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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툼 레이더> 월드 프리미어
2001-06-13

3D 여신, 라라 크로프트가 깨어난다

■ LA 시사회에서 공개된 게임원작영화 <툼 레이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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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근교에는 왁스 뮤지엄이 있다, 고 한다. 가본 적은 없다. 그 존재를 안 것은 움베르토 에코가 쓴 글 속에서였다. 유명인사들의 모습을

밀랍으로 재현한 그 박물관을 움베르토 에코는 미국인의 ‘사실’에 대한 집착으로 해석했다. 백인의 역사가 없는 신대륙에서, 풍요로운 ‘물질’로

모든 것을 충족시키고 있는 미국, 그들은 강박적으로 ‘사실’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파리, 심지어 뉴욕까지 전세계의 풍경을 재현한

라스베이거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그 분석의 정합성은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고, 어쨌거나 미국사회가 ‘사실성’에 집착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건 미국인의 정신건강을 주로 책임지는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LA에 몇번씩이나 들렀지만, 왁스 뮤지엄에 들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건

이미 할리우드영화에서 수없이 확인했기 때문이 아닐까.

게임 속 욕망, 영화로 실현되다

<툼

레이더> 역시 그렇다. 이미 게임으로 전세계 수억명의 사람이 알고 있고 접해본 캐릭터를 다시 영화로 만든 이유의 첫 번째가 돈이라면, 두 번째는

‘물질적 욕망’이다. 인지도가 높은 캐릭터나 게임, 만화 등을 영화로 만들어 돈을 벌어들이는 할리우드의 전략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니 일단

넘어가자. 게임 <툼 레이더>의 주인공은 라라 크로프트다. 영국의 귀족 출신이고, 전세계의 숨겨진 유적과 보물을 찾아다니는 ‘여성’ 인디아나

존스(‘여성’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인디아나 존스가 시대적으로 앞서기에 인용한 것뿐임). 그 도발적이고 강력한 파워를 지닌

라라 크로프트는 사이버 캐릭터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툼 레이더>의 팬 중에서 3D로 만들어진 라라 크로프트를 현실로 불러내

자신의 눈과, 가능하다면 몸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욕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영화 <툼 레이더>는 그런 욕망을 실현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만큼 선명하고 기발한 여성 캐릭터는 기존 할리우드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라라 크로프트는 엄숙하고 격식을 차리는 소더비경매장에 들어가서도, 앞에 놓인 의자에 태연하게 발을 올려놓는다. 집안에 일종의 서바이벌 세트를

지어놓고, 목숨을 위협하는 로봇과 싸우며 전투훈련 혹은 운동을 한다. 몸매는 늘씬하고(물론 가슴은 크고), 남자는 물론이고 로봇이나 석상도

거뜬히 때려눕히고, 게다가 머리까지 좋은 라라 크로프트는 ‘여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이 하드>의 제작자 로렌스 고든과

<콘 에어>의 감독 사이먼 웨스트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툼 레이더>를 오직 라라 크로프트의 영화로 만들었다.

<툼 레이더>의 카메라는 오로지 라라 크로프트만을 쫓아다닌다. 라라는 영국, 캄보디아, 아이슬란드를 쉴새없이 오가며 그녀의 현란한

‘액션’을 보여준다. 아쉽게도 ‘사랑’은 없지만, 그것도 ‘팬’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현란한 1인 액션, 황홀한 팬서비스

6월1일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기자들은 LA 웨스트우드의 크레스트극장에서 <툼 레이더>, 아니 라라 크로프트를 만났다. 라라

크로프트는 꿈속에서 모종의 계시를 받고 계단 아래의 창고에서 20년 전 죽은 아버지가 가져온 고대의 시계를 발견한다. 시계 안에 들어 있던

묘한 장식을 찾은 라라는,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본다. 그 시계의 행방을 찾고 있던 비밀조직 일루미나티는 라라의 집에 특수부대를

보내 시계를 훔쳐온다. 그 장식은 지구 전체를 파괴시킬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트라이앵글의 한 조각이었고, 세개로 나누어진 트라이앵글의

나머지 조각을 찾아낼 수 있는 실마리였다. 라라는 일루미나티의 뒤를 쫓아 캄보디아와 아이슬란드로 향한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툼 레이더>는 철저한 1인 액션이다. 일루미나티가 라라의 저택을 공격했을 때, 탄력있는 고무줄에 의지하여 적을

물리치는 광경은 고난도의 서커스를 보는 것처럼 황홀하다. 앙코르와트 지하에서 트라이앵글의 조각을 찾아내고, 석상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도

눈에 띈다. <미이라2>의 액션이 주로 특수효과에 의존한 것에 비해, <툼 레이더>는 실제의 액션을 많이 보여준다. 사이먼

웨스트의 액션연출은 수준급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느라, 어쩐지 클라이맥스가 허전하게 느껴지지만. <툼 레이더>를

칸 마켓 등에서 처음 스크리닝했을 때에는 악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뒤 재편집을 한 것이 이번에 시사회 버전이다. 아마도 사족을 잘라내고, 철저하게

라라 크로프트를 중심에 둔 액션영화로 편집한 것 같다. <툼 레이더>는 아쉬운 기분이 들 정도로 급하게 달려가고, 딱 끝난다. 약간

섭섭하지만 속편을 기다릴 정도로.

안젤리나 졸리는 라라 크로프트에게 피와 살을 나누어주는 데 성공했다. 단지 액션이나 표정만이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의 웃음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악당을 물리치고, 개들이 끌어주는 줄에 의지하여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라라는 깔깔 웃어댄다. 그 과정 자체가 너무나도 즐거웠다는 듯이.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결코 웃을 수는 없을 거다. <다이 하드>의 맥클레인처럼 허탈한 웃음 정도야 지을 수 있겠지만. 하지만

라라는 정말로 즐거워한다. 무엇인가를 찾고 다른 이와 경쟁하여 자신의 성과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그녀는 정말로 즐긴다.

현실과 환상이 겹쳐진 세계

사이먼 웨스트는 <툼 레이더>는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현실이 환상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앙코르와트의 지하로 내려가면

석상들이 살아 움직인다. 아이슬란드의 지하로 내려가면 거대한 태양계의 모형이 돌아간다. 억세고도 섹시한 라라는 환상의 영역에서, 한껏 무용을

펼친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툼 레이더>는 즐겁다. 라라 크로프트 혹은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점에서

<툼 레이더>는 성공적이다.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실사의 세계로 옮기는 것은 의외로 복잡한 일이다. <툼 레이더>의 성공요인 하나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호수 위로 카누를 타고 가는 라라의 머리 위로는 거대한 사원 앙코르와트가 펼쳐져 있다. 그건 실제의

광경이다. 연못에 지은 세트 위에 있는 사원은 진짜 과거의 유적 앙코르와트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미이라2>에서 고대 이집트의

유적을 몽땅 그려놓은 것처럼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린 배경을 보는 것만 같다. <툼 레이더>는 사실과 환상의 세계를 절묘하게 엮어놓았다. 환상의

세계인 지하에 들어가서도, 라라의 액션은 여전히 사실적이다. 지상에 놓인 앙코르와트는 그 어떤 컴퓨터그래픽이나 특수효과보다도 환상적이다. <툼

레이더>는 단지 사실과 환상의 세계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를 하나로 겹쳐놓고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밀랍인형, 혹은 우리들의 꿈이

물질성을 획득하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뻔한 할리우드영화들에서.

LA=김봉석 기자

사이먼

웨스트 감독 인터뷰

“안젤리나에겐 연기가 필요없었다”

너무나 유명한 게임을 영화로 만드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았나. 게다가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대개가 실패했다.

만약 <툼 레이더>를 잘 못 만든다고 해도 첫 번째가 아니니까, 크게 걸리지는 않았다. 그동안 게임원작 영화가 워낙 시시해서

오히려 홀가분하게 시작했다. <콘 에어>가 액션영화를 유머러스하게 만든 것이라면, <툼 레이더>는 게임원작 영화를 시리어스하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라 크로프트는 고고학자니까 어딘가 신비한 구석이 있게 그리고 싶었고, 기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은 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안젤리나 졸리에게는 만족하는가.

안젤리나 졸리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라라 크로프트와 꼭 맞는 배우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안젤리나 졸리의 성격 자체가 워낙 특이해서 굳이

연기시킬 필요가 없다. 라라의 캐릭터 역시 단순하지가 않다. 예를 들어 라라는 잠을 잘 때에도 칼을 들고 잘 정도다. 안젤리나는 그런 성격을

굳이 연기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라라 크로프트의 아버지 역으로, 안젤리나 졸리의 진짜 아버지인 존 보이트를 기용했는데. 처음부터 부녀가 함께 연기하게 할 생각이었나.

전혀 아니었다. 캐스팅 디렉터가 배우들의 목록을 쭉 적어왔을 때, 아버지 역의 배우에 존 보이트도 들어 있었다.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도

연기자라는 생각을 그때야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동시에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들의 관계가 안 좋다는 소문도 있었기에 따로따로 물어봤다. 눈치를

보면서. 존 보이트를 기용한 것은 단지 안젤리나의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좋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라라 크로프트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 같은 느낌마저 들던데.

존 보이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그 장면을 연기할 때는 모든 스탭들도 숙연해졌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모두가 부녀에게 집중했다.

그들의 이전 관계를 모두 알고 있으니까. 나는 두 사람간에 오가는 대화를 좀더 사적으로 바꾸었고, 존 보이트와 안젤리나 졸리도 대사를 직접

손봤다.

<툼 레이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젤리나 졸리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다.

맞다. 거의 모든 화면에 라라가 나온다. 하지만 그가 등장하지 않으면 바로 분위기가 다운되지 않던가. <툼 레이더>는 라라 크로프트의

영화다. 라라 크로프트가 나오지 않으면 이야기 자체가 지루해질 것 같았다.

안젤리나

졸리 인터뷰

“라라 크로프트, 내가 질투한 여자”

일반적으로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들은 심각한 연기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당신은 액션영화에 출연했다. 의외의 결정인데.

심각한 연기도 좋지만, 웃고 즐길 수 있는 역도 좋다. 사실 나는 심각한 배역을 너무 많이 연기해왔다. 심각한 연기가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라이트하고 웃는 연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하긴 사람들도 큰 드라마를 맡으라는 말을 많이 했지만, <툼

레이더>의 모험하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감독이나 제작자나, 라라 크로프트 역에는 오직 당신밖에 없다고 하던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라라 크로프트의 이미지를 내가 잘 그려낼 수 있었다니 다행이다. <툼 레이더>에서 라라 크로프트를

연기하는 건 다른 영화와 다르다. 다른 영화에서 관객은 내가 연기하는 것으로 그 캐릭터를 알게 되고 이해한다. 하지만 <툼 레이더>의

관객은 게임 속의 라라 크로프트와 나를 비교한다.

남편인 빌리 밥 손튼도 라라 크로프트의 팬이라고 하던데.

빌리 밥 손튼은 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라라 크로프트를 좋아했다. 내가 질투한 여자가 있다면 바로 라라 크로프트다.(웃음) 특히 그녀의 외모를.

그런데 우연처럼 내가 라라를 연기할 기회가 왔다.

아버지인 존 보이트와 함께 연기하기는 처음인데.

아버지와 촬영하면서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게임도 같이했고, 친구처럼 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전에 가질 수 없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라라 크로프트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2달 반 동안 운동과 식이요법 등을 했다. 술과 담배도 끊었다. 라라 크로프트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단지 근육만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힘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술이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계체조, 요가, 킥복싱 등도 배웠다. 스턴트도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하지만 촬영을 하느라

남편과 떨어져 있었고, 그게 제일 힘들었다.

라라 크로프트는 힘과 지혜 모든 면에서 남성을 압도한다. 라라 크로프트는,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

액션연기를 단지 여자가 했기 때문에 <툼 레이더>가 특이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물론 여자인 것이

행복하고 즐겁다. <툼 레이더>나 다른 액션영화에 등장하는 스턴트와 액션은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라라

크로프트를 연기하면서, 여자로서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라라 크로프트는 유난히 가슴이 돋보이는데. 진짜 당신 가슴인가.

(좀 황당해하며) 내 가슴은 36C, 영화에서는 36D, 패드를 넣었다. 모든 여자가 그렇게 한다. 허리는 28인치, 힙은… 없다.(웃음)

게임 속의 라라 크로프트는 허리가 24인치다. 하지만 그건 환상이다. 라라 크로프트의 몸매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소녀들이 나도

그런 몸매를 가지고 싶어, 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게임이나 영화는 현실과 다르다. 게임 속의 라라 크로프트는 늘 반바지를 입고 다닌다.

하지만 정글에서 반바지는 말도 안 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긴 바지를 입었다.

언제나 어깨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다니는데, 아이슬란드에서는 무척 추웠을 것 같다.

추웠다. 하지만 라라 크로프트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녀가 파카입고 뛰어다니는 것을 보려하지는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