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박재동의 <슈렉> 관람기
2001-07-03

못생긴 괴물 슈렉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결혼해서 왕이 되려는 영주 파과드의 계획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한다. 곡절 끝에 슈렉과 공주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공주 역시 낮에는 미인이지만 밤에는 못생긴 괴물이다. 공주는 마침내 `커밍아웃`을 하고 <미녀와 야수>처럼 진실한 사랑의 키스를 나누자 변신을 한다. 한데, 미녀로 변신해야 할 공주가 그냥 못생긴 채로 남아 있는게 아닌가. 뜻밖이다. 난 둘다 정상인으로 변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둘은 못생긴 괴물인 채로 결혼을 해서 두고 두고 잘 살았단다.

야, 이것봐라. 바로 콤플렉스에 관한 이야기구나. 게다가 가치관을 바꿔주는 메시지가 있구나. 못생기면 못생긴 대로, 콤플렉스가 있으면 있는 대로 사랑하라…. 음, 맞아. 할리우드도 우리들도 대부분 미모와 성공만 너무 추구해왔지. 반성이 좀 된다.

음악인 김창완씨가 방송중에 해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김씨는 머리에 큰 상처가 있어 항상 머리카락으로 그 부분을 애써 가리는 등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콤플렉스가 돼왔다고 한다. 그 콤플렉스는 자신의 성격이나 인생관에조차 어둡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부인이 된 그의 애인이 거기에 뽀뽀를 하고 나자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맞아, 콤플렉스는 그것을 문제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순간 사라지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대머리이거든 대머리에 뽀뽀를 해 주라, 숏다리이거든 숏다리에 뽀뽀를 해주라, 살이 많거든 비계살에 뽀뽀를 해주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 난다. 털이 나지 않아도 이미 대머리는 사라졌다. 마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래,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것이야! 엄청 돈이 드는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테마를 밀어 붙이다니, 프로듀서 카젠버그의 뚝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관습을 깨뜨려버린 여러 부분들이 있어. 방귀, 귀지, 조신한 공주가 격투사로 돌변한다든가, 뱀을 잡아 풍선을 만든다든가, 고상하게 보이거나 그래야 한다는 것들을 깨뜨려 나가는 것, 그런 것들이 쾌감을 느끼게 해. 그런 식으로 디즈니를 극복하는 과정 같은 여러 시도들이 말이야. 누구나 알듯 디즈니는 한계에 부딪혀 버린지 이미 오래, 모든 것이 뻔하고 식상해. 드림웍스가 그것을 극복하려는 것은 미국애니메이션이 살아남기 위한 당연한 몸부림인지도 몰라. 구조는 디즈니 것과 차이가 없지만 말하자면, 디즈니와 달리 목에 힘을 뺀 것 같애.

그렇지, 운동도 작품도 정치도 목에 힘이 들어가면 안되지. 그러고 보면 가까운 데 있는 거야. 우리 아이들이 하는 개그, 그들이 겪는 문제, 우리들의 이야기…. 아니 그 어떤 이야기라도 상관 없어. 애니메이션의 중심지는 미국도 일본도 아니야. 재미있게 잘 담아내는 곳에 있는 거야. 얼마 전에 개봉했던 <프린스 앤 프린세스>도 그랬지 않아? 간단하면서도 얼마나 재미있었어?

잔잔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의미를 곱씹으면서 슬쩍슬쩍 드는 의문도 있다. 디즈니에서 다룬 많은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을 패러디하다 못해 비틀고 게다가 파과드 영주의 성 둘락은 바로 노골적으로 디즈니랜드가 아닌가. 카젠버그는 그토록 디즈니에게 한이 많았던가? 전체적으로 재미는 있지만 얕은 느낌이 드는 것은, 캐릭터의 성격을 더 깊이 심화시켜서는 재미라는 토끼를 잡지 못한다고 판단한 탓일까? <미녀와 야수>에서는 야수가 왕자로 변해서 결혼을 하고, <노틀담의 곱추>에서는 콰지모도가 집시여인과의 결혼을 잘생긴 기사에게 양보해버려서 난 그게 불만이었다. <슈렉>에선 괴물끼리 결혼으로 해결했다. 그러면 괴물과 미인과의 결혼은 아직도 미국사회가 꺼리고 있는 걸까?

하나 더 있다. 악당 파과드 영주 말인데, 이 친구야말로 머리가 엄청 크고 무지 숏다리인 콤플렉스 덩어리여서 그도 상처가 있을 터인데 아무런 배려 없이 그냥 용에게 낼름 먹히는 걸로 최후를 맞는다. 뭔가? 콤플렉스가 있어도 마음을 잘 써야 한다는 뜻인가? 파과드와 같은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 영화는 그 사람들의 콤플렉스는 방치하든가 오히려 강화시켜주고 있지는 않은가? 과민인가?

박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