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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디지털 미학 무리한 요구?
2001-05-03

대안 영화와 함께 디지털 영화라는 주제를 붙잡고 있는 전주영화제에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는 꽤나 중요하다. 올해는 영국의 존 아캄프라, 중국의 지아 장커,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이 영화제의 제작 지원을 받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제작한 30분짜리 작품을 각각 내놨다. 두번째 기획이니 이제 그 공과를 따져봄직하다.

<소무> <플랫폼>으로 세계적 지명도를 얻은 지아 장커는 <공공장소>에서 작은 기차역, 탄광촌의 버스정류소, 식당으로 개조한 버스 안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배우는 없다. 보통 사람들의 낯선 표정에서 삶의 한 단면을 읽으려 했다. <애정만세> <하류> <구멍> 등에서 현대사회의 소외감을 절묘하게 보여줬던 차이밍량은 뜻밖에도 <신과의 대화>라는 작품을 들고 왔다. 카메라는 신들린 듯 온몸을 떠는 영매 노파, 간이무대에서 나체쇼를 벌여가는 무희, 오염된 하천에서 죽어가는 물고기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지하도를 차례로 응시한다. 선구적이라 할 정도로 디지털 영화의 미학을 앞서 개척해온 존 아캄프라는 <디지토피아>(사진)에서 인터넷과 무선전화라는 디지털의 영토에서 사랑을 찾으려 애쓰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충전된 건전지와 테이프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즉각적으로 찍을 수 있다. 예전에는 감정의 여과라는 긴 시간의 과정을 거쳐 뭔가를 재창조하는 작업이었지만, 이 경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디지털영화는 사물과 현상을 잘 통제할 수 없다는 걸 고려해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처음 디지털영화를 만들어본 차이밍량의 소감은 이 프로젝트에 현명하게 반영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곧 열리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나갈 작품을 만드느라 별 여유가 없었다는 설명 그대로 그가 즉각적으로 찍어낸 <신과의 대화>는 관객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주관적이었다. <공공장소> 역시 관객들 스스로 뭔가를 `알아서' 느끼라고 강요하는 작품이었다. 다만 <디지토피아>가 독특한 영상미를 선보이며 디지털 영화의 고유한 미학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러나 `디지털 삼인삼색'은 디지털의 독자적 미학을 개척한다는 기치에 걸맞게 새로운 기술적 시도를 감독들에게 분명히 요구했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또 세 작품을 하나로 묶어 보여주는 만큼 미리 공통의 주제를 주는 조정 역할이 절실해 보였다.

전주/이성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