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또다른 엽기? 진전된 작가주의?
2001-04-16

국내리포트/작은톱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 시사회, 또다른 찬반 논란 일듯

<섬> 이후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온 김기덕 감독의 신작 <수취인 불명> 시사회가 4월13일 오후 서울 종로의 시네코아에서 열렸다. 칸영화제 초청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린 이날 시사회에는 기자와 평론가 200여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보기 불편한 잔혹성 묘사는 여전하지만, 이야기는 전작들보다 풍부해졌다”는 게 시사회 참석자들의 중론.

<수취인불명>은 70년대 미군부대 기지촌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생활상을 김기덕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필치로 묘사한 작품. 혼혈인 청년 창국과 그의 어머니가 중심인물이다. 창국은 개잡이 보조로 일하며 어머니를 수시로 때리는 난폭한 청년이며, 어머니는 창국 아버지인 미국 병사에게 17년 동안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오는 편지를 보내며 반실성한 채로 살아가는 여인. 이들 주위에 흉포한 개잡이 사내, 오빠의 장난으로 한쪽 눈이 백태가 된 17살 소녀, 그녀를 사랑하는 소심한 청년 등이 불길한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결말은 김기덕 감독의 어떤 전작보다 참혹하다.

김 감독은 중심 인물의 수를 늘리고, 전쟁과 미군 점령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내상을 끌어들이면서 이야기의 품을 훨씬 넓혀 놓았다. “정치적 메시지가 느껴지는 걸 싫어하지만, 60년대부터 90년대를 표상하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 역사를 재구성해보고 싶었다”는 게 연출의 변. 극단적인 캐릭터와 도발적 이미지가 앞서나오던 전작들에 비하면, <수취인불명>은 숨겨진 권총과 지울 수 없는 문신, 빼앗긴 시력 등의 모티브가 복합적으로 얽힌 이야기의 미덕이 상대적으로 돋보인다. 끔찍한 사건이 전개되는데도, 서정적인 톤을 잃지 않게 하는 음악과 영상도 마음을 끈다.

문제는 여전히 보는 사람의 비위를 시험하는 듯한 엽기적 표현들. 시사회에 참석한 한 여기자는 “작품성을 떠나 여성 관객에게 권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영화를 찍을 동안 어떤 동물도 다치지 않았다’는 타이틀이 뜨지만, 개를 목매달아 구타하는 몇 장면들은 동물애호가라면 분노할 만하며, 그 밖에도 피와 배설물이 수시로 등장한다. 찬반 어느 편에 서든, 분명한 건 <수취인불명>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세계가 조금씩 세련되고 있다는 점. 국내 개봉은 5월26일로 예정돼 있으며, 칸영화제 출품 여부는 이번주 안으로 결정된다.

허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