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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기대작①] <언더독> 오성윤 감독, "픽사, 지브리 같은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다"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7-08-14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이 가져다준 행복은 채 1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적어도 재정적 상황만 놓고 보면 그렇다.”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은 한국의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썼다. 220만명이라는 관객수도 대단했지만, 명필름과 오돌또기의 공동제작과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투자·배급 참여로 한국 상업 장편애니메이션의 판을 키우고 유의미한 시스템과 롤모델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컸다. 그런데 <마당을 나온 암탉>이 개봉하고 6년이 지난 현재, 오성윤 감독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살아가는 것의 버거움을 토로하고 있다(인터뷰가 끝날 때쯤엔 목이 반쯤 쉬어 있었다). 오성윤 감독은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차기작으로 <언더독>(공동연출 이춘백) 작업에 곧장 착수했다. 출발은 좋았다. 기획 단계에서 이미 순제작비의 50% 이상을 투자받았고 중국쪽 투자까지 수월하게 유치할 수 있었다. 결과물도 만족스럽게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드 배치 문제로 인해 한·중 관계가 틀어졌다. 중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도 불똥이 튀었고, <언더독>의 중국 투자사도 일방적으로 투자 철회를 통보해왔다. 더욱 울화가 치민 건 그 뒤에 전개된 상황들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을 만나면 그들에게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로 투자가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디즈니의 <겨울왕국>(2014) 국내 관객수가 1천만명이 넘는 상황에서 국내 장편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천대받고 있는 것이다.

오성윤 감독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이 특수한 과거의 사례가 아니라는 것을 <언더독>으로 증명하려 한다. <언더독>은 사람에게 배신당한 유기견들이 인간의 도움 없이 살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주체적 자아와 자유의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다. 지난 7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공개된 4분여의 러프컷 영상은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았다. 유기견이라는 소재 자체가 품고 있는 감동의 드라마,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상상력이 <언더독>을 특별하게 만든다. 한국 상업 장편애니메이션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항상성을 기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오성윤 감독을 계원예술대학교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실 곳곳이 개 사진으로 도배돼 있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개봉한 지 어느덧 6년이 흘렀다.

=영화 한편 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마당을 나온 암탉>의 감독이 이렇게 힘들면 후배 감독들은 얼마나 힘들겠나. 벤처캐피털(VC)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의 성공 사례가 너무 없다면서 투자를 회피한다. 그런 얘기를 반복해서 듣는데 처음엔 화가 나다가 나중엔 속에서 울음이 나더라. 두 번째로는 미웠다. 벤처캐피털이 미운게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이 미웠다. 잘 좀 하지, 하는 마음이 들어 울컥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나온 지 6년이 지났는데 어쩜 이렇게 성공 사례를 못 내놓았을까. 그런 마음에 괜히 후배들이 미워지더라. 유아용 애니메이션, TV용 애니메이션이 돈이 되니까 그쪽 덩치만 커졌다. 한국 애니메이션 생태계의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생태계의 다양성이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는 건가.

=무엇보다 상업영화로서의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는 이들이 없다. 영화로서의 애니메이션을 계속 시도해야 하는데 다들 어렵고 힘들다고만 한다. 그래서 TV로 빠지고 게임으로 빠진다. 이번에 SICAF에서 <언더독> 러프컷 영상을 공개한 것도,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명색이 한국에서 열리는 애니메이션 축제인데 영화제에 선보일 한국 애니메이션이 없다고 얘기해서였다. 원래 창작자들은 작업의 중간결과물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아무튼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이 영화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그런 시도가 너무 부족하고 어설픈 것 같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과연 기술자로서의 애니메이터가 아니라 크리에이터로서의 애니메이터가 얼마나 될까. 투자자들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나는 작품에 대한 욕심만 있었지 스튜디오에 대한 야망은 없는 사람이었는데 최근에 그 생각이 바뀌었다. <언더독>이 잘되면 디즈니나 픽사, 지브리 같은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은 야망이 생겼다. 작업의 항상성을 위해서, 실력 있는 분들을 모셔오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스튜디오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저런 불만이 축적되다 보니 쓸데없는 야망만 생겼다. (웃음)

<언더독>

-<언더독>의 투자 과정은 어땠나.

=우선 정부지원금을 받은 게 시작하는 단계에선 도움이 됐다. 그리고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의 후원으로 열린 E-IP 피칭에서 <언더독>이 1등상을 받았다. 상금보다 컸던 게 NEW와의 만남이었다. <언더독>에 상을 줬으니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꺼낼 수 있었고, 시나리오 검토 과정을 거쳐 NEW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기획 단계의 애니메이션에 투자·배급사가 투자를 결정한 사례는 드문 것으로 안다. 또 하나 의미 있는 건 순제작비의 50%를 NEW에서 투자했다는 거다. 거기에 오돌또기 자체 투자금이 있었고, 중국쪽 투자사와도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사드 문제가 터졌다.

=중국 화책연합에서 투자하기로 했다. 계약서 도장도 찍고 인보이스까지 발송한 상황이었는데 사드 문제가 발생한 거다. 그러자 화책에서 정치적 이유로 투자를 철회한다는 문서를 보내왔다. 그게 올해 초에 벌어진 일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선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사드 피해 업체에 자금 지원을 하고 있으니 피해 신청을 하라는 공문을 띄웠고, 그걸 보고 부랴부랴 사드 피해 접수를 신청해 대출을 받았다. 사드로 인한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의 피해가 꽤 된다. 그런데도 영진위나 콘텐츠진흥원에선 제대로 된 지원이나 후속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더 적극적인 액션이 있어야 했다고 본다. 또 사드 문제로 투자캐피털엔 ‘<언더독> 재정 악화’ 라는 이상한 소문이 났다. 그래서 더 투자받기가 어려워졌다. 지금은 와디즈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계획하고 있다. 8월 중에 펀딩을 시작할 것 같은데, <언더독>의 경우 유기견이라는 소재, 목소리 출연한 도경수, 사드로 인한 중국의 정치적 보복 등의 이슈가 있어서 펀딩 결과가 긍정적일 거라고 얘기를 해주더라. 크라우드 펀딩의 의미가 분명히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투자와 관련해 아쉬움이 있다. 어느 벤처캐피털 대표는 대놓고 그런 말도 했다. 극영화는 10개 작품에 투자해서 9개가 망하고 1개만 성공해도 용서가 되는데 애니메이션은 그렇지 않다고. 애니메이션 한편에 투자했다가 수익을 거두지 못하면 그 책임을 다 뒤집어써야 해서 투자를 저어한다고. 애니메이션은 영화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10편 중 1편이 되지 못하는 거지. 그게 한국의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의 현실이다. 그게 곧 내 현실이기도 하고.

-<마당을 나온 암탉>은 탄탄한 원작이 있었는데, <언더독>의 시나리오는 직접 썼다.

=이번에도 좋은 원작을 찾아보려 했는데 못 찾았다. 그러다 TV프로그램 <동물농장>에서 유기견 보호소에 있는 얼굴이 뭉개진 시추를 보게 됐다. 클로즈업된 시추의 얼굴을 보는데 거기에 많은 얘기가 담겨 있더라. 실제로 유기견들의 사진을 보면 무수한 사연과 캐릭터가 느껴지지 않나. 그때부터 <언더독>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언더독>이 내겐 진검승부다. <마당을 나온 암탉> 때는 탄탄한 원작과 명필름이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었는데, 이번엔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이고, 공동제작이 아닌 단독제작이다. 그러니 진검승부일 수밖에.(드림서치 C&C가 공동제작으로 참여했으나 이후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버려진 반려견들이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그들만의 세상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유기견들의 이야기지만, 유기견의 대척점에 선 존재로서 인간의 이야기 또한 중요한 서사로 작동한다. 인간과 반려견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야 내 관심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됐는데, 기본적으로 주체적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차기작으로 구상 중인 두 작품도 주체적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고, <언더독>도 개들의 주체적 자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천만 애견인 시대다. 그런데 매해 10만 마리의 개들이 버려지고 있다. 아무리 캠페인을 해도 그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 현실을 보고 있자면 인류는 진보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된다. 어쨌든 <언더독>은 단순히 유기견 문제에 좀더 관심을 갖자는 얘기를 하는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동물권에 대한 얘기까지 하고 싶었다.

-도경수, 박소담, 박철민이 목소리 연기에 참여했다.

=도경수 배우는 <카트>(2014)를 보고 ‘언젠가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카트>를 보는데 도경수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웃음) 박소담 배우는 <검은 사제들>(2015)에서 참 좋았다. <언더독>에선 들개 밤이의 목소리를 연기하는데 꽤 터프한 연기가 나온 것 같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달수 목소리를 연기했던 박철민 배우는 이번엔 짱아 목소리를 연기했다. 징그럽게 목소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또 사냥꾼 목소리는 이준혁씨, 개코 목소리는 과감한 캐스팅인데 강석씨가 연기해주셨다. 억지로 배우의 목소리를 변성해서 캐릭터의 나이를 맞추고 싶지 않았다. 캐릭터의 나이와 배우의 나이대가 어느 정도 맞았으면 싶었고 결과적으로 좋은 캐스팅이 이루어진 것 같다.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애니메이션의 더빙에 왜 전문 성우를 쓰지 않고 배우들이나 아이돌을 쓰냐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만 봐도 대부분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한다. 문제는 배우나 아이돌의 기용 그 자체가 아니라, 잘하지도 못하는 배우를 마케팅용으로만 활용하는 데 있다. 목소리 연기를 못하면 쓴소리를 듣겠지만 누가 하든 잘한다면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마케팅, 당연히 필요하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데. (웃음)

-개들이 주인공이다. 인간과 워낙 가까운 동물이라 더욱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을 것 같다.

=개의 자연스런 의인화 연기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다. 이번에 이춘백 감독과 공동연출을 하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었고 워낙 능력 좋은 애니메이션 감독이라 개의 행동은 물론 표정 연기를 섬세하게 잘 표현해냈다고 자부한다. 또 3D 공정을 통해서 2D의 룩을 완성했는데, 기계적 카툰렌더로는 원하는 비주얼을 만들 수 없어서 1년 넘게 기술 연구를 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자연스런 2D ‘간지’를 만드는 거라서, 3D 티가 나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붓선이나 매핑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물론 1천억원짜리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과 30억원짜리 우리 작품의 기술력을 일대일로 비교할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승부수를 찾아야 한다. 이야기든 무엇이든. 그들을 따라한다고 되는 게임이 아니다. 오리지널리티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어쨌든 조류(<마당을 나온 암탉>)도 하고 포유류(<언더독>)도 했으니 이제는 사람을 그리고 싶다. (웃음)

-차기작도 이미 구상 중이라고.

=하나는 <너는 내 여동생>(원작자 펑슈에쥔)이라고, 중국 소설이 원작이다. 도시에 사는 소녀가 중국 소수민족인 묘족에서 다섯 가족을 만나면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아메리칸원주민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건데, 부족을 떠난 소녀가 말이 되는 이야기다.

-<언더독>은 언제쯤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작업은 50% 이상 완료됐다. 내년 초에 포스트 프로덕션을 끝내는 게 목표고 내년 봄 혹은 여름 중에 개봉 시기를 잡을 것 같다. 연상호 감독처럼 실사영화 제안이 왔을 때 할 걸 괜히 단칼에 거절했다는 후회도 든다. 이게 다 운명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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