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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륜이 빚은 비극 해법은?
2001-04-06

<카오스>는 독특하고 신선하다. 최근 몇달 사이 국내에 개봉한 일련의 일본 영화들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전형적인 스릴러 장르의 틀을 빌었지만,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인물들을 그 틀에 가두지 않는다. 전작 <링> 시리즈에서 그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줄거리를 쫓아 인물을 설명했지만 이번에는 저 인간이 어떤 동기로 저런 행동을 했는지, 저 둘의 감정은 어떤 건지 단선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가지가 읽히는데, 그 하나하나가 풍성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보고 나면 애틋한 한 남녀관계가 눈에 들어오고, 그게 우리 시대의 이야기같아 여운이 오래 간다.

한 회사 중역 고미야마의 젊은 부인이 납치된다. 고미야마는 몸값을 전달하려 하지만, 범인은 경찰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부인을 죽이겠다고 말한 뒤 연락을 끊은 뒤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세차례 반전을 통해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고미야마는 삼류모델 사토미(나카타니 미키)와 불륜관계였고, 현장을 목격한 부인과 다투다가 부인을 죽였다. 부인이 납치 살해된 것으로 꾸미기 위해 사토미가 부인으로 위장하고 심부름센터 직원인 구로다(하기와라 마사토)에게 납치를 청부한 것이다.

남편의 애정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토미의 말에 속아 납치범이 됐던 구로다의 시점에서 진실을 밝혀가는 전반부는 스릴러적인 재미가 쏠쏠하다. `죽은 여자가 그 여자가 아니다'라는 히치코크의 <현기증>의 착상도 극적인 반전에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카오스>를 독특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건, 사토미와 구로다 두 남녀의 관계가 표면에 떠오르면서이다. 구로다가 죽은 줄 알았던 사토미를 찾아냈을 때, 달아나는 사토미가 웃고 있는 표정이 잠깐 화면에 스친다. 섬뜩한 느낌과 함께 떠오르는 `왜 웃지?'하는 의문이 `아, 저 사이에 연정이 있구나'라는 대답으로 풀리면서 추리극의 구조 속에 갇혀있던 두 남녀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풀려난다.

사토미는 광고를 얻기 위해 광고주인 고미야마와 자면서 불륜에 빠졌지만, 정작 그 자신은 어떤 큰 죄를 저지른 게 없다. 더 나빠지지 않으려고 할 뿐이었던 사토미나, 부인에게 이혼당한 뒤 심부름센터에서 파이프 수리 등을 하며 혼자 사는 구로다나 다 삼류인생이다. 둘 사이의 연정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거나, 실행에 옮겨진 게 없고 영화에서도 그 강도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또 후반부에 구로다가 고미야마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이유나, 거기에 사토미가 동참하는 동기도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둘 사이의 연정이 순방향으로든, 역으로 적개심이 됐든 둘로 하여금 게임의 주체가 되도록 부추기고 있음을 유추하기 어렵지 않다. 갑갑한 일상에서 우연한 사건을 만나 제한된 범위 안에서 좀더 저질렀을 뿐이지만, 이들은 사회를 조롱했다는 죄의식과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 공포를, 틀에서 벗어난 연정에 부수되는 두려움 위에 오버랩시킬 때, 두 남녀의 불안함은 폭넓고 깊은 공감대를 확보한다. 한 일본평론가가 <쉬리>가 추상적인 반면 <거짓말>이 구체적이라고 말했을 때, 그 함의로 <카오스>는 구체적인 데가 있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