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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의 또다른 사상자
2001-06-25

디즈니, <아틀란티스> 부진으로 피터 슈나이더 사장 사임

누가 미키 마우스의 치즈를 갉아먹었나. <진주만>이 개봉 직후 한껏 치솟았던 기대를 밑도는 흥행추이를 보이고, 여름용 애니메이션 <아틀란티스>가 1986년 <그레이트 마우스 디텍티브> 이래 디즈니 장편애니메이션을 통틀어 가장 저조한 개봉 성적을 기록한 가운데, 6월20일 디즈니 스튜디오 사장 피터 슈나이더가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디즈니에서 16년간 재직한 피터 슈나이더는, 현 레볼루션스튜디오 대표인 조 로스가 사장 자리를 떠난 2000년 1월부터 18개월간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 휘하에서 사장직을 맡아온 인물. 1980년대과 90년대 초에 걸쳐 제프리 카첸버그와 손잡고 애니메이션 부서를 관리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재건을 주도했던 피터 슈나이더는 실사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장르의 시너지 효과를 끌어내는 프랜차이즈에서 능력을 인정받아왔다. 피터 슈나이더 사장과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은 한결같이 슈나이더의 이번 퇴사가 “브로드웨이에 독립 프로덕션을 설립해, 연극 무대에 매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며 우호적인 이별사를 발표했으나 슈나이더는 ‘진주만의 또다른 사상자’라는 것이 할리우드 관찰자들의 견해.

디즈니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실사영화인 <진주만>은 6월21일까지 1억6270만달러의 수입을 미국 박스오피스에 올렸다. 디즈니는 내부적으로 2억달러 이상의 국내 박스오피스를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흥행분석가들의 예상은 1억9천만달러선. 해외 박스오피스 예상수익을 합치면 약 4억달러에서 4억5천만달러에 이를 <진주만>의 총수입은 웬만한 영화가 꿈꿀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깝지만, <진주만>의 제작 및 마케팅에 투입된 약 2억7천만달러의 천문학적 비용을 고려하면 실망스럽다는 중론이다. 무엇보다 디즈니에 카운터펀치를 날린 것은 <진주만>보다 한주 먼저 개봉한 드림웍스 장편애니메이션 <슈렉>의 개가. <슈렉>은 한주 늦게 개봉한 <진주만>보다 오히려 높은 주간 수입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미 개봉 주말 수익이 230만달러에 그친 디즈니의 여름애니메이션 <아틀란티스>의 부진과 대조를 이루며 장편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 피터 슈나이더가 사임한 20일은 공교롭게도, 라이벌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슈렉>이 2억달러 고지를 넘어서며 올해 박스오피스의 챔피언으로 등극한 날짜. 최근 3년간을 포함해 지난 11년간 총 7차례 미국 박스오피스 수위를 석권하고 해외 박스오피스에서도 7년간 5차례 정상을 지켜온 디즈니의 브랜드 가치가 주가와 함께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피터 슈나이더의 갑작스런 사임은 후임자 임명없이 이루어져 슈나이더의 입김이 셌던 애니메이션 부서를 중심으로 불안한 공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 사실. 그러나 영화계 인사들은 디즈니 스튜디오가 굳이 선장없는 과도기를 지나야 한다면 작가, 배우 스트라이크에 대비해 많은 프로젝트를 비축해놓은 요즘이 최선의 시기라고 촌평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임사장 후보는 세계 마케팅과 배급을 주관해온 월트 디즈니 모션 픽처 대표 리처드 쿡. 한편 제작진과 배우 관리문제로 불화설이 나돌았던 피터 슈나이더 사장을 떠나보낸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은 ‘슬림화’ 전략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 3월 약 3억5천만달러에서 4억달러의 연간비용 절감을 목표로 4천명 감원 계획을 발표한 디즈니는 이미 3천명을 명예퇴직 형태로 감원했으며 지난 6월15일 회사의 중추인 애니메이션 부서인력 25% 삭감을 결정한 바 있다. 제작 스타일의 변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디즈니의 올 개봉 영화편수는 평년의 2/3 수준인 14편. ‘하이 컨셉-중간 규모 예산 프로젝트’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즈너 회장이 밝힌 디즈니의 지방제거 작전이다.

김혜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