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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하고 낙관적인 한국형 우주 SF, <승리호> 시사 첫 반응
씨네21 취재팀 2021-02-05

조성희 감독의 신작 <승리호>가 2월 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공개됐다. 우주를 배경으로 영화 전체를 꾸리는 한국 SF영화는 <승리호>가 처음이다. 이 영화를 극장이 아니라 거실 TV와 모니터, 혹은 스마트폰으로 보게 될 모든 관객이 사실상 손해를 입게 되는 영화라는 뜻이다. 애초 <승리호>는 대형 스크린 앞에 수많은 관객들을 모아 상영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영화다. 이야기, 캐릭터, 음악, 촬영, 스타일, 특수효과 등등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한국영화로서는 처음 시도해보는 거대한 스케일을 지향한다. 무엇이 눈 앞에 펼쳐지건 이 영화의 첫 출발점을 감안하고 보기를 권한다. 기자들의 시사 첫 반응을 전한다.

김성훈 기자

한국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를 만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승리호가 우주를 질주하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영화의 초반부 부터 무척 감동적인 것도 그간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제대로 구현된 적 없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무중력 공간에서 빛의 방향과 움직임, 넓디넓은 우주에서 떠다니는 우주선, ‘위성 쓰레기’의 움직임과 속도 등 화면에 묘사되는 우주는 사실적이고, 완성도가 높다. 그런데 <승리호>의 장점은 단지 우주를 얼마나 스펙터클하게 구현해냈는가에 있지 않다. 휴머니티, 부성애, 연대 등 단편 때부터 오랫동안 구축해온 ‘조성희 월드’가 우주 공간을 만나 더욱 확장됐다. 승리호와 우주 공간 구석구석에 심어 둔 조성희 감독의 인장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미래 세대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메시지는 여전히 감동적이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 다만, 이 웅장하고 멋진 이야기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건 너무 아쉽다. OTT가 담기엔 조성희의 세계가 너무나 크다.

임수연 기자

<백 투 더 퓨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나 <구니스> 같은 1980-9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고 자란 세대가 가장 재미있게 볼 것 같다. 영화를 보며 쉽게 벅차고 순수한 열망을 싹 틔우게 했던 그 시절 그 비디오 영화(혹은 ‘주말의 명화’)의 활력을 조성희 감독의 세계관에 완벽하게 이식했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등장하며 국가의 경계를 허무는 <승리호> 본편은 ‘국뽕’과 거리가 멀지만, 이만한 제작비로 우주 영화를 만드는 프로덕션이 한국 말고 또 어디서 가능하겠냐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냥 오락영화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승리호>에서 사회정치적 텍스트를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특히 제임스 설리반의 ‘좋은 세상’과 태호(송중기)가 딸 순이에게 약속했던 ‘좋은 사람’의 직접적인 대비는 성장제일주의에 경도된 시대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어드벤처물의 두근거림을 추진력 삼아 대안 가족의 탄생으로 뭉클한 감동을 안기는 여정에 흔쾌히 합승하다 보면 인류의 공생을 제안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순진하게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에 영화적인 설득을 더하는 것은 (조성희 감독의 전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예고편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두 어린이다. “우주에서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대요. 우주의 마음으로 보면 버릴 것도 없고 귀한 것도 없고요”라는 꽃님이의 말엔 ‘나노봇’보다 강력한 힘이 있고, 특히 조성희 감독이 작사하고 김태성 음악감독이 작곡한 노래(마지막 쿠키로도 나온다.)의 가사가 등장하는 어떤 장면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업동이도 울 것이다.

배동미 기자

한국영화계의 오랜 유산은 기실 리얼리즘에 있었다. 비천한 것, 폭력적인 것, 성에 집착하는 것, 여성을 괴롭히는 것, 혼란한 가운데 나홀로 구원을 찾는 것. <승리호>는 여기에서 완전히 비껴나가 있는 작품이다. 상업영화 데뷔작 <늑대소년>때부터 조성희 감독은 이런 종류의 리얼리즘과 거리가 멀었다. 그의 영화적 세계는 오히려 옛 할리우드에서 찾아야 한다.

내러티브의 명료성, 감성적 공감, 익숙한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태동한 시기에 활동한 평론가 오티스 퍼거슨이 이야기한 세 가지 미학을 <승리호>에도 고스란히 적용시킬 수 있다. <승리호>는 명료하다. 2092년 지구는 황폐화됐고, 초국적 기업 UTS가 지구 근거리에 아름다운 대안공간을 완성시켰지만 누구나 시민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선악 대결 구도가 뚜렷하고, 화면에서부터 승리호 선원 측과 UTS 설리반 측에 극명한 대비가 드러난다. 따뜻한 노란빛의 승리호 선원들과 달리 설리반은 차가운 푸른빛을 담당한다. 무엇보다 <승리호>는 감성적으로 공감하기 쉬운 영화다. 아이가 등장하는 만큼 감성적으로 관객도 타이거 박도 마음이 금세 열리며, 우주청소선 승리호에 우연히 탑승한 꽃님이가 놀라서 엎드린 선원들을 따라 절하는 순간부터 마음을 빼앗겼다고 고백하고 싶다. <승리호>는 또한 익숙한 이야기이다. 아직 한국영화에서는 미지의 공간인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영화팬들이 <스타트렉>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물이다. 음악마저 익숙하다. 태호가 첫 등장할 때 들려오는 실로폰 소리의 영화 음악은 과거 할리우드가 우주의 신비로움을 소리로 표현하던 방식 그대로다.

초기작에서 잔혹동화를 선보였던 조성희가 보편적이고 모난 데 없는 이야기로 변화해온 과정을 생각해보면 한국영화계에서의 인정이 곧 잔혹함에 있지 않았나 싶다. 조성희 감독이 진실로 만들고 싶었던, 10년간 가다듬은 세상은 보편적이고 익숙한 이야기였다. 그의 영화 세계를 폄하하고 싶지 않은 건 한국영화계에 이런 작가 하나 쯤은 필요하지 않나 싶어서다. 규모 있는 영화라면 모진 사람들로 스크린을 채우는 한국영화계에서 조성희는 어쩌면 가장 돌출적인 작가인지도 모른다.

송경원 기자

<늑대소년>의 로맨스 판타지,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느와르 판타지에 이은 조성희 월드의 종착역은 역시 SF, 그것도 우주다. 감탄하면서 봤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우주 SF의 비주얼이다. 아마도 한국영화 역대 최고의 가성비 영화일 것이다. 이만한 예산에 이만한 결과물을 뽑아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극장에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 우주를 무대로 한 영상의 완성도는 한국영화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빼어나고, 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속도감은 경쾌하고 유려하다.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를 운항하는 승무원은 모자란 듯 꽉 차 알뜰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참 쉽고 친절하며 착하다. 조성희의 영화가 언제나 그랬듯 <승리호>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선의를 한시도 저버리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 자체는 익숙하고 안전하다. 세계관부터 전개방식까지 수많은 우주 배경의 모험활극이 떠오르는 <승리호>는 검증된 재미를 쫓는다. <그래비티>의 사실적인 재현보다는 <스타트렉>의 경쾌하고 낙관적인 모험담에 가깝다. 지구를 지켜내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쓰레기가 된 삶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이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쓰는 이야기다. 환경과 개발, 소녀와 자본, 순수와 욕망 등 선명한 가치를 대립시키는 또 한 편의 동화. 장점은 물론 아쉬움까지 조성희 영화의 빛과 그림자를 증폭시킨 결과물. 상황과 고민은 훨씬 단순해졌고 이야기는 한층 가벼워졌으며 재현방식은 좀 더 대중적인 쪽으로 다가간다. 어른의 몸에 아이들의 심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그려나가는 낙관적인 디스토피아. 솔직히 즐기면서 본다해도 마냥 좋아하기도, 그렇다고 싫어하기도 힘들다. 늘 하던 이야기와 전에 없던 비주얼 사이, 초월적으로 사랑스러운 어떤 순간들이 있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말순이가 초월적으로 귀여웠다면 <승리호>의 꽃님이는 초월적으로 사랑스럽다. 그리고 순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김현수 기자

<승리호>를 보고 이와 비슷한 소재와 캐릭터, 이미지와 액션을 보여주는 영화나 만화를 찾기란 너무나 쉽다. 10초 안에 연관 영화 열 편의 제목을 말할 수 있다. 좋은 장르 영화란, 정해진 형식과 특징을 깨고 부숴가며 재미와 감동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주어진 제약과 조건을 잘 반복하고 지켜 냄으로써 만들어진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할리우드의 수많은 장르 영화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승리호>의 미덕은 스페이스 오페라 혹은 사이버 펑크 등 SF의 많은 하위 장르 개념의 문학 작품이나 영화들이 가진 특징을 (이 정도의 제작비만으로!) 잘 살려냈다는 점이다. 조성희 감독의 작품 세계는 중편 <남매의 집>(2009)부터 시작해 <짐승의 끝>(2010), <늑대소년>(2012),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으로 이어지고 확장하면서 아이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어른들의 마음, 망가져 가는 세계 속에서 지켜내야 하는 가치 등의 메시지를 중요하게 다뤄왔다. 이번 <승리호>에 관해서는 조성희 감독의 작품 세계를 VFX와 SF라는 견고하고 세련된 장치를 써서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그리고 넷플릭스로 접하게 될 세계 관객들은 화투패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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