 나름 원칙이 있는 조직폭력배 마 이사 역의 차승원 배우가 캐릭터에 부피를 더하려 하지만 대부분 역할 자체보다는 배우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개성에서 비롯되는 생기에 불과하다. 폭발하는 액션, 적당한 농담과 때깔 좋은 화면까지 기계적인 조합에 힘입어 무난하게 볼만한 장르영화로 소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딘가 시대착오적이란 인상만큼은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다.

임수연 기자

<낙원의 밤>의 전개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조직의 에이스 태구(엄태구)가 타 조직의 보스를 상대로 피의 복수를 감행하는 대목에서부터 웬만한 관객은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클리셰를 문제 삼는 것은 이 계보의 누아르 장르물에 그리 적합한 지적은 아닐 터. <낙원의 밤>의 승부수는 태구와 재연의 감정적 교류, 감각의 역치를 시험하는 과포화의 폭력이 이국적인 제주도의 풍광과 만나 빚어내는 의도적인 불균질성에 있다.

액션의 완성도를 놓고 보자면, <신세계>와 <마녀>를 좋아했던 관객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몇몇 그림이 존재한다. 하지만 몇몇 순간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가 납득되지 않는 <낙원의 밤>은 시나리오만으로는 치명적인 구멍이 산재했을 영화로 보인다. 그럼에도 엄태구와 전여빈은 그 공백을 순간적으로 잊게 만드는 밀도 높은 카리스마를 스크린에서 뿜어내는 배우들이다. 무엇보다 전여빈이 연기하는 재연은 태구가 지켜줘야 할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폭주하는 누아르 복수극의 주인공으로서 존재하며, 기존 남성 주인공의 클리셰를 두 주연 배우가 공평히 나눠 가져간다.

조현나 기자

<낙원의 밤>은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와 공허함, 액션이 적절히 섞인 누아르 영화다. 공허함은 살아갈 이유를 잃은 인물들, 태구(엄태구) 재연(전여빈)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며 서늘함은 앞의 두 인물과 마 이사(차승원)의 복수심이 자아낸 것이다. 감정은 이미 증발했지만, 상대를 끝까지 쫓아 기어코 짓이기고 말겠다는 다짐들이 엮어 그 힘으로 후반부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이 섞이며 그 질주는 더욱 서글퍼진다. 하지만, 익숙하다. 서사의 흐름, 액션, 만듦새, 감초 같은 농담까지 빠짐없이 매끈하고 시선이 가지만, 그 시선을 붙잡아 둘 새로움이 없다. 그 점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등장하는 배우들은 전부 본래 자신의 것인 양 맡은 인물들을 완성해냈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영화의 후반부를 오롯이 책임지는 배우 전여빈. <마녀>의 배우 김다미가 그러했듯, <낙원의 밤>에서 발견한 전여빈의 얼굴은 신선하고, 더없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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