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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 [5]
2000-01-18

소프트웨어 만점 하드웨어도 만점

우수 비디오숍을 간다 3 - 영화마을 서대문점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없다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두루 만족시켜주는 대여점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영화도 출시됐구나 감탄할 정도로 희귀 프로를 많이 갖춘 대여점은 침침하고 좁은 매장에 테이프를 그냥 쌓아두다시피 했다. “<쉘부르의 우산>을 10만원 주고 구입했는데 지금까지 딱 두번 대여됐어요. 이러니 뭐 의욕이 나야 매장도 새로 꾸미고 정리도 하지요.” 점퍼 차림의 중년 아저씨 얼굴엔 시름이 가득하다.

미소 띤 얼굴, 단정한 옷차림의 젊은 주인이 상주하고 있는 점포는 밝고 깔끔하다. 테이프도 반짝반짝, 잘 정리해 두었다. 그러나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오래 전에 나온 비디오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끔 청계천에 나가 옛날 프로를 사는데 좀 유명하다 싶은 영화는 가격을 얼마나 높이 부르는지 살 엄두가 나지 않아요. 더구나 나 혼자 만족하려고 사놓는 결과밖에 안 되구요.” 그래서 요즘엔 신프로 구입에만 신경쓰고 있어요 한다.

테이프 구색, 업주의 의욕 모두 칭찬해줄 만한 대여점이 이리 드물단 말인가. 고민하고 지쳐 있던 차에 들르게 된 ‘영화마을 서대문점’(02-396-8029)은 정말 우리를 신바람나게 했다. 목록을 체크해보니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먼저 경영하던 사람이 워낙 테이프를 잘 갖추어 놨더라구요. 제가 인수한 것은 96년 10월이고, 이후에 가게 뒤편을 늘려서 15평 매장에 1만3천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중 90년 이전 출시 프로가 5천편 정도예요.” 테이프 보유량이나 연륜에 비해 아주 깔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시킨 것은 미소를 잃지 않는 28살 사장님 김승영씨였다. 함께 간 기자가 “같은 남자가 봐도 부러울 정도”라고 할 만큼 호남에 미남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오가는 손님 맞는데 뭐가 어렵냐, 할지 모르나 장사라는 건 창살 없는 감옥살이다. 더구나 대여업은 한번 팔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서 좀생원 만들기 십상인 스트레스 많은 직업이다. 늘 미소 띤 얼굴로 손님을 맞는다면 성격을 타고나거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체질인가 봐요. 다른 대여점주들이 놀러와서 젊은 놈이 답답하지 않냐고 하는데, 못 느끼겠어요. 영업 끝내고 혼자 비디오 보는 맛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어요.”

직장 생활 할 때, 일요일마다 극장 앞에 줄섰다가 영화 보는 게 낙이었다. 숍을 인수한 뒤에는 아예 가게에서 먹고 자면서 비디오를 보았고, 데이트도 여기서만 했다. 좋아하는 영화는 흑인 감독 작품이나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들, 특히 스파이크 리가 좋다. “<똑바로 살아라>를 처음 보았을 때 왜 한국사람을 나쁘게 표현하나, 기분이 나빴는데, 좋은 영화라고들 해서 다시 보니 뭘 의미하는지 분명해지더라구요. 흑인 영화들은 백인 우월주의가 없고, 음악도 좋아서 빼놓지 않고 봅니다. 기분이 좋아지니까 코미디도 즐겨보는데 <해피 길모어>가 재미있었어요”

김승영씨는 영화를 많이 아는 사람들보다 직장 생활하면서 휴식과 기분 전환을 위해 비디오 한편 보는 이들에게 서비스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체리향기>보다 <아메리칸 퀼트>를 권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30∼40% 정도의 고객에게 직접 작품을 권해주는데 70%가 만족스런 반응을 보인다. 재미있게 본 영화는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보게 해서 권할 수 있도록 한다. 영화에 비해 비디오 정보는 너무 적고, 특히 대중을 위한 정직하고 재미있는 가이드가 없어서 아쉽다. “<씨네21>도 너무 어려워요. TV의 영화 프로들도 열심히 보는데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평론가들이 <오스틴 파워> 칭찬을 많이 했지만, 패러디한 영화를 다 본 사람 아니면 재미있게 볼 수 없는 영화잖아요. 어느 여성 고객이 아주 징그러운 영화라 했는데, 그게 정직한 감상 같아요.”

기대하지 않고 골랐는데 재미있었다는 것이 비디오 고객의 기쁨일 것이다. 보통 고객의 ‘실패하지 않는 비디오 대여 요령’은 이렇다. 함정이 있기는 하지만 많이 꽂혀 있는 비디오는 확실히 재미있다. 극장 개봉작 임에도 불구하고 한장밖에 꽂혀 있지 않은 것은 심상치 않은 수작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 단계로는 투자하는 심정으로 미개봉작을 고른다. 주말에는 극장 개봉으로 검증받은 비디오와 미개봉작을 하나씩 골라 본다. 공통 사항으로는 재킷과 제목에 현혹되지 말 것과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우리 영화를 빠뜨리지 않는 것.

멀리서 오는 고객이 많고, 방송사, 잡지사의 자료 부탁도 적지 않지만 찾아주는 것이 고마워 웃는 낯으로 대하려 한다. 단 반납이 너무 늦거나, 고의로 반납을 않거나, 분실했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아 서운하다. “영화를 아는 분들이 이러니 더 안타깝지요. 매일 되풀이해 볼 것도 아닌데. 여러 사람이 함께 보는 게 더 좋잖아요.”

제작사의 일방적 횡포, 대여료 덤핑, 업주 맘대로 할 수 없는 진열에 대해서는 김승영씨도 여느 대여점주들과 같은 불만과 개선점을 내놓았다. 앞으로의 꿈은 대여점을 하나 더 오픈하는 것과 희귀 비디오를 인터넷으로 공급하는 일을 개척하는 것.

옥선희/ 비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