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잉마르 베리만 영화제 - <외침과 속삭임>
2001-03-26

<외침과 속삭임>

Viskningar och rop/ Cries and Whispers

1971년, 출연 하리엣 안데르손, 리브 울만, 잉그리드 툴린, 카리 실반

베리만적인 세계에서 여성들이 배제된다는 것은 알모도바르적인 세계에서 그런 것만큼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 베리만을 두고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는 어렵겠지만, “모든 여성들이 나를 감동시킨다”고 언젠가 베리만이 고백한 것처럼, 그의 우주가 많은 부분 여성들의 세계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은 아주 분명한 사실이다. 여성들을 경이로워하는 눈으로 관찰하며 보듬을 때 베리만의 영화들은 특히 미묘하고 불가사의하며 또 매혹적인 것이 되곤 한다. <외침과 속삭임>은 <페르소나>(1966)와 함께 그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로 첫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다.

영화는 네명의 여자들, 즉 죽어가는 아그네스를 거쳐 그녀의 동생인 마리아, 언니 카린, 그리고 하녀 안나까지 차례대로 옮겨가며 그녀들 감정을 섬세하게 어루만진다. 마치 네개의 악장처럼 나뉘어진 이 네 여자들의 이야기는 제각각 애증의 관계로 불가해하게 얽혀 있는 영혼들의 고통스러운 ‘외침과 속삭임’이다(<외침과 속삭임>이라는 이 제목은 사실 모차르트 사중주에 대해 ‘외침과 속삭임’ 같다고 쓴 어느 음악 평론가의 글에서 빌려온 것이다). 죽어가는 이를 둘러싸고 자매들의 의례적인 애정에서 시작했던 영화는 관능적인 열정의 밤을 지새지만 가혹하게도 그들 사이의 진심어린 증오를 폭로하면서 끝나는 것이다.

이 여성들이 가진 영혼의 표정을 잔인하게 드러내기 위해 베리만이 사용하는 중요한 장치는 색감과 거리감이다. 우선 이 영화 속에서는 스산하다고 표현할 만한 스토리와는 극렬하게 대조를 이루는 붉은 색이 자주 우리의 눈을 자극하는 걸 볼 수 있다. 특히 클로즈업된 얼굴 뒤로 보이는 붉은 색의 배경은 시점의 전환과 플래시백을 알려주는 형식적 장치인데, 그것은 또한 우리가 이미 영혼의 내면으로 들어왔음을 은밀히 알려주기도 한다(실제로 베리만이 어린 시절 그림으로 그렸던 영혼의 내면은 붉은 색이었다고 한다). 베리만은 또한 영혼에 다가가는 또다른 특별한 통로로 클로즈업을 활용한다. 이에 대해 프랑수아 트뤼포는 아주 적절하게도 “베리만 외에 인간의 얼굴에 그렇게 가까이 다가간 영화 감독은 없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베리만이 클로즈업을 단지 빈번히 사용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를테면 마리아를 보여주는 한 장면에서처럼, 거울에 비친 눈가의 주름만으로도 영혼의 권태로움을 낱낱이 투시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침과 속삭임>은 정말이지 영혼을 표현하는 몇 안 되는 영화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