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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 영화제 - <제7의 봉인>
2001-03-26

<제7의 봉인>

Det sjunde inseglet/ The Seventh Seal

1957년, 출연 막스 폰 시도, 군나르 비외른스트란드

“나는 믿음이 아니라 지식을 갈구합니다…. 나는 신이 당신의 손을 내밀며 모습을 드러내길 바라고 있습니다…. 두려운 나머지 우리는 어떤 상(像)을 만들어내서는 그걸 신이라고 부릅니다.” 헛되었던 10여년간의 십자군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기사 안토니우스 블록이 원한 것은 이 고통스럽고 가혹한 세상에서 신의 존재를 감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요구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신은 여전히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과연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제7의 봉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귀향하는 기사 블록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종의 로드 무비이다. 그의 여정이란 곧 ‘질문의 여정’이다. 자신 앞에 불쑥 나타난 ‘죽음’에 블록이 체스 게임을 제안한 것은 심연의 공포로서의 죽음을 피하거나 미뤄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건 신으로부터 정당한 대답을 얻을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종말을 유예해놓고 블록이 목격한 것은 흑사병, 고행의 행렬, 불신, 마녀 사냥으로 휩싸인 끔찍한 지옥이었을 뿐이었다. 신은 보여지지 않은 기적 뒤로 숨어 있기만 할 뿐이었다. 베리만 자신이 종교적 믿음에 대해 혼돈스러운 상태에서 만들었다는 <제7의 봉인>은, 그렇게 침묵하는 신이라면 위험하고 또 악한 존재가 아닌가, 라며 기독교적인 신에 대해 도저한 회의의 시선을 던진다.

그 중심 주제란 게 ‘중세적으로’ 너무 나이브하지는 않은가, 또는 그것이 동시대적인 울림을 전해주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로 생각해봐야 할 것이지만, 어쨌든 <제7의 봉인>이 창작자의 진지한 철학이 담긴 ‘사색의 영화’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너무 고루한 느낌이 든다면, 에릭 로메르의 지적을 한번 상기해보면 좋을 듯하다. <제7의 봉인>에 대해 쓴 리뷰에서 그는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미덕은 무엇보다도 이것이 한편의 ‘영화’라는 사실에 있다고 말했다. 비록 이 영화가 추상적인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그런 명상의 출발점이 어떤 추상적인 ‘착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미지’에 있다는 것이다. 과연 먹구름 아래서 여섯 인물들이 죽음의 춤사위를 추는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장면 같은 경우는 이제 전설적이란 수사가 붙을 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