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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 한글자막을 기다리며
남선우 2021-11-26

<틱, 틱... 붐!>으로 린마누엘 미란다의 성공적인 할리우드 데뷔를 확인한 다음날은 공교롭게도 디즈니+의 한국 서비스 론칭일이었다. 그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토니상, 그래미상, 퓰리처상, 맥아더 펠로십까지 안기며 브로드웨이의 역사를 쓴 <해밀턴>의 공연 실황을 정식으로 볼 수 있는 날이었다는 뜻이다. <해밀턴>을 떠올릴 때면 책 한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허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은 <인 더 하이츠>를 마친 린마누엘 미란다가 공항에 앉아 알렉산더 해밀턴의 전기를 읽으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10달러 지폐에 초상을 새긴, 고아이자 이민자 출신 초대 재무부 장관의 파란만장한 삶에 매료된 미란다는 그의 삶을 무대로 옮겨 정부의 알렉산더 해밀턴 10달러 퇴출 논의도 백지화시키는 뮤지컬 효과를 일으킨다.

그러니 디즈니+에 가입하자마자 <해밀턴>을 검색할 수밖에. 하지만 기대는 금세 당혹감으로 덮였는데, 한글자막이 서비스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영어자막을 켜고 보기 시작한 <해밀턴>은 역시나 한글자막의 필요성을 강력히 느끼게 했다. 랩을 음악적 도구로 선택한 데 따른 수많은 대사량,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를 훑는 시간적 배경,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비교적 낯선 인물 덕에 그렇다. 그럼에도 디즈니+의 <해밀턴>이 압도적이었던 이유로 힙합, R&B, 재즈 스타일의 넘버들이 선사하는 박진감을 한층 업그레이드해주는 토마스 카일 감독의 편집 솜씨를 먼저 말하고 싶다. 그는 돌리와 스테디캠, 크레인 등을 이용해 첫 넘버 에 해밀턴(린마누엘 미란다)이 등장하는 순간을 극적으로 촬영했고, 이 극의 감초 조지 3세가 협박성 노래를 부를 때마다 튀기는 침방울까지 포착했다.

공연 실황의 퀄리티도 훌륭하지만 <해밀턴>이 가진 시대적 상징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는 관객의 박수와 함성도 고스란히 담겼는데, 그들이 특히 환호하는 대목은 실황이 찍힌 2016년 6월의 미국과 공명하는 순간들이 빚어질 때였다. <Yorktown(The World Turned Upside Down)>을 부르는 해밀턴과 라파예트가 “이민자들, 우린 할 일을 해내지!”(Immigrants, we get the job done!)라며 소리치는 장면처럼 말이다. 실황이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당시 브로드웨이의 열기는 한글자막 부재로 인해 좀더 미국적인, 그러니까 정말 영화로 뉴욕을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끼게 했다. 하지만 마냥 그 안에 젖어 있고 싶지만은 않다. 디즈니+가 속히 한글자막을 마련해 라이선스도 오리지널팀 투어도 기대하기 힘든 현시점의 한국 뮤지컬 팬들에게 “모든 관객을 같은 객석에 앉히고 싶었다”는 카일 감독의 바람을 이뤄주길 소망할 뿐이다. 그래야 <틱, 틱... 붐!> 기자간담회에서 린마누엘 미란다가 말한 것처럼 코로나19 시대에 “뮤지컬영화가 더 많은 관객을 뮤지컬로 유입시키는 역할”까지 완수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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