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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공판에서 드러난 모태펀드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에 대한 구체적 정황

건전애국영화는 어떻게 지원되었나

<씨네21>은 정의당 김종대(비례·국방위) 의원실과 함께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10개월 동안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모태펀드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를 취재, 보도해오고 있다. 지난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소장을 단독 입수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범행’ 중에서 ‘모태펀드 운용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식회사 한국벤처투자의 임원 교체를 통한 대책을 강구’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지난 9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서 박근혜 정권이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 임원 교체 방안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논의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이 모태펀드를 운영하는 한국벤처투자 임원 교체 방안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논의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9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실에서 발견된 2013~15년 ‘대수비’(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및 ‘실수비’ 회의 자료가 제시됐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의 증언과 검찰의 질의에 따르면, “한국벤처투자가 펀드 운용사들을 실질적으로 선정하고 관리하는 기관이지만, (좌)편향적 투자 관행에 대한 개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상황”이니 ‘민간단체보조금 TF’가 “한국벤처투자의 임원진을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로 대폭 교체할 것을 건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모태펀드 보고서를 작성한 주체, 공유 대상, 보고서 내용에 있어서 모철민 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과 김소영 비서관의 진술이 엇갈렸다. 검찰이 “모태펀드 관리대책 강구’는 민간단체보조금 TF가 만든 건가”라고 묻자 김소영 비서관이 “저희(청와대 문화체육비서실)가 올린 서면보고 내용과 조금 다르다”라고 대답했고, 이에 대해 검찰이 “어제(9월 21일) 모철민 수석은 (청와대 문화체육비서실 서면보고와 ‘모태펀드 관리대책 강구’의 내용이) 동일하다고 진술했다”고 되묻자 김소영은 “저와 모 수석의 기억이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검찰이 “당시 증인이 올려 보낸 모태펀드 보고서를 정무수석실에도 준 기억이 있나”라고 묻자 김소영은 “(모철민) 수석이 지시하지 않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고, 검찰은 “추진계획으로 ‘창투사(창업투자회사)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벤처투자의 임원진을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로 대폭 교체 건의’ 이렇게 적혀져 있는데”라고 얘기하자 김소영은 “저희 서면보고에는 없었던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에 검찰이 “모철민은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들었다던데”라고 되묻자 김소영은 “수석의 기억과 제 기억이 다르다”고 재차 대답했다. 김소영 비서관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문건의 ‘모태펀드 관리대책 강구’ 부분은 청와대 문화체육비서실에서 작성해 올린 문건이라기보다는 그 윗선에서 기획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날 재판 심리와 대수비 및 실수비 회의 자료 그리고 박근혜·김기춘의 공소장을 종합해보면 모태펀드 관리 대책 강구의 시작은 2013년 8월 21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해 8월 5일 임명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실수비에서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과제다’라는 내용의 발언을 한다.

우파는 배고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청구서에 따르면 이후에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수차례에 걸쳐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문화계 권력을 좌파가 잡고 있다”라고 말하며, “정부에 비판적 활동을 한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실태를 전수조사하라”고 지시한다. 나아가, “좌파에 대한 지원은 많은데 우파에 대한 지원은 너무 없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우파는 배고프다, 잘해보라”며 친정부적 단체를 특별 관리할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지시에 따라 2014년 4월 4일부터 5월 하순까지 당시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과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 등은 ‘민간단체보조금 TF’를 운영하면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제출한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보고서를 검토한 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23일, 조강래 전 IBK투자증권 대표가 한국벤처투자 대표로 선임된다. 다음해인 2015년 1월 12일에는 상근 전문위원이 신설돼 신상한 전 전문위원이 합류한다. 전문위원은 원래 없던 자리다. 한국벤처투자는 <씨네21>과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이 모태펀드 문제를 취재하기 시작하자 올해 1월 11일부로 계약을 해지하고 상근전문위원 직위를 없앴다. <씨네21>은 지난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소장을 단독 입수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범행’ 중에서 ‘모태펀드 운용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식회사 한국벤처투자의 임원 교체를 통한 대책을 강구’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친노(親盧) 계열 대기업(CJ·롯데)이 문화·영화 분야 모태펀드의 운용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정부자금을 투입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독립성 보장을 이유로 이를 용인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김소영 비서관의 증언에 따르면, 문체부가 ‘건전애국영화’를 지원하기 위해 추가 예산 50억원을 확보했다는 사실이 이날 재판에서 함께 밝혀졌다. 2014년 8월 25일 열린 대수비에서 “연내 건전애국영화에 대해 50억원을 지원(하라는 논의가) 있었는데 2015년 1월 28일에도 (같은 내용의) 지시가 또 내려”왔고, 김소영 비서관은 “2014~15년 두 차례 (윗선에) 보고드린 기억이 있다”고 증언했다.

가족영화제작지원 사업의 실체

박근혜 정부는 <변호인>(감독 양우석, 2013) 이후 산업 논리를 ‘직접 예산 지원’으로 돌파하려고 했고, <변호인>에 대응하는 건전애국영화로 <국제시장>을 꼽았다. 2014년 12월 28일 진행된 실수비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제시장>의 투자자를 모으기 힘들었다고 하는 반면, <변호인>은 투자를 받았다”며 “두 영화의 사례를 비교하면 정부 투자 지원이 문제가 많으니 제도를 정비하고 앞으로 건전애국영화가 널리 상영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측면에서 대응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하고, 교문·경제수석이 김기춘의 지시를 확인했다. 같은 날, 김상률 교문수석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게 “건전애국영화 지원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김종덕 장관은 자신의 수첩에 메모했다. 이 지시 내용은 김상률 수석을 통해 김소영 비서관에게까지 전달됐다.

그렇게 청와대에서 내려온 50억원 규모의 건전애국영화 지원 사업이 바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가족영화제작지원사업이다. 가족영화제작지원사업은 ‘메인 투자사’를 구하지 못해 고사되는 우파영화에 박근혜 정부가 내린 동아줄이었다. 영진위의 직접 지원금을 주요 투자금 삼아 한국벤처투자가 운영하는 영화·문화 계정의 모태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경로가 만들어진 셈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교문수석뿐만 아니라 경제수석에게도 건전애국영화를 지원하라고 지시한 것도 “모태펀드의 운용 주체가 한국벤처투자인 까닭에 문체부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중소기업비서관실을 담당하고 있는 경제수석에게 직접 모태펀드를 관리하라는 뜻”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게 특검 주장인데, 김소영은 “가족영화제작지원사업 예산은 따로 있었다고 이해했다”고 증언했다.

한 영진위 관계자는 “당시 50억원 예산이 갑작스럽게 편성된 것을 두고 윗선에서 만들어져 내려온 사업이라는 얘기가 많았다”라며 “처음에는 가족영화제작지원사업에만 50억원이 책정되었다가 영진위 내부에서 한 사업에 이렇게 많은 금액을 투입하면 이상하게 보일 거라는 의견이 나와 예술영화지원사업과 함께 50억원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씨네21>은 지난 1월 모태펀드 블랙리스트 기사(<씨네21> 1090호 특집 기사 ‘누가 모태펀드로 정치하는가’ 기사 참조.-편집자)를 통해 가족영화제작지원사업에 최초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한국벤처투자의 임원을 교체해 돈줄(모태펀드)를 쥐려고 했고, 가족영화제작지원사업이 어떤 배경에서 조성됐는지 구체적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윗선에서 기획돼 내려온 지시들을 누가 실행했는지가 앞으로 밝혀져야 할 과제로 남았다. 김종대 의원은 “2~3년 전만 해도 이런 얘기를 하면 음모론이라고 치부됐다. 그러나 불과 1년 사이에 합리적 의심의 단계를 지나 모든 게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라며 “그렇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적폐 청산에 대해 정치적 보복을 말하지만 우리 사회가 보다 투명해지고 신뢰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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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김성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