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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발루] 말이 없어 더 풍부한 파스텔화
2001-05-26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의 영화를 보는 건 악몽일까, 참신한 경험일까? 판타지 영화 <투발루>는 기대치를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정반대로 갈릴 만한 작품이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A4 용지로 한장 정도에 불과할 대사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인물의 과장된 동작이나 사건이 불편하다면 처음부터 고행길이다. 반면 이제껏 보지 못했던 공간과 시간 감각들, 미술품처럼 고안된 하나하나의 장면들, 기술지상주의와 관료만능주의에 대한 은근한 조롱, 무성영화에 대한 향수까지 즐길 준비가 됐다면 <투발루>는 새로운 선물이다. 약간의 줄거리를 알아둔다는 준비만 갖추면 대체로 후자가 될 수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르토 영화페스티벌 등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는 게 그 근거다.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법한 폐허같은 수영장이 배경이다. 안톤은 눈 먼 아버지를 위해 썰렁한 수영장이 늘 손님으로 붐비는 것처럼 꾸미는 연극을 외롭게 되풀이 한다. 그나마 수영장을 유지시켜주는 기계 `임페리얼`을 잘 간수하는 게 주요한 일이다. 어느날 젊은 선장과 딸 에바가 수영장을 방문하고, 안톤이 에바에게 맘을 빼앗길 무렵 안톤의 형 그레고어가 나타난다. 이들 사이를 시기하던 그는 에바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에바는 안톤을 오해한다.

숨진 아버지의 보물상자에서 투발루 보물지도를 발견한 에바는 유산처럼 받은 배에 단 하나의 부속품 `임페리얼`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때부터 에바와 안톤의 `임페리얼` 쟁탈전이 벌어진다.

투발루는 실존하는 섬이다. 태평양 한구석에 흩어져 있는 9개의 작은 산호섬으로 영화 속 인물들이 유토피아로 여기는 곳이다. 투발루를 향해 행복한 항해를 떠나는 남녀주인공은 낯익은 얼굴들이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상처입은 영혼으로 등장했던 드니 라방이 안톤 역을, <루나파파>에서 지극히 청순한 모습으로 유쾌한 환상을 선사했던 술판 하마토바가 에바 역으로 출연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에 관한 은유”라는 설명처럼 초현실적 세계를 창조한 파이트 헬머 감독은 독일 빔 벤더스 감독의 제자다. 헬머 감독은 무성영화라는 고전의 틀을 빌린 것처럼 제작 방식도 일부러 수고스런 방식을 택했다. 공간에 따라 화면 색깔을 달리하는 데 흑백 필름으로 촬영한 뒤 모든 필름에 원하는 칼라를 채색했다.

칼라로 찍은 뒤 흑백으로 현상하거나 카메라 필터를 이용해 색감을 바꾸는 보통의 방식과 다르다. 또 포근한 파스텔 톤의 색깔을 얻기 위해 석탄을 연료로 쓰는 옛 조명장치를 사용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