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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수 주연의 <노랑머리2>
2001-07-13

“스크린으로 들어간 하리수,사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일부 언론이 트랜스젠더(성전환자) 하리수씨를 끈질지게 뒤쫓으며 계속 뉴스를 뿌린다. 최근에는 실제보다 나이를 어리게 속였느니, 화보 촬영갔던 베니스에서 외국 사진작가와 연애를 시작했느니 따위를 다뤘다. 하씨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너무나 우호적이어서,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용이 갑자기 넓어진 것인지, 아니면 집단적 관음의 시선이 다른 모든 걸 압도할 만큼 높은 것인지 헷갈린다. 누드모델 이승희씨와, 자신의 몸을 미술작품의 오브제로 썼던 한 교사부부의 나체를 수용하는 이 사회의 태도는 워낙 달랐다.

하씨가 첫 주연한 영화 <노랑머리2>(21일 개봉)가 11일 시사회를 가졌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집중에 대해 하씨 자신은 뭐라 말하고 싶을까? <노랑머리2> 속에서 “난 여전히 외계인일까”라고 되뇌는 그의 또 다른 대사를 빌리면 이렇다. “인간들 관심도 많네, 지들 일이나 하지.”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하씨는 현실에서 그대로 영화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영화의 이야기나 하씨의 배역 제이(클럽에서 노래하는 여가수라는 직업마저 현실과 비슷하다)는 모두 그의 성적 정체성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차이가 있다면 현실은 `화제의 스타'로서 그를 용인하지만, 영화 속의 제이는 너무나 평범해서 거부의 대상이 된다. 제이는 꿈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던 애인이 갑자기 부모와 함께 들이닥쳐 자신을 심하게 모욕하자 증오감과 절망감에 이글댄다. 이후 “(트랜스젠더임을 증거할)주민증 까봐”라고 물어오는 사내의 뒷통수를 어김없이 후려친다. 혹 형사처럼 합법적 강압으로 주민증을 열어본 자는 “이게 남자 망신 다 시키네”라고 반드시 그를 경멸하지만, 이런 자일수록 응징당한다. 제이는 배우를 꿈꾸지만 매니저에게 희롱당하고 착취당하는 와이와, 뭔가 숨겨진 진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다큐멘터리 작가 지망생 알과 일행이 돼 도피성 여행을 벌이기도 한다.

이처럼 <노랑머리2>는 소수자를, 이방인을 허용치 않는 사회의 불관용이나 남성성의 잔혹함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하씨의 벗은 몸이 이따금 나오지만, 몰래카메라를 둘러싼 소동을 보여주느라 B급 에로비디오처럼 전개되는 초반을 빼면 이런 진정성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영화 흐름은 거칠고 위태롭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를 깔끔하게 상품으로 포장해낸 작품보다 오히려 정겹게 다가온다. 특히 사랑이란 감정의 헛껍데기같은 무모함을,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혼란된 시선을 재치있게 묘사한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하씨가 이 사회에 그랬던 것처럼, 각본·연출·제작을 도맡은 김유민 감독은 영화를 해석하는 이들에게 <노랑머리2>를 얼마만큼 평가해주어야할지 곤혹스런 숙제를 던졌다. 김 감독은 <뜨거운 바다> <커피 카피 코피> <노랑머리> 등을 연출해왔다. 하긴 김기덕 감독이 처음부터 작가 대접을 받은 건 아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