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해외뉴스
가위질, 다시 도마위에 오르다
2001-07-09

뉴욕

마케팅 위해 등급심의거부하는 영화늘어, 등급 둘러싼 힘겨루기 끊이지 않을듯

X등급 포르노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하드코어 정사신이 담긴 영화가 ‘가위질’당하지 않고 일반극장에서 개봉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최근 강간, 매춘, 성도착 등 터부되던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하나둘 개봉됨으로써 이들 영화를 배급하는 소규모 배급사들의 마케팅 방법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화두는 바로 ‘등급’이다. 미국 내 배급되는 영화는 미국영화협회(MPAA)의 자발적 등급제도에 따라 G, PG, PG-13, R, NC-17 중 하나를 선정받는데, 섹스와 폭력의 묘사가 등급심의의 기준인 만큼 17세 이하 입장불가라는 가장 강도높은 규제가 가해지는 NC-17등급은 마케팅에 있어 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이 여겨져왔다.

지난해 토론토영화제 화제작이자, 개방적이기로 소문난 프랑스에서도 상영금지 처분을 받은 <날 강간해줘>(Rape Me)는 7월6일, 뉴욕의 ‘시네마 빌리지’에서 등급판정 없이 개봉하는 강수를 씀으로써 그간 자취를 감췄던 아트하우스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의 물꼬를 다시 텄다. 이 영화는 <델마와 루이스>류의 성폭행 복수극이라는 주제와 적나라한 성행위장면 때문에 NC-17등급이 불가피했으나, 아예 등급심의를 받지 않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소수의 관객에게나마 무삭제판으로 선보였다.

올 하반기에는 <날 강간해줘>의 뒤를 이어 강간사건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섹스에 관한 질문 하나> [Bully] [Vulgar] 등이 등급 무시하기에 동참할 예정이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NC-17등급을 받음으로써 가위질을 당하고도 애매한 포르노그라피 취급을 받느니 한정된 상영관에서나마 특화된 관객에게 어필하자는 이유뿐 아니라, 인디영화나 외국영화를 주로 배급하는 소규모 배급사의 경우 한번에 5천달러씩 하는 심의비 자체가 부담이라는 경제적 이유에도 기인한다.

이와 달리 <춘향뎐>을 배급했던 Lot47은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L.I.E]가 NC-17등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개봉시 등급판정 필수를 전제로 하는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멀티플렉스 체인의 요구를 받아들여 오는 9월 개봉을 확정지었다. [L.I.E]는 1995년 폴 버호벤의 <쇼걸> 이후 NC-17등급으로 개봉되는 최초의 영화라는 기록을 남기게 될 듯.

문제는 등급제도의 틈새를 활용 내지 악용하는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상영관들의 등급 준수 여부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허점과 맞물려 정치권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상원의원 조 리버먼과 힐러리 클린턴이 수개월 동안 공들인 끝에 7월4일 국회에 제출한 ‘미디어 마케팅 책임조항’ 법안은 바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인물을 마케팅하는 기업을 정부가 처벌함으로써 영화뿐 아니라 음악, TV 비디오게임 등 전반에 걸친 현행 등급시스템을 법적으로 관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로렌 바콜, 벤 스틸러, 로빈 윌리엄스 등의 할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한 영화계 인사들은 문제 법안이 자율적 규제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한동안 ‘등급’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뉴욕=옥혜령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