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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요나스 메카스: 찰나, 힐긋, 돌아보다>전

세계의 기록과 아메리칸 아방가르드 영화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를 개척한 요나스 메카스 감독의 전시, <요나스 메카스: 찰나, 힐긋, 돌아보다>가 11월 8일부터 2018년 3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14편의 작품을 통해 요나스 메카스의 예술 세계를 조망하는 아시아 최초 전시로, 11월 22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MFU영화관에서 요나스 메카스 회고전도 진행된다. 48편의 장·단편 영화를 상영해 요나스 메카스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에 영화미디어학자 김지훈 중앙대 교수가 요나스 메카스의 세계를 안내할 짧은 가이드를 보내왔다. 여기 요나스 메카스가 남긴 영화예술의 유산과 영화에 대한 비전을 전한다.

1922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요나스 메카스는 한 인터뷰에서 “6살 때 시의 여신이 내 몸에 들어온 이후로 시인이 되었다”고 말했을 만큼 일찍부터 시와 글쓰기에 빠져든 작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청년 메카스의 삶을 결정적으로 전환시켰고 그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피난을 위해 탑승한 기차가 독일에서 멈추는 바람에 동생 아돌파스 메카스와 함께 억류된 그는 함부르크 인근의 난민수용소에서 8개월 동안 노동에 시달리다가 동생과 함께 탈출한 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네덜란드 국경 농장에서 숨어 지냈다. 종전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거주하던 그는 1949년 10월 동생과 미국행 배에 탑승하여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정착한다. 글쓰기를 꿈꾸면서도 임시 노동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메카스는 뉴욕에 도착한 2개월 후 처음으로 볼렉스 16mm 카메라를 구입하여 자신의 삶과 주변의 세계를 기록해나가기 시작한다. 이처럼 고향을 떠나 부유하는 삶의 여정에서 체험한 고독, 향수,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이감을 바탕으로 메카스는 자신을 이민자 또는 장소를 잃은 사람(Displaced Person, DP)으로 규정했다. DP로서의 정체성은 그의 주요 영화 작품에서 여러 모습으로 반복됐다. 동생과 함께 시나리오를 쓰면서 극영화를 제작하기를 꿈꾸었던 메카스는 1962년 첫 장편영화인 <건즈 오브 더 트리즈>를 완성한 이후, 제도권 영화와는 다른 영화 제작 양식과 영화 형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 그는 자신이 카메라로 짧은 순간 지속적으로 포착하고 축적한 가족, 친구, 자연, 사물, 풍경의 기록이 영화의 재료이자 형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볼렉스를 든 사나이: 영화일기, 일기영화

메카스의 영화적 성취에 대한 가장 널리 알려진 평가는 그가 일기영화(diary film)의 형식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성숙시켰다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스스로의 낭만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생활을 기록한 일기 <월든>(1854)에 영감을 받은 메카스가 뉴욕에 거주하고 여행하면서 1964년부터 기록한 촬영본을 재구성한 <월든(일기, 노트, 스케치)>(1969)은 장편 일기영화의 모범적 사례가 되었다. 이후 메카스는 뉴욕 생활 초창기의 기록과 27년 만의 리투아니아 여행에서 다시 대면한 가족과 고향 풍경의 기록, 돌아오는 길의 유럽에서의 체류 기록을 모은 <리투아니아 여행의 추억>(1971), 1949년부터 1963년까지 뉴욕에서 리투아니아 이민자 공동체의 삶과 메카스 자신의 삶, 뉴욕 예술가 집단과의 최초의 만남 과정을 기록한 촬영본을 인류학적으로 탐구한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1976), 딸 우나의 성장 과정과 그녀와 함께한 리투아니아 여행을 기록한 일상적 장면에서 낙원의 의미를 성찰한 <천국은 아직 여기에(세살을 맞이한 우나)>(1979), 1969년에서 1985년 사이에 촬영된 스케치를 다시 모은 <그는 삶의 시간들을 세며 사막에 서 있다>(1985)를 만들었다. 심지어 노년의 메카스는 20세기의 끝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으로 이어지는 전환기에 1970년부터 1999년까지 카메라에 담은 촬영본을 재배열하고 영화 제작 과정과 삶의 의미를 성찰한 5시간여의 대작 <우연히 나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2000)로 자신의 일기영화 형식을 집대성했다. 이러한 대표작 외에도 메카스가 뉴욕 생활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 유럽 곳곳의 여행 과정에서 만나고 교류한 앤디 워홀, 조지 머추너스, 존 레넌 등의 기록은 예술가와 예술가 공동체에 대한 생생하고도 입체적인 초상으로 남아 있다.

<리투아니아 여행의 추억>에 대한 강의록에서 메카스는 일기영화라는 형식에 도달한 과정이 실천을 통한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음을 언급한다. 처음에 자신은 영화화된 일기와 글로서의 일기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카메라를 통한 기록 작업을 지속하며 촬영이 곧 성찰 과정이고 카메라에 기록되는 현실이 기록 당시 자신의 느낌과 지각이 투영된 주관적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메카스의 일기영화에 속하는 주요 작품들은 글쓰기로서의 일기와 영화 작업으로서의 일기가 공유하는 여러 유사점을 표현하고 변주한다. 글쓰기로서의 일기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들은 공적인 사건과 외부 세계의 변화를 체험하는 자아와 이러한 체험을 내면으로 성찰하는 자아 사이의 긴장을 전개하고, 메카스 자신의 삶 또는 여정에 따라 여러 시간과 장소를 포함하는 탈중심적이고 열린 텍스트가 된다. 글쓰기로서의 일기에 표현된 자아가 그렇듯 메카스의 영화가 표현하는 자아는 일관적이지 않고 고독과 행복, 진지함과 자기 희화화(<월든(일기, 노트, 스케치)>)을 비롯한 몇몇 작품에서 관객은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거나 버튼식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메카스를 볼 수 있다)를 넘나드는 유동성을 체현한다.

물론 메카스가 일기영화라는 형식을 최초로 창안한 것은 아니다. 사물과 사람들, 일상적 삶의 디테일을 포착하고 축적하면서 자아를 표현하고 발견해나가는 영화 실천 양식으로서의 일기영화는 마리 멘켄, 스탠 브래키지, 제롬 힐 등의 계보에 포함된다. 메카스의 주요 작품에 서명처럼 나타나는 촬영자의 신체적 지각을 연장한 핸드헬드 기법, 스타카토처럼 튀는 효과를 자아내는 단일 프레임 촬영, 카메라의 오작동까지도 포함하는 초점과 노출의 자유분방한 조절 또한 멘켄과 브래키지, 그레고리 마르코폴로스 등의 작업을 관람하고 평가하면서 체득한 것이었다. 특히 멘켄과 브래키지의 영향력이 컸는데, 메카스의 카메라는 이들의 실천을 계승하여 환영적 사실주의의 요구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물에 섬세한 감각적 리듬을 부여하는 서정시적, 인상주의적 접근을 추구해나갔다. “영화는 단일 프레임들이 모인 것이다. 영화는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있다”라는 <월든(일기, 노트, 스케치)> 속 내레이션은 겉으로는 정신없어 보이는 메카스의 단일 프레임 촬영에 담긴 의도를 잘 나타낸다. 짧은 프레임들 속에서도 분주한 세계의 역동적인 인상을 담아내는 ‘흘끗 봄’(glimpse)은 DP와 더불어 메카스를 규정하는 또 다른 언어가 되고, 프레임들 사이의 공백은 기계적 매체로서의 영화가 개인의 느낌과 결합하여 포착하는 세계의 변화무쌍한 리듬이 된다.

메카스의 작업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통념은 그가 편집보다 촬영에 많은 강조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주요 작품과 여러 인터뷰를 살펴보면 피사체의 촬영 과정을 그에 대한 성찰 과정과 동일시하거나, 스스로를 감독이 아닌 촬영자(filmer)로 규정하거나, 촬영 자체가 편집 과정이며 후반작업으로서의 편집은 최소화한다는 등의 언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P. 애덤스 시트니에 따르면 <월든(일기, 노트, 스케치)>의 제작 당시 메카스는 자신이 관여한 다방면의 활동으로 인해 촬영 이후에도 오랫동안 촬영본을 손대지 않았으며 밤새워 한정된 시간 안에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언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집에 대한 메카스 나름의 시각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메카스는 제도적 영화 제작에서의 편집, 즉 촬영본을 미리 계획된 대본에 따라 이어붙이는 편집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두 종류의 편집을 자신의 일기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첫 번째는 촬영 과정에서 메카스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편집, 즉 무엇을 얼마 동안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직관적으로 결정하는 편집으로 이는 기억의 작용을 포함한다. 그래서 메카스의 일기영화를 여러 편 관람하다 보면 아이, 꽃, 나무, 공원과 같은 메카스가 선호했던 피사체의 반복을 발견하거나 특정한 피사체(예를 들면 메카스의 어머니)에서 카메라가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머문다는 인상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영화학자 데이비드 제임스의 구분을 따른다면 메카스의 촬영본 그 자체인 영화 일기(film diary)를 일정한 구조를 갖춘 일기영화로 옮길 때 이루어지는 편집이다. 이러한 편집 과정에서도 기억은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 글쓰기로서의 일기와 달리 영화일기에서는 성찰과 기록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메카스가 체험하는 당시의 현재에 느낀 인상이 반영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가 편집기 앞에서 영화일기에 해당되는 촬영본을 다시 살펴볼 때, 그때의 느낌은 망각될 수도 있다. 때로는 자신이 망각했던 과거의 단상과 체험이 편집 당시에 환기될 수도 있다. 비록 존 케이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우연의 원리를 이러한 편집에 활용하긴 했지만 일기영화로 완성된 메카스의 작품에는 기억과 망각, 현재와 과거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이중노출을 포함시켜 시간적으로 서로 다른 두 기록에 동일한 인상과 느낌을 부여하고, 인터타이틀과 내레이션은 촬영본을 편집기에서 다시 볼 때 느끼는 단상을 포함함으로써 기록의 순간과 편집의 순간 사이의 환원 불가능한 거리를 표시했다.

촬영과 편집 사이의 긴장, 즉 과거와 현재 사이의 협상이라는 양가적인 측면은 메카스의 일기영화들이 공유하는 또 다른 양가성의 층위들로 이어진다. 우선 예술과 삶 사이의 관계를 놓고 선회하는 양가성을 떠올릴 수 있다. 일기영화는 낭만주의를 거쳐 모더니즘에도 유지되는 개인적이고 초월적인 예술가의 정체성을 체화한다. 또한 일기영화는 예술을 위한 예술 또는 예술과 삶의 분리라는 관념으로 지탱되는 모더니즘의 고급예술 지향성에 대항하여 예술과 삶을 다시 접목시키고 미학적 자유를 추구하는 충동을 실현한다. 문명과 자연, 이주와 일시적 거주, 고향과 새로운 세계 사이의 양가성 또한 메카스의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출몰한다. 이민 이전의 리투아니아에서의 삶으로 상징되는 자연적인 삶에 대한 그리움은 <리투아니아 여행의 추억>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 등에서 지속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더이상 그러한 자연적 삶을 응축한 원초적 낙원은 존재하지 않고, 리투아니아로의 여행을 기록한 작품들에서도 그는 고향의 모습이 과거와 같지 않음을 발견한다. DP로서의 그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산실인 뉴욕에서, 또는 그가 여행한 다른 도시와 장소에서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고독과 향수를 절감하며 다른 한편으로 낙원의 상실을 대체하는 삶의 에너지와 일상의 행복을 찬미한다. 결국 메카스의 일기영화는 풍요로운 세계와의 원초적 접촉으로부터 단절되어 불확실한 세계에 던져진 자아가 그 세계의 그림을 그리고 지워나가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탐구했다는 점에서 20세기 문학은 물론 영화가 구현한 현대인의 철학적 조건과도 공명한다.

아방가르드 영화의 대부 또는 팔방미인의 고독

메카스가 아방가르드 영화의 거장으로 평가받아온 이유는 일기영화로 분류되는 자신의 작업을 넘어서는 팔방미인 활동가로서의 면모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의 메카스가 있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1952년 창간)와 <카이에 뒤 시네마>(1951년 창간)에 비교될 수 있는 잡지를 원했던 그는 1955년 <필름컬처>를 창간했고 앤드루 새리스와 피터 보그다노비치, 시트니와 같은 평론가의 토양이 되었다. 또한 1958년부터 그는 <빌리지 보이스>에 ‘무비 저널’(Movie Journal)이라는 고정 칼럼을 기고하면서 영화관에서의 실험영화는 물론 1960년대부터 제도적 영화의 한계를 벗어나 발달한 확장영화(expanded cinema)의 실험을 꾸준히 관찰하고 지지했다. 1964년 6월 25일의 칼럼 하나만 인용해도 그의 일기영화가 이러한 비평적 실천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60년대의 시인들은 재현적인 이미지 자체를 포기했다. 이제 카메라는 사물과 사람들의 짧은 인상, 단편을 포착하고 사물과 행동의 찰나적인 인상을 액션 페인팅의 방식으로 창조한다. 운동과 빛의 새로운 정신적 현실이 스크린에서 창조된다.” 그리고 활동가로서의 메카스가 있다. 그는 켄 제이콥스, 셜리 클라크, 잭 스미스, 앤디 워홀 등 22명의 감독 및 작가들과 함께 ‘뉴 아메리칸 시네마 그룹’을 창립했다. 1961년 공표한 이 그룹의 첫 번째 선언문은 당대의 주류 영화를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미학적으로 낡았으며 주제상 피상적이고 기질적으로 따분하다”라고 단정하며, 회화와 조각, 문학 등 동시대 미국 인접 예술에 불어닥친 새로움을 향한 요구에 영화가 화답할 것을 촉구했다. 동시에 이 선언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주요 목표를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1) 제작자, 배급자, 투자자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적 표현’으로서의 영화를 지향하고, 2) 검열을 거부하며, 3) 자유로운 영화산업의 근간이 될 새로운 투자 방식을 추구하고, 4) 거대 자본의 신화를 배격하며, 5) 당대의 배급 및 상영 정책에 맞서고, 6) 새로운 영화 고유의 조합 기반 배급 기관을 설립하며, 7) 그 나름의 영화제를 가진다.

활동가로서의 메카스는 이 목표를 수행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개인적 표현으로서의 영화라는 지향점을 자신의 작업은 물론 아방가르드 영화의 전통과 현재를 소환하고 평가하는 다수의 글에서도 추구했다. “영화의 반(反)-100년 선언”(1966)에서 그는 제르멘느 뒬락과 바이킹 에겔링 등 1세대 유럽 아방가르드 영화감독은 물론 미국 실험영화 감독 수십명을 열거하며 이렇게 썼다. “이들은 볼렉스와 소형 8mm, 슈퍼 8mm 카메라를 들고 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인간 정신의 복잡한 모험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화는 돈벌이가 되지 않고 소위 유용하다는 것과 무관하다.” 메카스는 잭 스미스의 전설적인 캠프 실험영화 <불타는 피조물들>(1963)을 사전 심의 없이 상영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기도 했다. 아울러 유럽에서 미국 실험영화를 소개하고 두 대륙간 감독들의 유대를 도모하기 위해 여러 국가에서 상영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칸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주요 영화제의 실험영화에 대한 무지와 관료제적 한계를 비판하면서 감독 스스로가 상영영화를 결정하는 영화제, 자본과 길이, 주제에 따라 작품을 구분하지 않는 영화제의 모델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러한 제안은 1962년 공식적으로 설립되어 지금까지도 실험영화의 수집과 배급을 담당하는 필름메이커스 조합, 그리고 1964년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와 현재를 정전화하고 상영하는 필름메이커스 시네마테크(1970년 이후 앤솔러지 필름 아카이브로 탈바꿈하여 현재까지 유지) 설립으로 실현되었다.

이러한 경력 덕택에 메카스는 열정적이고 일관적인 활동가로 인식된다. 하지만 실험영화 역사가 폴 아서에 따르면 메카스는 60년대 당시 제도권 영화와 문화에 대해 투사적으로 대항하는 활동가로서의 면모와 어떤 조직과 강령에도 온전히 귀속되지 않는 보헤미안적인 면모 모두를 보인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또한 메카스의 활동가로서의 면모 때문에 그의 비평을 선전적인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입체적인, 즉 보헤미안적이면서도 낯을 가리는 성향이 있었던 인물이 다른 한편으로 여러 조직을 주도하다보니 동료 감독 및 예술가들과의 갈등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스미스는 메카스가 자신의 <불타는 피조물들>을 반검열 캠페인과 실험영화 판촉을 위해 이용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러한 입체적 면모에 대한 평가는 향후 연구의 몫이겠지만 메카스의 일기영화에 투영된 자아가 탈중심적이고 다면적인 것만큼 활동가로서의 면모 또한 그러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일기는 계속된다: 디지털과 미술관

2000년대 이후 메카스의 영화일기는 계속되는 동시에 이주했다. 2004년 <그린포인트에서 온 편지>와 더불어 그는 볼렉스에서 비디오 카메라로 전환했다. 뿐만 아니라 2007년 그는 자신의 일상적 기록과 지인들의 기록, 카메라 앞에서의 고백을 1년 동안 매일매일 실행하면서 이를 인터넷에 업로드한 <365일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메카스 전시를 기획한 공동 큐레이터 프란체스코 어바노가 적절히 지적하듯, 이 프로젝트는 인터넷 문화의 보편화가 자아의 기록과 예술적 표현 사이의 경계를 붕괴시킨 오늘날의 상황을 일상적 촬영과 영화 제작을 동일시했던 메카스의 작업 방식이 이미 예고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그의 영화 일기 작업은 2000년대 이후 미술관으로도 활발히 이주해왔다. 이러한 현상은 메카스가 기록하고 축적하고 편집한 수많은 필름이 20세기 이주민의 문명과 예술에 대한 풍부한 초상이라는 인식, 그러기에 그의 작업이 동시대 미술에서 지배적인 경향으로 자리잡은 기록물로서의 미술이라는 관점에서 평가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95살인 지금, 메카스의 일기는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도 그의 일기영화를 오랫동안 규정한 매체와 플랫폼인 필름과 영화관을 넘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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