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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영화가 알려지기까지
2001-03-26

이란 도약 배후엔, 프랑스

1979년 이란혁명 전까지 외국에 배급된 이란영화는 몇편에 지나지 않았다. 이 영화를 주로 배급한 나라가 프랑스였다. 이란영화가 소개된

것은 베니스나 칸, 베를린, 로카르노와 같은 국제영화제에서였고 메흐르지의 <암소>나 샤히드 살레스의 <정물>과 같은 다수의 영화들이 수상했다.

프랑스에 본격적으로 이란영화가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부터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바흐람 베이자이, 샤히드 살레스, 아미르 나데리,

파르비즈 키미아이와 같은 주요 이란감독의 영화들을 상영하는 사이클이 조직되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비평가들이 이란영화를 발견하게 되고

이란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또 시네필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이후 낭트 제3대륙영화제에서 프랑스 배급사(마레 필름)가 나데리의

<수색>를 수입해 81년 배급했다. 칸영화제에서도 R. 푸야의 <민중의 옹호를 위해>가 큰 성공을 얻어 영화제 뒤 파리에서 개봉되었다.

이후 86년 낭트 제3대륙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나데리의 <달리기 선수>의 개봉이 이어졌다.

국제영화제와 별도로 이란영화가 프랑스에 소개되는 데는 예술영화관 중 하나인 ‘카티에 라탱’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서는 1983년부터

해마다 이란영화제를 조직해 기자와 배급자를 초청해 작품, 감독과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키아로스타미가 이란을 벗어난 외국에서 처음

발견된 곳이 바로 이 영화관이었다. 비평가나 시네필을 넘어서 프랑스 일반 관객이 이란영화와 만나게 되는 데는 칸영화제의 영향이 크다. 칸에서의

수상이 키아로스타미나 마흐말바프, 파나히 감독의 영화를 널리 홍보하는 계기가 됐다. 혁명 뒤 이란영화는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선전선동영화로 주로 이란과 이라크간의 전쟁을 다룬다. 두 번째는 미국 B급영화와 같은 상업영화로 가족을 소재로 한 멜로드라마도

포함된다. 세 번째가 예술영화로 일상 생활과 페르시아의 시가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다. 이 세 번째 카테고리의 영화가 외국에 배급된다. 1980년

이래로 현재까지 프랑스에서 개봉된 이란영화는 50여편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는 프랑스 전국에서 19만명의

관객을 모았고, 파나히의 <서클>은 개봉 4주 만에 13만명의 관객을 모아 예술영화의 기준으로는 놀라운 흥행성적을 보이고 있다. 이런 프랑스

흥행성적과 비평을 지표로 삼아 다른 국가의 배급자들이 이들 영화의 수입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프랑스가 이란영화가 다른 유럽국가나

아시아국가, 미국 등으로 배급되는 도약대로 자리잡은 것이다. 4년 전부터 CIBY 2000이나 MK2, BAC 필름과 같은 프랑스의 주요

제작, 배급사들이 키아로스타미나 마흐말바프의 영화에 공동제작자로 참여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에서 이란영화가 일반 관객에게까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란영화가 폭력이나 섹스를 배제하면서 할리우드영화와 구분되는 휴머니즘을 전달하는 데 있을 것 같다. 이와 함께

프랑스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국가의 영화를 수입하는 배급자에 선별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전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되지 않게 전세계의

풍부한 예술영화가 프랑스에 배급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란영화가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알려지고 일반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데는 프랑스의 뿌리깊은 영화문화가 뒷받침돼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나마드 하기그나트는 프랑스 파리의 예술영화관 ‘카티에 라탱’의 프로그래머이자 이란영화 평론가로 이란영화를 프랑스에 맨 처음 소개한

이다. 1999년 퐁피두센터에서 <이란영화사>를 발행했는데 곧 일본, 미국, 영국에 번역될 예정이다.

파리 나마드 하기그나트/ 영화평론가

번역 성지혜/ 파리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