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2001 신인감독 10인의 출사표 - 정윤수
2001-02-17

<베일> - 30년전 실종된 아이들, 그리고 사건파일

▒감독이 되기까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독특한 분위기의 SF액션스릴러 <베일>(가제)을 준비중인 정윤수(39) 감독이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집안’과 ‘집 안’의 내력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 우선 ‘집안’의 배경을 살피자면, 초등학교도 가기 전부터 영화광이었던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극장을 수시로 들락거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어머니 덕분에 극장을 은은하게 울리던 목소리의 주인공 숀 코너리가 나오는 007 시리즈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 등을 보며 영화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또 현대음악가이자 서울대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한 부친 정회갑씨는 <피아골> 등 한국영화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해 유명 배우들이 집안을 들락거리곤 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해 꿈꾸게 된 것은 ‘집 안’에서 시작됐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집 안에 놓인 TV를 통해 거의 매일 의 심야영화를 ‘독파’했다. 당시 그는 줄이 벅벅 가는 흑백 브라운관을 통해 더스틴 호프먼이 교회에서 면사포를 입은 캐서린 로스를 불러대는 <졸업>이나 피터 폰더가 한껏 폼을 잡고 오토바이를 몰고다니는 <이지 라이더> 등을 알게 됐다. 히치콕의 <새>나 무수한 전쟁영화들, 우디 앨런의 좌충우돌 코미디 역시 모두 을 통해 그를 유혹한 영화들이다.

영화에 대한 그의 꿈은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대행사에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실현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더이상 꿈을 미룰 수 없다”며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그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뉴욕의 뉴 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필름 프로덕션을 전공하는 한편, 아르바이트 삼아 방송 관련 일도 하느라 뉴욕을 누비고 다니면서 영화의 꿈을 다시 키워나갔다. “내가 영화 안에 담을 것은 영화를 공부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됐다. 국내로 들어와서 그는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에서 시나리오 원안과 조감독을 맡았고, 최진수 감독의 <헤어 드레서>에선 시나리오 각색과 조감독 노릇을 하며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떤 영화를 만들것인가

역시 가제이긴 하지만 <예스터데이>로도 불리는 <베일>은 약 1년 반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현재 시나리오 완결 단계이고 주연배우 캐스팅이 한창이다. 2020년쯤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는 액션 스릴러에 속한다. 사실적이고 치열한 전투장면과 추적신을 많이 담을 계획이다. 정 감독은 프로덕션 노트에서 “결국 관객은 신나게 이 영화의 그런 면들을 즐기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번쯤 ‘그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은 메시지도 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담고자 하는 메시지란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인간의 모습과 가치에 대한 것. 즉 인간들의 스스로를 복제해내려고 하는 재현 본능인 ‘미메시스’(Mimesis)를 다루게 된다.

그는 이같은 이야기를 ‘사운드의 영화’로 담아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소리가 많은 부분을 말하고 표현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외부세계와 자신을 차단한 채, 스스로에게 속삭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의 대사는 급박할수록 차분하고 주위가 시끄러울수록 조용하게 말하는 식으로 표현되며, 격투신조차 소리에 역점을 둬 선보일 생각이다. 또 전체적인 분위기와 동떨어지는 사운드를 통해 반전을 노리는 ‘주관적 소리’ 같은 데도 신경을 쓸 계획이다. 물론 그렇다고 비주얼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주얼에 대한 고집이 강하다보니 미술 작업이 중요해져 특별히 프리 프로덕션 시스템을 만들었다. 현재 영화에 사용될 모든 시각적인 요소는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만들어내고 있다. 정 감독은 특히 인물들의 고립감과 단절을 표현하기 위해 망원렌즈같이 큰 렌즈를 많이 사용하려 한다. 그는 “앞으로 다루고 싶은 영화는 시간, 또는 영화적으로 재편된 시간, 혹은 시간이 형상화된 모습의 가족, 또 그것과 얽힌 개인, 이런 것들”이라고 말한다.

▒<베일>은 어떤 영화

2020년쯤의 미래 어느 날, 특수수사관 윤석은 통일된 한국과 중국의 국경지대에서 연쇄살인자에게 납치된 자신의 아들을 구하려다 오히려 실수로 죽게 만든 고통스런 기억을 갖고 있다. 아들의 납치범을 찾아 온 국경지대를 뒤지고 다니던 중, 그는 수도인 인터시티에서 벌어진 유괴사건을 수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한편 아시아 연합경찰 범죄심리분석관 노희수는 경찰교육 위크숍에 참석차 인터시티에 도착하는 날 조카 진이의 유괴소식을 듣는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석과 희수는 수사권을 놓고 처음부터 부딪힌다. 하지만 범인은 둘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러 가지 단서를 석과 희수에게 남겨주며 연속된 살인을 저지른다.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은 의문의 제보를 통해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제보자는 둘에게 30년 전 일어난 아이들의 실종사건 파일에 대해 알아보라고 얘기한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