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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레이스> 핵심 자르고 개봉
2001-06-21

대마초 흡입 장면이 많다는 이유로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던 영국 영화 <오! 그레이스>가 지난 18일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18살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아 오는 23일 개봉한다. 그러나 핵심적 부분까지 포함해 2분30초 가까이를 잘라내 논란이 되고 있다. 영화를 기형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지적과 함께, 등급분류가 이전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시절의 검열과 다를 바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영상물등급위원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나이젤 콜이 감독해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오! 그레이스>는 남편이 산더미 같은 빚을 남겨놓고 자살함에 따라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중년 여성이 자기 삶을 복원해나가는 이야기다. 이 부인은 원예가로 희귀한 식물을 가꾸며 마을 부인들의 티파티를 주재하는 등 마을 공동체에서 덕망이 높았다. 그러나 남편의 자살 뒤 모든 재산이 압류돼 절망에 빠진 이 부인을 마을 사람들은 동정하지만 현실적으로 도울 방법이 없다.

이 부인의 회생은 눈물겨운 노력과 헌신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는 일종의 범죄행위를 통해 출구를 찾고 바로 이점이 훈훈한 코미디를 지향하는 이 영화의 묘미를 이룬다. 그가 찾아낸 해법은 대마초 재배이며, 이 영화에서 대마초는 크게 밉지 않은 존재로 그려진다. 마을의 의사부터 대마초 무해론을 펴면서 남몰래 대마를 애용한다. 마을 사람뿐 아니라 이곳 경찰관까지도 부인의 대마 재배를 묵인한다. 부인은 대마의 대량 재배에 성공하지만, 막상 대마를 팔려하자 갱들이 몰려오고 경찰까지 쫓아와 키운 대마를 모두 태워버리고 만다. 부인의 성공은 대마초 재배와 실패를 둘러싼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가공한 부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찾아온다.

시골 사람들의 애환과 우애가 진득하게 스며드는 이 영화는 영국식 서민 드라마의 전통을 잇는다. 남자 실업자들이 생계의 방편으로 스트립쇼를 벌이는 <풀 몬티>의 `스트립 쇼'를 `대마 재배'로 대체한 셈이다.

그러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마약 복용 장면의 과다한 묘사”를 이유로 지난달 중순 이 영화에 대해 등급보류 판정을 내렸다. 그러자 이 영화의 수입사는 △주인공 부인이 해변에서 처음 대마초를 피는 장면 1분34초 △마을 의사가 대마초를 피우고 취해서 눈이 커진 장면 15초 △부인이 재배한 대마초를 모두 태우자 그 연기에 마을 사람과 경찰관이 취해 춤을 추는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 39초 등 모두 2분 28초의 분량을 잘라내고 다시 심의를 넣어 등급을 받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분류위원인 전찬일씨는 “지난달 등급보류를 결정할 때 참석하지 못했다가 지난 18일 잘려나간 영화를 보고서 위원회 내부에서 거세게 항의했다”면서 “등급분류가 검열이 돼버린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폭력은 불법이지만 폭력묘사가 불법이 아니듯, 대마가 불법이라고 해서 영화의 맥락에 관계없이 대마 흡입 묘사를 불법으로 치부하는 건 잘못된 발상”이라며 “등급분류는 영화에 등급만 매기라는 것인데 이런 식의 운영은 등급제의 취지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