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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뉴욕 레즈비언&게이 국제영화제 열려...
2001-06-11

통신원리포트/뉴욕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6월의 뉴욕, 공원 모퉁이의 힙합댄서부터 막 시작된 오페라하우스 발레시즌의 프리마돈나까지 때맞춰 볼거리를 제공하기에 여념이 없다. 영화계도 막강 블록버스터들이 멀티플렉스를 점령하기 시작한 가운데, 틈새 취향을 겨냥한 행사들이 한창이다. 가이드를 따라 명승지 눈도장 찍는 여행보다는 뒷골목 구경이 재미있는 것처럼, 구석구석 숨어 있는 오만 가지 행사들을 아가는 재미도 뉴욕답다. 제13회 ‘뉴욕 레즈비언&게이 국제영화제’는 틈새 취향이라고 하기엔 그 규모가 만만치 않은 추천코스. 몇 가지 예상 질문. 레즈비언&게이영화는 꼭 레즈비언과 게이에 관한 영화일까. 레즈비언&게이영화제의 감독 혹은 관객은 반드시 게이일까. <여고괴담2>는 왜 이 영화제에 초청됐을까.

게이·레즈비언영화제로서는 미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 영화제는 5월31일부터 열흘간 뉴욕대와 뉴스쿨에서 전세계 28개국 200여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절반 이상의 상영이 매진된 폭발적인 호응은 영화제가 표방하는 ‘뉴퀴어시네마’가 대중적 호소력을 지닌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80년대까지의 퀴어영화가 커밍아웃을 둘러싼 성정치학을 주장함으로써 앞의 두 질문을 제기할 필요성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90년대 이후의 뉴퀴어시네마는 실험적인 형식과 진일보한 주제의식으로 물음 자체를 가능케 했을 뿐 아니라 ‘이다/아니다’를 넘어서는 다양한 관점으로 성정체성을 탐구해왔다.

올해 ‘뉴욕 레즈비언&게이 국제영화제’는 ‘세상살이와 자기발견’이라는, 굳이 퀴어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좋은 이야기들로 프로그램을 채웠다. 게이인 것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적어도 뉴욕에서는. <뉴욕타임스>의 스티븐 홀든이 지적하듯이, 에이즈 환자들의 투병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언디텍터블>(Undetectable)이나 코트니 러브, 릴리 테일러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줄리 존슨>, 마이클 쿠에스타 감독의 등은 ‘게이임’의 여부를 떠나 인간관계의 다양한 면모, 자아발견의 고단함 등의 주제에 천착함으로써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한편, 열린 시각을 요구할 필요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트랜스젠더문화를 조명하는 섹션을 마련하는 등 동성애뿐 아니라 다양한 성정체성을 아우르고자 한 시도도 돋보인다.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이 주연까지 맡은 개막작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는 트랜스젠더인 가수지망생 주인공의 인생역정을 음악으로 풀어낸 영화제 최고의 인기작. 올해 선댄스영화제 관객상과 감독상을 받은 이 작품은 평단의 극찬을 받은 오프 브로드웨이의 록뮤지컬을 영화화했다.

영화제의 디렉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은 <여고괴담2>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과 나란히 ‘여성과 폭력’이라는 섹션에 포함되었다. 사춘기의 정체성 혼란을 비극으로 이끄는 폭력적 상황이 인상깊다는 평에 그 폭력의 무게가 새삼스럽다.

뉴욕=옥혜령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