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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떠난 홍콩‘지킴이’ 왕자웨이
2001-04-13

나는 리앙자오웨이(양조위)를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나는 <화양연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이 영화로 그가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중국 영화감독들은 그를 좋아한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존 우(오우삼)가 <첩혈가두>를 촬영하기 위해 홍콩의 세트장에서 총격전을 찍던 현장에서였다. 그는 총격전 장면에 별로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고, 계속해서 엔지가 나고 있었다. 홍콩영화의 촬영현장은 총격전을 방불케하는 소란스러움과 일사불란한 전투를 연상케하는 기동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영화 촬영현장은 지나치게 평화롭게 보인다.

존 우는 아주 근엄하고 조용한 사람이다. 그는 총격전을 연출하면서도 촬영감독과 귓말로 의논을 한다. 장쉬에여우(장학우)가 총을 들고 들어오는 동안 리앙자오웨이는 카메라 뒤에서 마치 이 영화와 아무 관계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이미 후 샤오시엔의 <비정성시>와 왕자웨이의 <아비정전>에 출연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고, 다른 홍콩배우들처럼 그는 몸에 밴 친절함으로 인사를 받았다. 사실 나는 그가 요즘 리우쟈링(유가령)과 스캔들이 있고, 캐세이퍼시픽 항공사 직원이었으며, 따위로 이어지는 시시콜콜한 이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리앙자오웨이에게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후 샤오시엔과 존 우, 그리고 왕자웨이는 당신에게 어떻게 다른 감독입니까?” 그는 예쁜 사슴처럼 귀엽게 웃더니 대답했다.

“존 우는 아버지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나 모든 장면을 자상하게 설명해줍니다. 그리고 내가 실수를 해도,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스탭들에게 말합니다. 모두들 그걸 알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는 정말 가족들과 만찬을 즐기듯이 영화를 만듭니다. 후 샤오시엔은 큰 형님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지만, 마지막 결정은 항상 자신이 합니다. 왕자웨이는 마치 가출했다가 금방 돌아온 막내형 같은 사람입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꾸만 그의 곁에서 어울리고 싶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10년 후에 그가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다음 그 이야기를 다시 물었다. “왕자웨이는 아직도 당신이 어울리고 싶은 막내형 같은 감독입니까?” 리앙자오웨이는 여전히 수줍은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군요. 제 생각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가출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웃음) 왜냐하면 왕자웨이는 모든 형들이 가출한 홍콩에 남아서 집을 지키고 있는 형이니까요.”

여기에는 영화를 만들면서 서로를 감싸안는 가족과 같은 사랑이 있다. 왕자웨이에게 그 말을 했다. 그는 크게 웃으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 휘황찬란한 완차이의 밤거리 풍경을 보았다. 그러다가 그냥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이상하게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자꾸만 너무 많은 것이 빨리 변한다. 가족은 좋은 것이다.” 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그 말은 정말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한 말일까? <화양연화>에서 리앙자오웨이의 대사. 울지말아요, 우리는 결국 돌아가야할 가족이 있잖아요. 다른 말이지만 결국 같은 말. 나는 힘들 때마다 결국 영화에 남은 것이 행복하다.

정성일/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