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가상과 현실, 경계는 어디일까?
2001-02-01

<아바론> 한국시사 끝낸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오타쿠 3인의 대화 지상중계

기획...오타쿠의 신 오시이 마모루, 한국의 오타쿠를 만나다

5만. 오시이 마모루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수한 <인랑>의 한국관객 수다. 작지만, 진지하면서도 소수 취향인 일본 작가주의적 애니메이션의 관람객으로서는 결코 조촐하지 않은 잔치였다. 테크놀러지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도전, 거기에 상응하는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알려진 오시이 마모루는 일본에서도 오타쿠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온 감독이다. ‘오타쿠의 신’ 오시이 마모루가 신작 <아바론>을 들고 한국에 왔다.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교배종인 <아바론>의 개봉은 2월 초. 미리 <아바론>을 본 오시이 마모루의 ‘오타쿠’와 ‘신’이 만났다.

그들의 만남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작품세계에 담긴 이미지와 언어들을 시시콜콜 뜯어보며 궁금증을 쌓아뒀던 오타쿠들과, 그들의 물음에 할말이 적잖은 감독에게 1시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지난 1월10일 저녁 6시. 오시이 감독이 머무는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감독과 세명의 오타쿠들이 만났다. 오타쿠 3인방은 김세준, 서찬휘, 이종원씨. 이들은 만화로 한글을 깨친 뒤 아니메로 일본어를 배웠고(김세준), 소시적부터 빠졌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공유할 네트웍 구상에 골몰하며(서찬휘), 아예 자기소개란에 “오시이 마모루 작품에 특히 흥미가 많다”고 써두는(이종원), 오시이의 팬들. 어디 오타쿠 없나, 하는 탐문과 인터넷 수색 끝에 만난 세 사람은 모두 “진짜 오타쿠들은 따로 있다”며, ‘오타쿠’라기보다는 “그저 오시이 마모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인터뷰 전날 <아바론>의 시사회를 보고 “오시이 감독의 작품으로는 쉽고 명쾌한 작품”이라고 서로 짠듯 한 입으로 말할 만큼 오시이에 통달한 눈치. 작품에 흐르는 대사처럼 결코 짧지 않은 오시이 감독의 대답을 조금이라도 더 듣고자, 1시간 조금 넘는 인터뷰는 거의 일본어로 진행됐다.

이종원(이하 이): 총과 전차, 천사와 개, 꿈과 현실 등, 당신은 20년 동안 계속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바론>을 보고 ‘오시이적인 것의 집대성’이란 느낌이 들었다. 20년 전이라면 상당히 새로웠을지 모르지만 요즘엔 ‘현실과 가상현실’이라는 소재는 흔한 것인데,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에도 ‘현실과 가상현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마찬가지인가. 아니면 변한 점이 있나.

오시이 마모루(이하 오시이): <매트릭스>처럼 현실과 가상현실을 다룬 작품들을 많이 봤지만, 그렇게 가상현실과 현실을 뚜렷이 구분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 두 가지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에서 가상현실은 화려하고 멋있는 데 반해, 현실은 누추하고 심심하다. 물론 워쇼스키 형제처럼 머리 좋은 사람이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을 테고, 아마 할리우드 시스템의 문제였겠지만. <매트릭스>를 보면 흥분되는 점도 있고, 엔터테인먼트로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현실과 가상현실을 뚜렷이 구분짓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난 현실을 별로 믿지 않는다. 감기에 걸려서 아프다거나, 치통을 앓는다거나 할 때처럼 아주 현실적인 실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뭐가 현실인지 잘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어떤 건물이 있으면, 그것 뒤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생각. 지금 내가 처한 위치가 어디인가에 항상 의문을 갖고 있다. 앞에 놓인 컵처럼 실체가 있으면 막연하게 이걸 부르는 이름은 공유할 수 있지만, 내 현실과 다른 이가 처한 현실이 같다고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그러니까 자신의 현실을 남에게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현실과 가상현실의 구분도 그렇다. <아바론>을 만들면서 뇌를 연구하는 학자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는 가상현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현실과 가상현실을 아무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 공감했고, 나 혼자 그런 망상을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싶어서 기뻤다. 그래서 현실과 가상현실을 동등하게 다루고 싶었다.

김세준(이하 김): <패트레이버2> <공각기동대>나 <아바론> 등 당신의 최근작에는 여성 주인공과 보조적인 인물로서의 남성이라는 구도가 많다. 또 <공각기동대>의 마지막에 나오는 소녀, <아바론>의 고스트처럼 소녀가 공통적으로 등장하곤 하는데, 그런 설정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오시이:그런 공통점은… 아마 같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전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영화를 만드는 순서에 대해서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그는 캐릭터, 이야기, 세계관 순으로 만든다고 했다. 다른 할리우드영화들도 마찬가지인데, 유명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캐릭터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할리우드영화들은 비슷비슷해진다. 내 경우는 이와 정반대로, 세계관, 이야기, 캐릭터 순으로 만든다. 머릿속에서 뭔가 표현하고 싶은 세계관의 이미지가 떠올라야 영화가 만들어진다. 질문한 작품들의 경우 주인공을 남자로 할까 여자로 할까 고민했지만, 여자 이외에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바론>도 처음에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생각했는데, 그 인물을 어떻게 할지 아무런 생각이 안 났다. 그러다 여자로 바꿔 생각하니까 애쉬의 방, 개를 키우며 홀로 살아가는 모습이 떠올라서 그렇게 했다. 고스트도 꼭 ‘소녀의 모습’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 고스트는 아저씨일지도 모르고, ‘유령’이라는 말의 의미대로라면 나이든 할아버지가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벽 속을 뛰어다니는 소녀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에 그렇게 찍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세계관,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 경우에 그것은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해온 것들을 하나씩 꺼내는 작업이었고, 같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니 다른 영화를 찍어도 비슷하게 나오는 것 아닐까.

이:당신의 작품에는 총뿐 아니라 전차, 헬기 등 무기에 대한 묘사가 많은데, 특별한 의도가 있나. <아바론>은 폴란드에서 찍은 영화답게 구소련의 총기와 무기가 대거 등장해서 밀리터리 마니아라면 기뻐하기 그지없을 작품이다. 하지만, 비숍이 애쉬에게 준 권총만큼은 독일제 모젤C96이다. <견랑전설>을 비롯해 당신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곤 했던 이 총기는 일부러 등장시킨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취미인가.

오시이: 단순히 취미 때문이다. 원래 무기, 전차, 헬리콥터 같은 걸 좋아한다. 모젤 밀리터리C96(주인공 애쉬가 고스트를 쏘았던 총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 군용권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권총이다. 애쉬가 왜 드라구노프(극중 애쉬가 사용하는 저격총으로, 소련군 및 동구권에서 널리 사용되는 저격용 총)를 쓰고 있냐고 물으면, 그것 역시 내가 좋아하는 저격총이니까. 이 총들을 직접 쏴본 적도 있고, 멋있는 총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총을 썼냐는 질문은, 왜 마우고자타 포렘난크란 배우에게 애쉬 역을 맡겼는가 하는 질문과도 같다. 내겐 총기 역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설령 내가 생각하던 애쉬의 이미지에 맞는 배우가 있어도 연기력이 모자란다든지 섭외할 수 없다면 기용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 이미지에 맞아야 하고 연기력 같은 기본적인 실력도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이미지에 맞는 멋있는 총이라도 입수가 곤란하면 쓸 수 없다. 입수 가능한 총이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실탄을 사용할 수 없다면 쓸 수 없다. 애쉬가 쓰는 저격총이 M16이 아니라 드라구노프인 이유도, 내가 생각한 이미지에 맞고 입수 가능한 총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미지에 맞는 총이나 배우가 없다면 그냥 포기한다. 다른 식의 장면으로 처음부터 다시 구상한다.

서: <패트레이버> <공각기동대> 등에서 늘 같은 팀으로 작업해왔던 미술 스탭 오구라 히로마사와 함께한 전작들도 그렇고, 담당 스탭이 바뀐 <아바론>의 모노톤에도 ‘색이 들어 있으면서도 단조로운’,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의 색조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감독으로서 추구하는 영상표현의 방향인가.

오시이: <아바론>에서 거의 모노톤을 사용한 것은, 빛의 존재를 억제하고 정보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영화에서 CG가 아니라 화면 자체가 존재감을 얻을 수 있도록, 색의 문제에 집착했다. 사람들은 신기한 동물이라서, 영화에서 CG로 만든 거짓은 금방 눈치챈다. 어차피 영화가 그리고 있는 건 모두 거짓의 세계인데도 그것만은 속아주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관객이 보기에도 현실감 있게,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하다. <쥬라기 공원>을 보면 CG로 만든 공룡이 나온다. 모두들 진짜 공룡 같다고 평했지만, 진짜 공룡이 무슨 색깔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영화에선 녹색, 갈색빛이 도는 공룡피부가 나왔는데, 그건 관객이 도마뱀 같은 파충류에서 연상한 것이지 공룡의 색깔이 정말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 만약 핑크색이나 보라색 공룡이 나왔다면 관객은 엉터리라고 하겠지만, 정말로 공룡은 핑크색, 보라색일지도 모른다. 영화란 그런 점에서 모두 거짓말이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한 영화의 장면들에 그런 정보량을 어떻게 안배하느냐다. 특정한 어떤 장면에서 정보량이 너무 많으면 관객은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다른 장면들이 시시하고 거짓말처럼 보이게 된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영화 전체적으로 빛과 정보량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 신경쓰는 건 내가 애니메이션 감독이기 때문이다. 사실 실사영화 감독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현실에 있는 존재, 눈앞에 있는 색깔을 찍으면 되니까. 하지만 애니메이션 감독은 언제나 리얼해 보이는 색깔을 만들고, 선택해야 한다. 사람이 총맞고 죽을 때 나오는 피의 색깔은 실은 검붉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선 빨갛다. 그 편이 관객에겐 리얼하게 보이니까. 그러한 사실성,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 당신은 스탭들에게 많은 것을 위임한 뒤, 작업현장의 결과물 중 가장 괜찮은 것을 고른다고 들었다. 가장 맘에 든 결과가 나왔던 선택은 무엇인가, 반대로 후회되는 선택은 무엇인가.

오시이: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했던 선택이 성공적인지 아닌지는 별개의 문제고, 일단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하는 게 아닐까, 이래선 안 된다 하는 불안은 어떤 감독이라도 느낀다. 거기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아바론>의 경우, 애쉬와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오디션에 그녀가 나타난 순간, 애쉬가 나타났다, 이 배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용기를 내서 결단을 내렸다. 순수 실사로 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도 했다. 영화를 성공이니 실패니 하고 결과만 갖고 판단하면 감독은 필요없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는 존재가 감독이다. 나도 방에 틀어박혀 혼자 고민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단 한번 결정하면 결코 바꾸지 않는다. 고민해도 소용없으니까. 나중에 다른 생각이나 판단이 들면, 차라리 그 부분을 없애버린다.

서: <아바론>에서 애쉬의 개는 인간의 음식처럼 제대로 요리한 음식을 먹고, 게이머 등 인간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개밥 같은 음식을 먹는다. 스터너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때도 사람이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개가 개밥을 먹는 것처럼 게걸스러운데, 동물과 인간이 뒤바뀐 듯한 묘사나 식사 장면을 길게 찍은 것은 <인랑> <케르베로스 지옥의 파수견> 등 그간의 작품들에서 이어져온 것 아닌가.

오시이: 100% 그렇다. 스터너가 개처럼 보였다니 연출자로서 기쁘다. 내가 생각한 스터너는 들개 같은 이미지니까. 촬영중에 스터너 역의 배우한테 “너는 개다”라고 말하면서, 들개 같은 인간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그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장면을 30회에 걸쳐서 표현했다. 음식 먹는 장면이 길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프로듀서도 같은 소리를 했고. 식사 장면에서 음식을 신선하게 보이기 위해서, 소시지, 사과, 양배추에 모두 도미노를 이용해 마스크를 씌웠다. 이 작업에 3주가 걸렸다. 어떤 영화 관객에겐 여배우의 샤워신이 중요한 것처럼, 나에겐 식사 장면이 중요하다.(웃음) 멋대로라든지 독단적이라든지, 식사장면이 너무 길다는 지적이 있는데, 특별히 의미는 없다.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느낌이다. 3년, 5년 뒤에 보아도 나는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나한테는 식사 장면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 같고, 그런 이미지를 찍고 싶었다.

서찬휘(이하 서): <아바론>의 영상을 만드는 데 도미노란 시스템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어떤 시스템인가.

오시이: 도미노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달린 하드웨어, 머신이다. 원래 영국에서 만들어졌는데, 이 기계의 가장 큰 특징은 필름을 스캐닝한 뒤 컴퓨터상에서 텍스처, 렌더링 등의 갖가지 효과를 내고 그것을 다시 필름으로 출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CF에서는 각종 편집기가 쓰이고 있는데, 상상한 것은 모두 표현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35mm영화에서도 그런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도미노를 이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이 기계는 특수촬영에서 와이어를 없앤다든지, 블루스크린 앞에서 배우들을 연기시키고 나중에 배경을 덧붙이거나 지워버린다든지 하는 정도밖에 쓰이지 않았다. 그걸 다른 방법으로 쓸 수 없을까 고민했다. 예를 들어 이 기계로는 화면에 담배 연기를 추가한다든지, 빛의 정보량을 조절해 배우의 얼굴에 그림자를 강조하거나 없앤다든지 하는 식으로, 컴퓨터그래픽으로 일종의 마스크를 씌우는 작업이 가능했다. 아마 도미노를 설계했던 오퍼레이터조차 이런 사용방법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프로듀서 와타나베 시게루가 “한국영화 <용가리>도 도미노를 썼다”고 하자) <용가리>도 도미노를 쓰고 있다고 들었다. 다만 <아발론>과는 사용하는 방법이 정반대지만. 사실 요즘은 포토숍이라든지 좋은 소프트웨어가 많아서, 개인용 컴퓨터에서도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다. 나도 스토리보드를 작성할 때 포토숍으로 스캔받고, 작업해서 600장 정도의 방대한 스토리보드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프트웨어가 좋아도, 모두들 매뉴얼대로, 같은 소프트웨어를 같은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비슷비슷한 이미지밖에 만들 수 없지 않은가. 이제는 소프트웨어 때문에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뉴얼에도 없는 방법으로 사용해 봤다. 도미노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연산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예전에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세요”라고 말할 정도로 오래 걸리던 렌더링 작업도, 3분 동안 담배 피우고 들어오면 끝나 있다. 연출자인 나에게 작업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중요하다. 비록 화질은 떨어져도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가지 화면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당신이 감독한 실사영화 중 <토킹헤드>와 <케르베로스…>는,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저예산으로 만든 독립영화에 가까우면서, 대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한 솔직한 작품으로 보였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처음 본격적으로 만든 ‘상업실사영화’를 만들면서 부담이 가거나 어려운 점은 없었나.

오시이: 부담 같은 건 없었다. 돈은 언제나 모자랐고…. (웃음) 나의 ‘첫 번째 상업실사영화’라고 했는데, 촬영중 현장의 스탭도 똑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난 내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이 다 상업영화라고 생각한다. 실험영화도 아니고, 자주영화도 아니고 극장에서도 상업적으로 상영되니까. 물론 상업적으로 제한된 조건에서 스스로 강조한 건 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생각하는, 납득할 수 있는 가장 멋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 말이다. 여배우의 아름다운 얼굴만 아니라 거리, 아파트, 개, 탱크까지 멋있게 보여주고 싶었다. 부담이나 위험은 오히려 웃음에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관객을 웃기는 부분이 그다지 없다. 농담을 하고 싶었지만 거의 포기했다. 아무래도 사람을 웃긴다는 건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니까. 웃기는 부분에서 관객이 웃어주면 기쁘지만, 웃어줬으면 하는 장면에서 관객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감독에게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건 제임스 카메론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번역 이종원.정리 황혜림 기자blauex@hani.co.kr·디자인 조현덕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