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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인간의 생존신고' 外
씨네21 취재팀 2021-11-23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김아현 / 한국 / 80분 / 2021년 / 본선 장편경쟁

하정과 아현이 가수 이승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그가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 출전해 유명해지기 전인 2018년 말이다. 하정과 아현은 그들이 만든 단편영화 상영을 계기로 참여한 음악회에서 처음 이승윤과 만난다. 하정은 이승윤의 노래에 매료돼 그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의 노래 <무명성 지구인> 뮤직비디오 촬영본을 첨부해 그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낸다. 우려와 달리 흔쾌히 협업에 동의하는 답장을 받고 하정과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호기롭게 시작했어도 소품, 의상, 콘티, 편집까지 모든 작업을 스스로 돌파해야 하는 그들에게 뮤직비디오 제작은 난관의 연속이다. 영화는 모든 창작 활동의 고충을 축약한 작은 소품 같다. 무엇보다 후반으로 갈수록 보여주거나 보여주지 않아야 할 장면을 선택해 제시하는 전략이 영리하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포옹>

임흥순 / 한국 / 75분 / 2021년 /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임흥순 감독의 새 장편 <포옹>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변화한 우리의 일상을 담담히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다. 재난을 해결하고 치료하는 데에 집중하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으며 가치 없다고 여기게 됐는지 느린 호흡으로 짚는다. 영화는 한국 외에도 일본, 인도, 미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의 예술가들이 보내온 푸티지를 편집해 완성됐다. 온라인 소통이 당연해진 현실, 마스크가 익숙해진 만큼 포옹은 어색해진 각지의 삶이 한산한 풍경과 함께 드러난다.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세상 속에서, 등장하는 모두가 팬데믹의 종식을 바라지만 아직은 꿈밖에 꿀 수 없는 현실이 쓸쓸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상영작이다. 조현나

<집에서, 집으로>

지혜원 / 한국 / 95분 / 2021년 / 본선 장편경쟁

40여년 전 미국으로 입양됐던 소녀 김명희는 중년의 애나가 되어 한국에 돌아온다. 서해의 아름다운 섬 덕적도에는 부모를 잃은 자신과 동생들을 친자식처럼 돌봐주었던 서재송, 인현애 부부가 살고 있다. 1966년부터 30여년간 서재송 부부가 최분도 신부와 함께 해외로 입양 보낸 아이들은 1600여명. 부부의 집에는 입양 간 아이들에 대한 살뜰한 기록과 흔적이 가득하다. 부부의 헌신적 삶은 한국의 아픈 역사를 환기하고, ‘마음의 집’을 찾아 떠도는 애나의 발걸음은 무수한 ‘명희’들의 눈물 자국을 쓰다듬는다.

지혜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집에서, 집으로>는 “돌아오고 싶었던 집에 돌아와 기쁘다”는 애나의 담백한 목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입양아들을 떠나보내며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던 부부의 애틋한 마음과 달리 떠나간 아이들이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영화는 오랜 아픔과 방황의 시간을 견뎌낸 애나가 ‘나’를 찾아가는 모습을 중심으로 입양인들의 결핍과 그리움을 들여다본다. 박정원 영화평론가

<스프린터>

최승연 / 한국 / 87분 / 2021년 / 개막작

0.1초의 승부를 겨루는 사람들. 바로 육상 스프린터다. 영화는 육상 100m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세명의 선수를 바라본다. 현수는 국가기록을 두번이나 갈아치운 이력의 소유자지만 지금은 소속된 곳 없이 공공 운동장에서 홀로 대회를 준비하는 신세다. 10살 이상 차이나는 어린 선수들을 제치고 선발권에 들기엔 힘에 부치는 데다 아내의 눈치도 봐야 하는 현수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준서는 고교 랭킹 1위지만 3년째 기록이 제자리다. 답보 상태인 준서의 성적에 학교는 육상부를 해체하려 한다. 어떻게든 준서를 지원하려던 코치는 육상부 유지와 자신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얽히자 고민에 빠진다. 후배들의 견제가 심한 정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기록을 끌어올리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는 위험한 선택을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코치는 정호에게 화를 내지만 결국 정호의 행동에 눈을 감는다. 이들 각자의 사연은 그들이 같은 트랙에 나란히 서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광경이 믿기지 않을 만큼 결이 다르고 완결된 모습을 갖춰 각각의 영화로 만들어도 무방해 보인다. 영화는 세 인물의 사정을 이음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하면서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정성스레 담아낸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흐르다>

김현정 / 한국 / 123분 / 2021년 / 본선 장편경쟁

취업 준비생 진영은 무뚝뚝한 아버지, 집안의 가교 역할을 하는 어머니와 살고 있다. 진영은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기를 원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탓에 부모의 공장에서 일을 도와주며 이따금 용돈벌이를 한다. 어느 날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에 관심을 갖게 된 진영은 나이 제한 때문에 올해가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차근차근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던 진영의 일상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고사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죽음을 애도하기에도 모자란 시간, 공장 운영에 위기가 닥치고 아버지와 진영은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문제를 대면한다.

김현정 감독의 <흐르다>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와 딸이 마주한 풍경을 담담한 시선과 차분한 태도로 담아낸다. 삼각형의 균형을 이룬 가족 관계에서 어머니가 사라진다는 것은 하나의 점이 없어지는 것 이상의 상실과 소멸을 의미한다. 덩그러니 두개의 점으로 남겨진 부녀는 원치 않아도 의논과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을 쉼 없이 맞닥뜨리고, 그 과정의 서투른 소통은 두 사람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 영화는 ‘그럼에도 흘러가는’ 삶의 미묘한 속성과 그 시간을 기어코 견뎌낸 이들의 저릿함을 그려내며 짙은 여운을 남긴다. 박정원 영화평론가

<오늘 출가합니다>

김성환 / 한국 / 90분 / 2021년 /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모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4년째 영화를 준비 중인 진우는 출가를 결정한 성민을 배웅하기 위해 원주를 방문한다. 다음날 진우는 성민과 절 앞에서 헤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성민에게 전화가 온다. 하필 찾아간 절의 출가 조건이 45살 이하라 성민을 받아주지 못했던 것. 진우는 강원도까지 찾아온 마당에 성민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성민과 하룻밤을 더 보내고 다음날 두 번째 절을 찾아간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진우와 성민은 헤어지지만 그들은 곧 다시 만난다.

영화는 진우와 성민의 뜻하지 않은 동행을 다룬 로드무비다. 동행의 과정에서 그들은 절이든 영화든 들어가기 힘든 현실에서 비롯한 좌절을 극복하는데, 인물의 심리 변화가 강원도의 자연경관과 절묘히 결합하는 방식을 주목할 만하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멜팅 아이스크림>

홍진훤 / 한국 / 70분 / 2021년 / 본선 장편경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창고에서 수해를 입은 필름들이 발견된다. 손상된 필름들에는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의 일부 모습이 촬영되어 있다. 영화는 필름을 복원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그 시기를 기억하는 이들의 여러 목소리를 함께 담아낸다. 그들에게 ‘사진’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이 열망하던 것과 이뤄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화는 정제된 말들로 답변의 자리를 채우는 대신, 2000년대의 투쟁과 시위 영상을 곳곳에 삽입해 노동운동의 순간들을 소환한다. 처절하고 절박한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규를 통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를 향한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열기가 가신 ‘그 후’ 노동자들의 비명과 눈물이 담긴 푸티지는 녹아내린 민주화운동 필름과 기묘한 짝을 이루며 과거화, 영웅화, 신격화로 인해 묻힌 비극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박정원 영화평론가

<그 겨울, 나는>

오성호 / 한국 / 99분 / 2021년 / 본선 장편경쟁

20대의 끝자락에 놓인 어느 젊은 연인이 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경학과 취업 준비생 혜진이다. 혜진의 자취방에서 동거 중인 두 사람은 곤궁한 살림에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지지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문제는 경학이 어머니의 빚 2천만원을 떠안게 되면서 생긴다. 공부를 그만두고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경학은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해 배달 일에 나선다. 혜진 또한 취업이 되어 바쁜 나날을 보낸다. 끝없이 들어오는 콜을 받아내야 하는 경학의 오토바이가 분주하게 도심을 달리고, 각자의 격무에 시달리는 연인의 관계는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연애경험> <눈물> 등의 단편을 만들어온 오성호 감독은 첫 장편 연출작 <그 겨울, 나는>에서 냉혹한 현실을 힘겹게 버텨내야 하는 젊은 연인의 초상을 그려냈다. 차디찬 풍랑과도 같은 세상살이 속에서 연인의 사랑은 곧 꺼질 듯한 위태로운 촛불처럼 아슬아슬하게 타오른다. 사랑도 공부도 전부 사치가 되어버린 잔혹한 현실을 향한 경학의 필사적인 발버둥이 영화 전반을 애처롭게 이끌어간다. 설움을 묵묵히 참고 참던 경학이 끝내 터트리고 마는 울음과 그 이후의 선택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박정원 영화평론가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김오안, 브리지트 부이오 / 한국, 프랑스 / 79분 / 2020년 /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감독의 아버지는 올 초 타계한 김창열 화백이다. 그는 1971년 처음 물방울을 그린 이후 죽을 때까지 물방울만 그린 이른바 ‘물방울 작가’다. 감독에게 아버지는 달마대사에 관한 이야기만 하거나 침묵을 고수하는 기묘한 존재였는데,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탐구하는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감독은 아버지의 침묵에는 생각지 못했던 삶의 굴곡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국전쟁 당시 무수한 잔혹한 죽음과 고통을 경험한 아버지에게 창작은 외상을 해소하는 진지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뉴욕에서 접한 예술의 세계는 그의 태도와 전혀 상관없는, 소비문화가 짙게 반영되고 가볍게만 보이는 팝아트인 점에 실망한다. 파리로 건너간 그는 어느 날 화실에서 빛나는 물방울을 발견하고는 물방울에 천착하는 일과 고독한 침묵을 시작한다. 거부감이 들었던 아버지의 침묵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을 만한 유일한 가치라는 점을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아버 지뿐 아니라 그 자신도 이해하게 됐다는 걸 관객은 알게 된다. 화백의 작품뿐 아니라 여러 파운드 푸티지 장면을 유려하게 편집한 미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성덕>

오세연 / 한국 / 86분/ /2021년 /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성덕>은 “나도 누군가의 팬이었다”라는 오세연 감독의 자기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TV에서 러브레터를 낭독하고 한복을 입고 팬미팅에 참여하며 좋아하는 가수에게 눈도장이 찍힌, 소위 말하는 ‘성공한 덕후’였다. 10대 시절 그 열정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왔으나 정준영이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며 오세연 감독은 자신의 과거를 마음 편히 끌어안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지난 시간을 흑역사라 치부해버리는 대신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팬들을 만나 혼란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택한다. 20대 여성들이 주요 인터뷰이로 등장하나 자신의 어머니,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의 사람들을 만나며 ‘좋아하는 마음’의 복잡한 면면을 살핀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조현나

<서바이벌 택틱스>

박근영 / 한국 / 113분 / 2021년 / 새로운선택 장편

성령은 언니 성희가 죽은 뒤 행정 처리를 위해 성희의 학교를 방문한다. 사람들은 성희가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말을 한 적 없다며 그녀가 괜스레 거짓말이나 하는 관종이라고 수군댄다. 식물인간 아버지를 간병하는 우호는 틈틈이 가짜환자의 뒤를 밟으며 증거를 수집하는데, 아버지 병환과 관련 있는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둘은 성희의 죽음을 이유로 조우한다. 그린데 이때 등장하는 우호는 오른발을 잃은 모습이다. 영화는 서사를 완결하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보다 오해, 의심, 질병, 장애와 같은 곤경에 빠진 인물의 모습과 행동을 상당한 시간과 공간을 할애하여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데 공을 들인다. 그 결과 영화 마지막에 이르면 모호함이 충만함으로 바뀌는 신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김성찬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