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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강윤성 감독 - 데뷔 감독 맞아? 17년 만에 첫 영화를 만들기까지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7-11-29

“올해 최고의 상업영화다.” 연말을 앞두고 많은 영화인들 입에서 <범죄도시>가 오르내리고 있다. 이 영화는 11월 22일 현재까지 약 68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얼마 전에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 영화는 강윤성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그의 나이 47살. 30살부터 감독 데뷔를 준비했다니 <범죄도시>를 내놓기까지 무려 17년이 걸린 셈이다. 제작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강윤성 감독을 만나 길고 긴 데뷔기를 들었다.

1998년 미국에서 연출한 16mm 단편영화 <네가티브 이미지>. 여주인공이 맥주병에 맞아서 피를 흘리는 장면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눈주름을 보고 영화 몇편 찍은 중견감독인 줄 알았다. “처음 만났을 때 입봉 감독처럼 안 보였다. (웃음)”는 배우 윤계상의 귀띔이 무슨 뜻으로 한 얘기인지 알 듯하다. 영화 <범죄도시>가 약 680만 관객(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동원하며 막판 스퍼트를 내던 지난 11월 20일, 강윤성 감독을 만나자마자 런던한국영화제를 다녀온 근황부터 들었다. “영화가 극장에 한창 걸려 있을 때 영화제에 초청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들 하더라. 런던에 가서 무대 인사를 하니 글로벌해진 느낌이 들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는 자신의 데뷔작을 들고 런던을 찾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쯤에도 그는 유럽에 있었다. 3년 넘게 준비하던 <범죄도시>가 도저히 투자받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더이상 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아내와 함께 스페인으로 떠났다. 자신 대신 생계를 책임지며 가장 노릇을 해온 아내 또한 5년 동안 7.5평 남짓한 가게에서 해오던 옷 장사를 싹 다 정리했다. 대책 없이 한국을 떠난 부부는 마드리드, 바야돌리드,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머리를 식혔다. “영화도 장사도 그만두면 뭘 먹고살 생각이었냐고? 스페인 바야돌리드에 사는 작은이모가 올리브 가게를 운영하시는데 그곳 올리브가 참 맛있더라. 그걸 수입해 서울에서 올리브 장사나 할까 싶었다.” 제작자인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로부터 “투자를 받았으니 서울에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올리브를 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영화가 엎어진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까닭”에 투자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기대보다 긴가민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촬영 시작 2주 전에 고사를 지내면서 그제야 “진짜 영화를 만드는구나” 하고 실감이 났단다.

<마음이…>에 제작 지원으로 참여해 어린 유승호와 함께 찍은 사진.

감독의 탄생

지난 10월 3일 개봉한 <범죄도시>는 11월 22일 현재까지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의 1218만명, <공조>(감독 김성훈)의 781만명에 이어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세 번째로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티켓 파워가 센 배우 하나 없이 추석이라는 성수기에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한 <남한산성>을 상대로 거둔 성적이라 더욱 놀라웠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이 바로 올해로 47살(1971년생), 늦깎이 신예 강윤성 감독이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17년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스스로 재능이 없음을 한탄하거나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판단에 이르러 진로를 바꿨을 법도 한데, 강윤성 감독은 머릿속에 오로지 영화만 생각하며 오뚝이처럼 버텨왔다. 어린 시절 영화를 좋아한 어머니를 따라 <주말의 명화>를 즐겨 본 그는 고3 때 TV에서 배우 윤석화가 나온 걸 보고 연예계를 동경하게 됐다. 이공계에 종사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아 경희대 물리학과에 진학했지만 그의 관심은 학업보다는 영화 동아리 활동에 있었다. 취미로 영화를 좋아하다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본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1992)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이야기도 스타일도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가령, 총을 쏘기 전에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대화를 나눴던 보통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그냥 총을 쏘더라. 정말 리얼했다.” 이 영화를 보고 “직접 글을 쓰는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고, 대학교 4학년 때인 1996년, 첫 16mm 단편영화 <찰리 브라운>을 만들었다(이 영화를 프리미어 편집 프로그램으로 편집했는데, 편집 과정을 바탕으로 책 <컴퓨터 영상작업>(사이버 출판사 펴냄, 1997)도 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예술아카데미대학교(AAU)에 진학했다.

미국 유학 생활은 영화에 매진한 시간이었다. 한달 반 안에 장편 시나리오 한편을 써야 하는 수업은 만만치 않았던 만큼 큰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교수님이 빡빡한 수업 일정으로 몰아치시니까 영어를 잘 못하는데도 200~300단어만으로 확 써지더라. 아는 단어로만 쓴 뒤 문법과 단어를 따로 교정받아 제출했다. 그렇게 수업을 듣고 나니 다음 시나리오도 두달 안에 쓸 수 있겠더라.” 당시 여자를 스토커하는 남자를 그린 단편 스릴러물 <네가티브 이미지>(1998)를 연출했고, 이 영화는 인디포럼과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첫 상업영화 데뷔작 <범죄도시> 현장에서.

운이 없었다는 말로도 부족한 시간들

재능 있는 신예로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영화감독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미국에서 ‘4enter films’(For your entertainment라는 뜻이라고 한다)라는 이름의 프로덕션을 설립해 쓴 장편 시나리오 <푸코의 단편영화>가 첫 실패였다. 한국의 모 투자사가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이며 4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해 강윤성 감독은 프로듀서, 촬영감독과 함께 영화의 배경인 멕시코 로사리토에 가서 헌팅, 숙소 예약까지 하며 촬영을 준비했으나 결국 투자를 받지 못했다. “나중에 투자사 회장님이 구속된 뉴스가 나왔다. (웃음)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보니 투자자가 돈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더라.” 그 일을 겪은 뒤 쓴 장편 시나리오 <뫼비우스> 또한 한국의 한 제작사의 관심을 받았고, 학업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에 들어와 1년 동안 촬영을 준비했지만 투자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영화가 엎어졌다. 그는 현재 아내인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홍대 근처 바에서 데킬라 스무잔을 시켜놓고 일곱잔째를 마시다가 제작자로부터 ‘영화가 엎어졌다’는 연락을 받고 엉엉 울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내게 ‘17년 뒤에 데뷔를 하게 될 거야’라고 말해주면 절대 영화를 안 했을 것이다. (웃음) 17년 동안 나도 아내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눈앞에 있던 희망 덕분이었다. 다음달이면 배우가 결정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다다음달이면 투자가 들어올 거라는 희망 등등.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는데 이루어지지 않더라. 그렇게 버티기를 몇년째 반복하다보니 연말마다 아내가 ‘영화를 계속할 거야? 말 거야?’라고 물었고, 나는 ‘내년 1월에 뭐가 결정이 되는데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말만 반복하며 설득해야 했다.”

책상 앞에 앉아 시나리오만 쓰던 그에게 촬영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는 프로듀서로부터 ‘김성수 감독의 <영어완전정복>(2003)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연출부를 구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곧바로 남양주종합촬영소로 달려갔다. “김성수 감독님이 ‘얘, 영어 테스트 해봐’라고 하셔서 영화에 출연했던 안젤라 켈리와 간단한 프리토킹을 했고, 다행스럽게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아 현장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가까스로 합류할 수 있었다. 2박3일 동안 세트 촬영한 뒤 집에 돌아가 짐을 싸서 다시 현장에 합류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김성수 감독은 당시 강윤성 감독을 두고 “연기를 좋아했는지 단역을 하겠다고 말할 만큼 굉장히 의욕이 넘치고 적극적이었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김성수 감독은 “내 연출부 출신 중에서 강윤성 감독처럼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런어웨이>(1995) 연출부였던 최낙용(현 백두대간 부사장)도 나이가 많았었고, <태양은 없다>(1998) 스크립터였던 추창민 감독은 사우디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친구였다. (웃음)”며 “그들은 인생의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라 사회생활을 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영어완전정복>이 끝난 뒤 강윤성 감독이 빨리 데뷔할 기회가 있어 ‘열심히 잘해보라’고 격려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영화도 엎어졌다. 끝까지 버텨 데뷔하는 걸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성수 감독의 연출부 시기는 강윤성 감독에게 “교본을 얻은 듯한 경험”이자 “앞으로 영화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명확해진 시기”였다.

<영어완전정복>이 끝나자마자 결혼한 그는 충무로와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시나리오를 계속 썼다. 2005년 <마음이…>의 감독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제작지원으로 현장에 참여했다. 2007년 썼던 시나리오 <손님>은 토일렛픽쳐스와 <씨네21>이 공동주최한 시나리오 공모전 ‘올댓호러’의 트리트먼트 부문에서 아이디어상을 수상했지만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6년 12월 은퇴 공연을 한 신중현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신중현의 라스트 콘서트>(2007)를 연출해 제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업만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기가 벅찬 까닭에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 업체, 대학교, 기업, 식당 등의 각종 홍보 영상과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100% 먹고살기 위해 일했다. 단가가 100만원짜리든 50만원짜리든 틀에 박히지 않은 스토리와 특별한 아이디어를 시도하려고 했다.”

첫 상업영화 데뷔작 <범죄도시> 현장에서.

앞으로 더 보여줄 게 많다

친구이자 데뷔작의 주연배우가 될 배우 마동석을 만난 것도 그즈음이다. 마동석이 출연한 <천군>(감독 민준기, 2005)의 촬영이 끝날 때쯤 동네 형이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라고 마동석을 소개해준 것이다. “동네 형의 친구라고 하기에 1년 동안 ‘동석이 형’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말을 놓았다. (웃음)” “사람이 좋아 보였고, 영화 얘기를 하면 즐거워해서 친구로서 믿음이 갔다”는 마동석의 회상대로 강윤성 감독과 마동석, 둘은 금세 척하면 척하는 사이가 되었다. 지난 2012년, 마동석이 그에게 “<투캅스> 같은 영화를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다음해에 강윤성 감독과 마동석은 영화의 실존 모델인 형사를 만나 ‘왕건이파 소탕작전’ (2004년 서울남부경찰서 강력반 형사가 후배 경찰 2명을 데리고 가리봉부터 강남까지 돌며 하룻밤 사이에 조직폭력배 14명을 검거했던 사건.-편집자)을 들으면서 <범죄도시>가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17년간 갈고닦은 내공 덕분일까. 현장에서 강윤성 감독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품평은 한마디로 “준비된 감독”이다. “영리하게 필요한 걸 뽑아내고, 쓸데없는 것에 힘을 빼지 않는다.”(마동석) “모든 걸 직접 확인해 컨펌하는 자세가 정직하고 성실해 보였다. 현장에서 한번도 흔들리지 않아 깜짝 놀랐다.”(윤계상) “커뮤니케이션이 잘된다. 가령, 시나리오 회의 때 나온 지적들이 다음날 모두 반영됐다.”(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 “스탭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다. 영화판에서 감독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순하고, 옆집 아저씨 같다.”(주성림 촬영감독) “디렉션이 정확해 신인감독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김홍백 홍필름 대표) 이들 모두 “아재 개그를 남발하고, 재미도 없다”는 공통된 단점을 언급한 것 말고는 인간적인 흠이 없다는 사실이 재미없다고 느껴지면서도, 그가 오랫동안 얼마나 자기 관리를 철저히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2005)가 끝나자마자 강윤성 감독을 처음 만나 함께 작품을 준비한 뒤로 계속 지켜봐온 장원석 대표는 <범죄도시> 촬영 전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으니 즐기시라. 즐길 때 최고의 작품이 나온다”고 조언했다.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칙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장첸(윤계상)과 이수파 두목 장이수(박지환)가 오락실에서 만나 신경전을 벌이는 시퀀스를 찍을 때다. 촬영 전, 리허설을 하다가 박지환이 원래 동선과 달리 “장첸 앞에 앉아서 노려보고 싶다”는 의견을 내자 윤계상이 “그러면 나도 장이수쪽으로 더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다. 강윤성 감독이 애초의 콘티를 뒤집어 두 배우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영화 속 장첸과 장이수의 긴장감 넘치는 신경전이 빛을 볼 수 있었다. 옆에서 지켜본 주성림 촬영감독은 “즉석에서 동선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데 배우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더 멋진 장면이 연출되자 소름이 끼쳤다”고 회상했다.

오래 준비한 만큼 꺼낼 카드도 많다. 데뷔 전과 차이라면 “항상 썼던 카드뿐만 아니라 들어오는 카드도 많다”는 사실이다. 현재 “여러 범위에서 차기작을 고려하고 있”다. <범죄도시> 속편 제작에 대해서도 그는 “아직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을 아꼈다. “긍정적이고 추진력이 있어 앞으로 더 잘될 것이다”라는 스승 김성수 감독의 바람대로 늦게 데뷔한 만큼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60살이 넘어도 <콜래트럴>(2004) 같은 액션영화를 만드는 마이클 만 감독처럼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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