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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브라더, 돌아오다?
2001-04-30

통신원리포트/ 베를린통신

유럽 애니메이션 영화사상 최고 제작비가 투입된 <살려줘, 물고기가 되어 버렸어!>

정신과 의사들이 새로 고안한 테스트 하나. 환자는 자기 가족들을 그 성격에 딱 걸맞은 동물로 그려내야 한다. 그러나 이 테스트를 치러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아주 단순한 사람이 아닌 이상 한 인간 심성의 잡다한 면면들을 원숭이, 올빼미, 말, 돼지 등 단 한 마리 동물로 그려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부활절 휴가에 개봉한 독일 에니메이션 <살려줘, 물고기가 되어 버렸어!>(Hilfe! Ich bin ein Fisch)는 이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한 것 같다. 수백명의 일러스트레이터 손끝에서 탄생한 주인공 꼬마 세명이 각각의 성격에 안성맞춤인 물고기로 탈바꿈해 있기 때문이다. 늘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는 열세살짜리 장난꾸러기 플라이와 주근깨투성이 여동생 스텔라, 그리고 퍼질 대로 퍼진 몸매에 사사건건 아는 척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촌형이 그들이다. 세 꼬마는 동물로 변할 수 있다는 신비의 약을 마시고, 다행히도 한결같이 물고기로 둔갑했다. 황어가 된 플라이는 바닷속에서도 늘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며 끝없이 사건을 일으키고, 호기심 많고 귀여운 재롱둥이 불가사리로 변한 스텔라도 주근깨를 여전히 달고 있다. 안경을 걸친 해파리는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사촌형이다.

이지 리스닝 팝송을 흥얼거리며 미지의 바닷속 세상을 탐험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던 세 꼬마는 앞으로 이틀 안에 다시 신비의 약을 마셔야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경악한다. 그 영약을 ‘진짜’ 물고기 조가 훔쳐가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 꼬마들의 절망과는 아랑곳없이 조는 이 약을 혼자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이제 물고기 조의 인간화가 시작된다. 아이큐가 점점 좋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 조는 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점점 세 꼬마를 위협하는 대상이 되어간다.

유쾌하게 시작된 해저탐험은 이제 불안과 공포의 장으로 변해 버렸다. 인간화되는 조가 독재자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권력을 휘두르는 쏠쏠한 재미에 빠져드는 조의 모습은 조지 오웰의 에 등장하는 빅 브러더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만화영화는 인간의 지성이 권력에 대한 욕심을 일으켜, 독재와 굴종의 체제를 야기한다는 심오한 메시지를 꼬마관객에게 전하려는 것인가? 제작자 에버하르트 융커스도르프는 폭력의 발생, 그리고 그것이 과연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가를 우화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살려줘, 물고기가 되어 버렸어!>는 최근 개봉하고 있는 에니메이션들의 추세를 답습한다. 토마스 프리취, 카린 티이체, 라이너 바제도 등 내로라 하는 독일 배우들의 대사더빙, 3D 컴퓨터 작업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낸 매력적인 해저세상, 그리고 유럽 에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최상급 선전구호까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에 더해 빠른 템포와 넘쳐나는 액션장면들은, 사실 별 새로울 것이 없는, 돈만 많이 들어간 이 애니메이션을 올해 상반기 독일 최고의 가족영화로 부상시키고 있다.

베를린=진화영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