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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출연 섭외 1순위, 충무로 씹어먹던 한석규의 캐릭터들

1990년대 한국 영화를 이끈 주역. 한석규는 충무로의 역사에서 그런 인물이다. 이 시기 전성기를 맞은 한석규는 굴곡 없는 흥행의 보증수표이자, 대체 불가능한 연기파 배우였다. 그는 멜로와 누아르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오가는 동안에도 이질감이 없는 캐릭터로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선한 인상으로 펼치는 괄괄한 연기는 되려 어떤 카타르시스를 안겼고, 다시 담담한 어른의 표정으로 돌아와 믿음직한 멜로를 선사했다. 90년대에 이미 완성된 한석규의 대표작으로 그를 추억해보자.

초록물고기ㅣ1997ㅣ갓 제대한 청년 막동

이창동 리얼리즘의 포문을 연 <초록물고기>는 한석규가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 막동의 영화다. 영화는 갓 제대한 청년 막동이 폭력조직 세계로 진입해 손에 피를 묻히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어설픈 때를 묻힌 그는 단지 보스의 신임을 얻고자 했고, 하필이면 보스의 여자를 사랑했다. 이때부터 파국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막동은 완벽한 악인이 되지 못하고, 지금 막 순수의 세계를 떠난 자의 비통한 심정을 이따금씩 내비친다. 처음 칼을 휘두른 막동이 울음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했을 때. 그렇게 잡고 싶었던 ‘초록 물고기’의 유년 시절과 영영 이별했다는 허망함에 큰형에게 전화를 걸 때. 이 두 장면만으로도 <초록물고기>의 한석규를 다시 볼 이유는 충분하다.

넘버 3ㅣ1997ㅣ도강파 서열 3위 태주

<넘버 3>는 캐릭터, 대사, 편집 등 여러 방면에서 개성 넘쳤던 90년대의 한국 범죄영화다. 각 캐릭터들의 또렷한 특징을 살린 소개로 시작해 단락마다 유머러스한 부제를 다는가 하면,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활자를 차곡차곡 띄워 올리는 재기 발랄함도 보인다. ‘헝그리 정신’과 ‘무대뽀 정신’을 설교하던 극강의 신 스틸러 송강호도 이 영화가 남긴 유산 중 하나. 한석규의 캐릭터 서태주는 권력의 피라미드에서 신분 상승의 기회를 노리는 건달이다. 전략과 잔꾀에 능한 그는 어느새 보스의 오른팔(넘버 3) 자리까지 올랐다. 열혈 검사 마동팔(최민식)은 태주의 뒤를 추적하며 숨통을 조여온다. 거침없는 기질은 영락없는 건달이지만, 신중함과 냉철함을 무기로 한 태주는 <넘버 3>의 결말을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끈다.

접속ㅣ1997ㅣ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PD 동현

PC통신 세대에게 아련한 추억이 된 로맨스영화 <접속>. 90년대의 감수성을 전달하는 그 시절 최신 유행 아이템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차세대 PC통신으로 주목받은 유니텔은 이 영화로 인해 인기몰이를 했고, 삐삐, 공중전화, LP 판, 열쇠고리 등 90년대 신세대들의 전유물이 향수를 자극한다. 대단히 극적인 에피소드 없이도 인터넷망을 타고, 라디오 전파를 타고 전해지는 풋풋한 감정 교환이 <접속>을 즐기는 큰 묘미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좋아했던 옛 연인을 잊지 못한 라디오 PD 동현(한석규). 그리움에 스스로를 가둔 채 무감한 삶을 사는 동현은 우연이 연결한 새로운 인연, 수연(전도연) 과의 만남에 용기를 내 본다.

8월의 크리스마스ㅣ1998ㅣ사진관 아저씨 정원

한국 멜로영화에 있어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와 <8월의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견고한 쌍벽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줄평에 ‘지난 20년간 한국 멜로는 결국 허진호였다’라고 썼다.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30대 중반의 정원(한석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그에겐 죽음의 그늘보다 담담한 일상이 자리 잡고 있다. 주차 단속원 다림(심은하)은 매일 차량 사진을 현상하러 초원사진관에 들르고, 그녀의 생기발랄함은 정원의 일상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준다. 느슨한 유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던 두 사람. 정원의 건강 악화로 문 닫힌 사진관 앞에서 다림은 애태운다. 한적한 변두리의 작은 사진관에서 정말로 사진을 현상하고 있을 것만 같은 한석규의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담백하고도 오랜 여운을 선물했다.

쉬리ㅣ1998ㅣ국가정보원 특수요원 중원

국가 비밀정보기관 OP의 특수비밀요원인 중원(한석규)은 결혼을 앞둔 연인 명현(김윤진)에게 끝내 자신의 신분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국가의 명운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하는 그의 직업을 명현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중요한 제보자가 눈앞에서 저격 당하자, 요원들은 그 범인을 북한의 특수 8군단 소속 명사수 이방희(박은숙)로 지목하고 추적한다. 남북 공작원들의 대결은 점차 절정을 향해가는데, 명현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중원은 따뜻함과 냉철함이 공존하는 한석규의 얼굴에 최적의 캐릭터였다. 운명의 장난이라는 흔한 수사는 한석규와 김윤진이 만들어낸 결정적 장면 속에 적확히 들어맞으며 관객들을 애통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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