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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화려했을까? 국내 감독들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

<파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인사이드 르윈> 등을 통해 거장의 반열에 오른 코엔 형제 감독. 그들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1984)이 뒤늦게 국내 개봉했다. 술집을 운영하는 마티(댄 헤다야)가 사립탐정에게 불륜을 저지른 아내의 청부살인을 의뢰하는 이야기다. 이미 35년 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 지금까지도 호평을 이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이미 명성을 쌓은 감독이라 해도 그 출발점은 있다. 코엔 형제는 처음부터 실력을 입증하며 ‘꽃길’을 걸어온 사례. 그렇다면 국내 감독들은 어떤 작품으로 시작을 장식했을까.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아홉 감독의 데뷔작을 알아봤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라 불리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를 수놓은 감독들로 선정했으며 단편영화는 제외했다.

봉준호 감독 <플란다스의 개>

<플란다스의 개>

<기생충>으로 2019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그의 첫 장편영화는 2000년 제작된 이성재, 배두나 주연의 <플란다스의 개>다. 층간 소음의 원인인 개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이 고군분투를 그렸다. 그 속에서 쇠퇴하는, 혹은 나아가는 여러 세대의 모습을 씁쓸하게 담아냈다. <플란다스의 개>는 대중적이지 않은 코드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여러 장르를 오가는 완급 조절 등으로 독보적인 스타일을 자랑했다. 거기에 날카로운 사회비판 메시지까지 살리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배두나에게는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봉준호 감독에게는 뮌헨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 <달은... 해가 꾸는 꿈>

<달은... 해가 꾸는 꿈>

봉준호 감독과 달리 박찬욱 감독은 안정적으로 첫 단추를 끼우지 못했다. 그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은 스스로가 “망할만했다”라고 말한 흑역사다. 폭력 조직의 무훈(이승철)이 보스의 애인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으로, 박찬욱 감독답게 독특한 유머 포인트까지 섞어낸 범상치 않은 누아르 영화다. 그러나 <달은... 해가 꾸는 꿈>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 설정 등으로 괴작이라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미 제작 단계부터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지 않아 삐걱거림이 많았다고. 이후 박찬욱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인 <삼인조>마저 혹평을 들으며 암흑기를 보냈지만 2000년 제작된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김지운 감독 <조용한 가족>

<조용한 가족>

‘장르의 마법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김지운 감독. 그의 시작점은 블랙코미디였다. 빠른 시나리오 집필로 유명한 김지운 감독은 5일 만에 <조용한 가족>의 각본을 집필, 한석규와 <씨네21>이 주최했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당선되며 제작에 착수했다. 가족이 운영하는 외딴 펜션에서 투숙객들이 줄줄이 자살하고, 가족들이 시체를 암매장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조용한 가족>은 서늘한 유머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상천외한 전개로 호평 세례를 받았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저예산 영화였지만 약 3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으며,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까지 수상하며 김지운 감독의 초석을 다져줬다.

류승완 감독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도전정신이 느껴지는 작품. 네 편의 단편을 엮은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다. 철없는 고등학생, 조직폭력배, 형사 등 서로 연관된 인물들의 폭력을 엮어낸 옴니버스 영화다. 그중 첫 번째 에피소드인 <패싸움>은 장선우 감독의 <나쁜영화> 자투리 필름을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됐다. 붐 마이크가 화면에 잡히고, 같은 컷임에도 날씨가 달라지는(재촬영으로 인해) 등 엉성한 부분도 많다. 그러나 이런 투박함이 오히려 현장감과 처절한 연기를 살려주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약 6500만 원이 투여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8배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최동훈 감독 <범죄의 재구성>

<범죄의 재구성>

총 4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흥행 감독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최동훈 감독. 기록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단 한 번의 미끄러짐 없이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의 첫발은 2004년 개봉해 약 2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범죄의 재구성>. 은행을 상대로 사기를 벌이는 사기꾼들의 이야기다. 최동훈 감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집합, 반전을 포함한 빠른 전개 등이 처음 드러난 시점이다. “님자에 점 하나 붙이니까 남이 되더라”, “내가 청진기 대면 딱 나와” 등의 찰진 명대사도 빠질 수 없다. 이후 최동훈 감독은 장점을 그대로 살린 <타짜>, <도둑들> 등으로 미다스의 손으로 거듭났다.

홍상수 감독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앞선 감독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흉내 낼 수 없는 스타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홍상수 감독. 그는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단번에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홍상수 감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른 시나리오 작가들과 협업한 결과물. 그의 영화치고는 그나마(?) 극적인 살인 장면 등이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승전결이 없는 서사, 정적인 카메라 무빙, 건조하고 현실적인 톤 등의 특징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덕분에 “새로운 방식의 영화”라는 호평을 받으며 청룡영화상, 밴쿠버국제영화제 등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 <초록물고기>

<초록물고기>

작품성을 인정받은 감독하면 이창동 감독도 빠질 수 없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소설가로 먼저 등단한 그는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각본을 쓰며 영화계에 들어왔다. 그리고 1997년, 만 42세의 나이로 첫 연출작 <초록물고기>를 선보였다. 이창동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누아르 영화다. 갓 군대를 전역한 막동(한석규)가 폭력 보직의 두목(문성근)과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 이창동 감독은 장르색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덤덤히 연출,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찬사를 받았다. 자극이 아닌 여운을 남기며 국내 영화상 18개를 모조리 휩쓸었다.

임순례 감독 <세친구>

<세친구>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다시금 느낀 것. 한국 영화계에 분포한 여성 감독의 비중이다. 최근에서야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그 비중이 점차 늘고 있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왕성히 활동했던 여성 감독은 몇 없었다. 그중 가장 큰 성취를 이룬 이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리틀 포레스트>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 그녀의 장편 데뷔작은 1996년 제작한 <세친구>.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세 친구들의 고민과 방황을 그려내며 공감대를 끌어올린 작품이다. 암담한 현실 속 청춘들의 모습을 씁쓸하게 담으며 사회 모순, 부조리를 비판했다. 날카롭지만 섬세한 시선을 자랑한 <세친구>는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을 수상, 이후 임순례 감독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통해 충무로의 기대주로 부상했다.

이준익 감독 <키드 캅>

<키드 캅>

가장 의외의 데뷔작이다. 영화 광고(카피 작성, 포스터 디자인)업자로 일하던 이준익 감독은 1992년 영화 수입, 제작사 ‘씨네시티’를 설립했다. 그리고 1993년 <키드 캅>을 연출했다. 다섯 명이 아이들이 힘을 합쳐 백화점을 털러 온 도둑들을 잡는 이야기다. 이준익 감독은 원래는 제작자로 참여하려 했으나 감독이 구해지지 않아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키드 캅>은 어린 시절 한 번쯤은 해봤을 ‘영웅 놀이’에 대한 추억을 상기시키며 재미를 전달했지만 흥행에서는 크게 실패했다. 이에 이준익 감독은 다시 제작, 수입에 집중해 약 10년간 연출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나 2003년 <황산벌>로 복귀, 2005년에는 <왕의 남자>를 선보이며 천만영화 감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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