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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 [3]
2000-01-18

<씨네21>은 영화수용문화의 중심인 비디오숍의 우수 운영자들을 후원하고 전국 곳곳에 숨은 우수 비디오숍들을 발굴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마련했습니다.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한 제1회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씨네21>은 지난호에서 비디오대여업계의 현황과 전망을 살펴보는 기획 '비디오숍에도 봄은 오는가'를 실었습니다.

이번호에는 이번 '2000 씨네21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에서 뽑힌 30개 숍 가운데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5개 숍을 탐방하고 운영자를 소개합니다.

또 비디오숍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대여문화 백양백태를 콩트로 엮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관심갖고 지켜봐준 비디오숍 운영자 및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국영화 컬렉션, 이보다 많을 순 없다

우수 비디오숍 1 - 경희대 앞 미래영상, 손태영씨

통신을 통해, 혹은 비디오를 컬렉션하는 이들을 통해 ‘미래영상’(02-964-6429)의 명성은 간간이 들어왔다. 국내에 출시된 비디오라면 반드시 구해볼 수 있는 곳이라고. 경희대학교 앞 허름한 골목에 자리잡은, 지저분한 입구와 간판이라기도 뭣한 상호명을 보고는 잘못 온 것이 아닌가 낙담했다. 사람 하나 움직이기 힘든 창고. 그러나 테이프를 보고는 가슴이 뛰었다. 한장 구하기도 만만찮은 희귀 비디오라는 것을 기본 3장에서 많게는 6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분노의 저격자> <아이다호> <위험한 관계> <지지> <파리의 아메리카인> 등은 ‘미래영상’에서는 희귀 비디오 축에 끼지 못한다. 한국영화 컬렉션이 백미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실도 이만한 수준이 못 된다고 한다.

15평 매장에 사람 하나 겨우 다닐 공간을 빼고 진열장을 빼곡이 들여놓았다. 현재 테이프 수는 3만장이고 이중 90년 이전 출시 프로가 1/3 정도다. 제작사별로 분류해놓은 것이 아쉽지만, 워낙 좁은 공간에 테이프는 많고, 주인이 늘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찾기 쉽게 그리 분류했다.

단정하게 보이려고 머리를 짧게 깎았다는 손태영(41)씨는 증권회사를 15년 다녔다. 깡통계좌 등으로 시끄러울 때 주가폭락으로 고객과 마찰이 생겼다. 그때만 해도 직원에게 책임을 지울 때여서 퇴직금으로 변상해주고도 7천만원의 빚이 남았다. 아버지 소유의 5평 가게를 얻어 2400장의 테이프를 갖고 대여점을 시작했다. 1주일 이내에 보고 싶은 프로를 못 구해다 주면 2천원을 변상하겠다고 내걸고 적극적으로 프로를 구하러 다녔다. 신프로를 많이 사서 잠깐 돌리다 다른 대여점 가서 오래된 프로와 맞바꾸는 식으로 모았다. 그렇게 2년 하니까 5800장이 되었고,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게 93년 3월. 그의 손을 거쳐 나간 테이프가 6만장. 출시 프로 타이틀이 12만이라니 반 정도는 만져본 셈이다.

워낙 영화를 즐겨 보았다. 연애 5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화를 봐서 애인의 소원은 우리 영화 하루만 안 보면 안 될까, 였단다. 워낙 재미있게 영화에 빠지는 편이지만 혼자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애인에게 나와 영화를 본 유일한 사람이란 걸 영광으로 알라라고 답하곤 했다. 지금도 폐업하는 가게, 지방 등으로 테이프 구하러 다니느라 옛날처럼 영화를 빠뜨리지 않고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업 끝내고 가게에서 한꺼번에 몰아 보곤 한다. 최근에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

그럼 손태영씨의 보람은 뭘까? “내 가게를 찾은 손님이 보고 싶다는 프로는 반드시 구해서 보여주는 것이지요. 영화 공부하는 이들이 더러 테이프를 팔라고 하는데 개인이 소유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볼 수 있도록 내가 지속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무리 어려워도 파는 일은 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이 분실돼요. 5년 만에 구한 <위대한 피츠카랄도>를 바로 잃어버린 게 아직도 가슴 아파요. 영화를 안다는 사람의 짓이니 더욱 괘씸하지요.”

테이프 수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영화 수집이다. “잘 만든 외국 영화보다 못 만들었어도 우리 영화가 중요하지요. 16mm도 모으고 있어요. 포르노시장이 개방되지 않은 상황에서 16mm를 통한 대리 만족은 무시 못할 상황입니다. 충무로에서 밀려난 감독이 그쪽 시장으로 가서 호구지책 하는 경우도 있고, 그쪽 배우가 충무로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고. 또 가끔은 잘 만든 영화도 나와요. 아무튼 우리 영상물은 다 중요합니다.”

가장 절실한 것은 매달 출시 프로 중 꼭 수집해야할 작품 목록을 발표하는 책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대여점 상대의 잡지들이 적지 않지만 광고비를 많이 받은 영화만 크게 소개하는 등, 너무 속 들여다보이는 짓거리가 많아서 정확한 정보얻는 데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개봉 영화는 신문, TV 등에서 대문짝만하게 되풀이 소개해주면서 비디오 대접은 왜 그리 소흘한지.

손태영씨의 꿈은 우리나라에 비디오 소프트가 나온 이래의 모든 타이틀을 수록하여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다. 컴퓨터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 걱정이다.

“영화제작에서 상영까지는 짧은 시간이지요. 이후의 세월은 대여점에서 머무는 것 아닙니까? 영화가 마지막으로 머무는 공간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수집도 하고 경영도 해야지요. 아트 영화 전문점이라 해서 찾아가 보면 동네 가게랑 다를 게 없어요. 고객이 목록 갖고 와 보여달라는 비디오를 못보여 준다면 창피한 줄 알고 폐업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가게가 협소한 줄은 알지만 규모를 늘릴 생각은 없고 교통 편한 곳에 2, 3개 더 낼 생각은 있단다. 손님 가까이에서 좋은 영화를 원하는 때에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불현듯 떠오르는 영화를 한밤중에라도 바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젊어서 많이 했기 때문에 24시간 영업이 대형 매장보다 시급하다고 본다. 부산에서까지 와서 빌려 가는 고객의 불편을 덜고자 최근 가게 근처에 비디오방을 오픈했다. “아예 보고 가면 소포로 반납하는 불편도 없을 것 같아서요.”

문화원을 다니며 영화를 보고, 소형 영화 만드는 모임을 기웃거리던 젊은 시절 꿈을 생각해서 돈 없고 이렇다할 적을 갖지 못한 아마추어들의 영화 모임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취미로 영화 만드는 이들도 있어야 해요. 필름을 싸게 공급한다거나, 무료 현상, 무료 상영 같은 뒷받침이 있었으면 하지요.” 대여점으로 떼돈 버는 일은 불가능한 것, 끊임없이 보람을 찾아야 한단다.

옥선희/ 비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