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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신인감독 10인의 출사표 - 김영
2001-02-17

<쥬크박스> - 노래에 살고 노래에 죽고

▒감독이 되기까지

김영(34) 감독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무대예술에 대한 동경에서부터 시작했다. 오페라, 연극, 발레 등 무대 위의 퍼포먼스를, 그는 어린 시절부터 폭넓게 감상하며 무대 위에 서기를 바랐다. 그러나 ‘재주’가 모자란다는 생각에 무대 위에 오르는 대신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로 가 여러 가지 장치며 의상을 만져보는 데 만족하곤 했다. “나는 항상 스탭이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는 스탭의 기질이 있었노라고 말한다. 무대를 사랑하던 소녀는 대학 3학년 때 1년을 휴학하고 떠난 장장 8개월의 유럽 배낭여행에서 영화의 매력을 ‘발견’한다. 케임브리지 ABC 시어터에서 본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와 카우프만의 <프라하의 봄>에 그는 그 어느 것보다 더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또 하나의 문화’의 어린이캠프에 교사로 참여해 변영주, 홍효숙 감독과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그들의 소개로 들어간 독립영화집단 ‘바리터’에서 16mm 영화찍기에 대한 ‘수업’을 시작한다. 이때 그가 촬영보조로 참여한 작품이 김소영 연출, 변영주 촬영의 <작은 풀에도 이름있으니>.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단편이다. 대학졸업 뒤 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해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든 그가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4년이었다. 김홍준 감독 <장미빛 인생>의 연출부로 일하며 기록을 담당했고, 1999년에는 이창동 감독 <박하사탕> 연출부에서 김현진씨와 함께 공동 조감독을 했다. 데뷔작 <쥬크박스>에 대한 구상은 우연히 시작됐다. 2000년 3월 차를 타고 길을 지나다 우연히 음치클리닉 간판을 본 순간 노래강사와 노래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5월, 그곳엘 찾아가서 주인공의 모델이 된 여강사를 만나고, 여름 이 아이템을 자신의 데뷔작감으로 점찍는다. 김영 감독은 현재 <쥬크박스>의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며 영화사 ‘KM컬쳐’와는 지난해 6월 1차 계약을 맺은 상태다.

▒어떤 영화를 만들것인가

“너는 장사영화를 할 거야”, 어느 선배의 말은 김영 감독의 영화스타일을 반은 맞히고 반은 못 맞힌 말이다. 반대로, 김홍준 감독과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를 거쳤다는 이유로 그에게서 작가영화적 기질을 점치는 이들도 많다. 정작 그 자신은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얘기하는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영화는 수용자에게 다가갔을 때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와 ‘만남’은 ‘변혁’에 대한 꿈과 맥이 닿아 있다.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변혁의 가능성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조금씩이라도 진보할 수 있다면, 가치관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에서 어떤 식으로 포장이 돼도 상관없다.” 88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 “운동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고민은 늘 하던 회색인”이었다며, 그 고민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첫 영화 <쥬크박스>에 담고 싶은 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가벼운 터치”. ‘성공적으로’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게 되다면, 사회성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야기’를 중시한다지만, ‘이미지’에 대한 미학적 욕심 역시 만만치 않다. 그는 “기지발랄하면서도 깊이있는” 라스 폰 트리에와 키에슬로프스키를 좋아하며, “윗세대보다는 덜 뮤직비디오 세대이고 아랫세대보다는 훨씬 더 텔레비전세대”인 자신이 이미지 세대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미지 언어를 얼마나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느냐가 나의 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이미지만 난무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와 이야기가 함께 살아 있는 영화가 내가 목표하는 최고 도달치이다.” <쥬크박스>는 작지만 자신있는 그 첫 번째 실험이다.

▒<쥬크박스>는 어떤 영화

<쥬크박스>는 음치클리닉의 여자강사가 자신의 ‘크리닉’을 찾은 노래 못하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도 성장하고 그들도 ‘치료’한다는 이야기. 노래를 못한다는 것 자체가 이 우화 같은 작품에서 소외의 한 상징이다. 영화는 ‘어른들의 성장’을 이야기하며 ‘소외된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사회는 꼭 무엇인가를 잘해야만 살 수 있는 사회인가, 라는 질문도 영화속에 던져 넣었다.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 남자학생 한명은 끝까지 음치에서 구제하지 않을 생각. 처음에 70년대 ‘이류’ 통기타 가수 출신의 40대 아줌마 강사로 설정했던 주인공은 실제 모델을 만나 본 뒤 결혼을 할까말까 고민하는 20대 후반 여성으로 바꿨다. 스타급 배우 중 피아노 연주와 노래실력을 갖춘 ‘누군가’의 캐스팅을 생각하고 있다. <박하사탕>의 이재진씨가 음악을 맡고, 크리닉 ‘교재’로는 대중적인 가요와 팝을 다양하게 선정할 예정이다. 여주인공의 테마송은 창작곡으로 마련한다. 시나리오 작업 외에 현재 스탭이 일부 구성된 상태인 이 작품을 김영 감독은 가을쯤 크랭크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최수임 기자sooee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