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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여성영화인들 “우리가 이렇게 많았어?!”
2001-04-06

지난 달 29일 오후, 서울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은 낯은 익으나 이름이 얼른 안 떠오르는 여성들로 붐볐다. 암투병으로 불편한 영화배우 우연정씨가 남편 등에 업혀 들어왔고, 편집기사로 일했던 양성란(본명 양소자)씨는 “30년 만에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았다”며 기뻐했다. 의상 일을 했던 이해윤, 실험영화집단 `카이두' 회원 한옥희·김점선씨 등도 “이게 얼마만이야”라며 손을 맞잡았다.

제3회 서울여성영화제를 맞아 출간된 <여성영화인사전> 출판기념회장은 이산가족찾기 광장보다 더 뜨겁고 절절한 사연들로 달아올랐다.

“그렇게 많은 여성 영화인들이 이름 없이 묻혀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로도 뜻이 깊었습니다.” <여성영화인사전>을 펴낸 이진순(사진·33·도서출판 소도 대표)씨는 이날 함께 자리하지 못한 수 만명 한국 여성영화인들을 다 발굴하겠다는 각오를 다시 다졌다고 했다.

“1999년 제2회 서울여성영화제 홍보팀장으로 일할 때 <여성영화인 백서> 얘기가 나왔어요. 한국 최초 여성감독 박남옥씨 작품 <미망인>이 상영되는 현장에서 `백서로는 안되겠다, 사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워낙 자료가 없어서 지난 2년여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심정이었지만 이제 뼈대가 잡혔고 도와주겠다는 분들도 나타나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여성영화인사전>은 1954년부터 89년까지 한국 영화판에서 일했던 여성 배우·감독·스태프 등 250여명 인명과 시대별 영화 속 여성 이미지 변천사 등을 담고 있다.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한 영화학자 주진숙, 영화평론가 변재란, 배우 장미희씨 등과 함께 중앙대 첨단영상전문대학원 출신 20여명 연구원과 자료조사원들이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애쓴 결실이다. `남성' 영화인사전도 제대로 된 것이 없는 현실에서 이들이 거둔 결실은 그대로 한국영화사 기록과 이어진다.

“스타들이 참 덧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기자로서 자신이 활동했던 70년대 한국영화 부분을 집필한 장미희씨 증언을 보면 영화 속에서 착취당하고 잊혀져간 여성배우들 그 자체가 바로 한국 사회 모순구조를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어요. 그들이 영화사적 평가를 정당히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울러 옛날 한국영화에 대한 재평가도 꼭 이뤄져야 하고요. 이 사전이 앞으로 한국영화사 연구가 풍성해지는 한 계기이자 자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정재숙 기자 jjs@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