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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뱅상 말로사 -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는 이상한 영화다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18-02-05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뱅상 말로사와 송경원 기자가 영화평론과 영화잡지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다

위기라는 단어마저 이젠 무덤덤하게 느껴질 만큼 영화 저널리즘의 영토는 조금씩 꾸준히 좁아지고 있다. 수많은 잡지가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온 끝에 2017년 현재 한국의 영화주간지는 <씨네21> 홀로 남았다. 용케 생존했다고 스스로를 위안할 틈도 없이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해야 할 필요와 의무를 느낀다. 그건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2007년부터 영화비평 담당기자들을 해고하는 일이 잦아졌고 영화와 잡지의 천국이라는 프랑스 역시 미디어환경의 변화에 맞춰 변화 중이다. 사람은 어려울 때면 자신의 고향을 돌아보기 마련이라던가. 해마다 반복되어 이제는 위기조차 무뎌져가는 이 순간, 문득 영화비평과 잡지의 원류라고 해도 좋을 <카이에 뒤 시네마>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마침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뱅상 말로사가 특집기사 취재차 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만남을 청했다. 뱅상 말로사는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버틴 베테랑 평론가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역사를 기술한 책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비평의 길을 열다>를 보면 1988년 <르몽드>에 인수된 이후의 <카이에 뒤 시네마>를 두고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저자는 <카이에 뒤 시네마>마저 주류에 편승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카이에 뒤 시네마>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누군가에게는 미흡하고 누군가에는 지나치게 고고해 보일지 몰라도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반대로 영화의 영토를 넓힐 화두를 꾸준히 제시해왔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전투적 비평과 함께해온 뱅상 말로사의 눈을 빌려 한국영화의 오늘, 영화잡지의 내일을 모색해본다.

-이번에 특별한 인연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행복한 우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곡성>(2015) 블루레이에 들어갈 코멘터리 영상 녹화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칸국제영화제에서 <곡성>을 본 그날부터 너무나 좋아했다. 그런데 <카이에 뒤 시네마>의 다른 편집위원 3명 정도가 <곡성>을 좋아하지 않아서 프랑스에서 개봉했을 때 <카이에 뒤 시네마>에 평론이 나가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곡성>을 싫어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3명이나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편집장이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 완벽히 매료됐기 때문에 2016년에 <곡성>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 1위에 선정했다. 나중에 편집장이 <곡성>이 개봉된 지 8개월 후에 영화를 보고 “그 당시 <카이에 뒤 시네마>에 <곡성>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던 것은 내 실수”였다고 고백했을 때, 무척 기뻤다. (웃음) 지난해 9월 나홍진 감독을 만나고 싶었지만 상황이 맞지 않아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인조인간(<곡성> 블루레이 제작사)쪽에서 내게 코멘터리 제안을 해왔다. 아직 <카이에 뒤 시네마>에 <곡성>에 관한 글이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기회에 나홍진 감독과 인터뷰를 하려고 한다.

<곡성>

-개봉한 지 상당히 지났는데 <곡성>에 대한 기획특집 기사가 나가는 건가.

=아직 구체적으로 페이지가 잡힌 건 없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구성을 할 테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고 싶다. (웃음) 아마 한두달 안에는 글이 실릴 거다. 다만 나홍진 감독은 영화를 자주, 그리고 빨리 찍는 편이 아니고 아직 나홍진 감독에 대해서 깊이 다룬 글이 없기 때문에 되도록 중요하고 신중하게 다루려 한다. 나중에 두고두고 찾아볼 수 있는 나홍진 프로파일을 만들고 싶다. (웃음)

-오늘 <씨네21>과의 인터뷰 뒤에 나홍진 감독과 인터뷰를 한다고 들었다. 벌써부터 들뜬 게 느껴진다. 나홍진 감독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을 먼저 물어봐도 될까.

=나홍진 감독은 언제나 어두운 암흑의 에너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다. <추격자>(2007), <황해>(2010), <곡성>까지 일관되게 악에 매료되어 있다. 특히 <곡성>에서 그런 특성이 너무나도 강하게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점을 파헤치고 싶다. <곡성>은 ‘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탐구다. 악을 다룬 영화는 많다. 악이 가질 수 있는 육체성, 물질성에 대한 성찰이 묻어나는 영화가 있고 반대로 추상적인 아이디어나 장르적인 접근을 하는 영화도 있다. <곡성>은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다. 물질성에 관해서라면 좀비가 등장한다거나 부패되어가는 시체를 통해서 표현이 된다. 누가복음을 인용한 구절을 파고들어 악에 대한 성찰이 드러내는 지점도 있다. 어떤 통로로 접근해도 단순한 장르 이상이다. 마귀 들린 소녀를 통해 악의 내면성을 다루면서도 절대적 타자성으로 외지인인 일본인을 내세운다. 감히 말하건대 악에 대한 모든 것을 탐구하는 영화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다른 평론가들이 <곡성>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국내에서도 <곡성>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곡성>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그렇지 못한 이들의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나.

=대략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는 이상한 영화다. 감수성이 각자 다르듯 평가도 나뉘는 게 정상이다. 나는 판타스틱 장르나 호러영화를 좋아한다. <카이에 뒤 시네마>도 인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현재 취재기자가 8명이다.-편집자) 영화제 때 자기 감수성과 맞지 않는 영화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곡성>은 아마 당시 관람한 3명의 기자가 선호하는 영역의 영화가 아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곡성>이 매우 모호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퀀스가 굉장히 길고 계속해서 뭔가가 밝혀지는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비틀려 있다.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계속 연장시키기 때문에 대다수 장르 관객이 기대하는 대단원이나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상업영화 코드와 맞지 않는다. 미스터리가 계속해서 증가해 결국엔 뭔가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상태 속으로 점점 침잠해 들어간다. 나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에서 그런 식으로 에너지가 소진되어가는 과정을 사랑한다. 어떤 에너지가 분명하게 느껴지고, 그것이 끊임없이 분출되며, 끝내 고갈되어가는 과정. 그러니까 내러티브가 아닌 어떤 상태를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확실히 <곡성>은 장르적 클리셰를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완전히 어긋나 있다.

=아마 이 영화가 왜 끝이 안 나느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웃음)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아 찜찜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정반대로 말해 나는 그게 좋다. <곡성>은 악이 우리를 강타하는 영화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곽도원 배우의 얼굴을 페이드아웃시키는데 정말 졸음이 쏟아지는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에너지의 소진과 맞닿은 숏이라고 생각한다. 악에 두드려 맞고 완전 지쳐 잠드는 순간이다. 동시에 악의 실체나 가공할 만한 위력을 과시하는 숏도 있다. 대표적으로 황정민 배우의 굿판을 보면 과도하게 보이는 장식성이 드러나는데 사실은 이런 것들이 굉장히 한국적이지 않나. 전형적으로 에너지가 분출되는 장면이다. 한국의 샤머니즘을 처음 접하는 해외 관객은 일종의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이 긍정적일 때는 색다름, 부정적일 때는 이질감으로 해석될 것이다.

-국내 평단 일부에서 이 영화에 비판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에너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배우 황정민과 구니무라 준이 교차편집되는 굿판은 대단한 에너지로 넘쳐난다. 하지만 엔딩에 이르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트릭이었다고 선언하는 것 같아 관객마저 기만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이다.

=굿판 장면 자체는 마치 <록키>(1976) 같았다. 한 사람은 숲에서 의식을 진행하고 다른 한 사람은 굿을 준비하는데 그때 주고받는 숏의 연결이 마치 복싱처럼 현란하다. 그런 교차편집의 밀도가 나홍진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굿판은 나홍진 영화를 압축한 대표 장면이다. 그의 영화에는 항상 분노나 분출해야 할 무엇이 있다. 굿판의 경우 마치 그 숏들 각자 스스로가 용솟음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굿판이 끝난 이후를 보면 집에 아버지(곽도원)가 있고 거의 완전한 침묵이 흐른다. 이후 기대를 배신하는 완전한 전복이 이뤄진다. 나는 그것이 판타스틱영화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굿판은 영화의 절정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지만 그 이후는 고전 판타스틱의 느낌으로 돌아선다. 분출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류, 그러니까 부유하고 스며드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건 판타스틱이라는 장르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결합이다. 그 결과 악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악은 미끄러져서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굿판과 그 이후에 이어지는 대단원은 대치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굿판이 페이크 클라이맥스가 되었기에 후반의 모호함이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나는 인물 개개인이 악의 전달자 혹은 매개가 되어서 악이 순환하는 과정을 보여준 것으로 받아들였다.

-엔딩의 모호함이 도리어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보는 건가.

=그렇다. 마지막에 가면 선과 악의 대치나 어떤 에너지 사이의 경쟁, 긴장마저 무력화된다. 무당이나 무명인, 일본인, 마을 사람들이 가진 대립마저 모두 뒤섞이고 인물들은 단지 악의 전달자로서만 역할을 하게 된다. 엔딩에서 일본인이 마치 악의 화신처럼 변하는데 그것은 실제로 그랬다고 단정짓는 게 아니라 신부가 일본인을 악으로 보길 원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투영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곡성>을 보며 2000년대 <살인의 추억>(2003)을 필두로 해서 ‘위대한’(뱅상 말로사는 꼭 이 표현을 살려달라고 부탁했다.-편집자) 누아르-경찰영화들을 떠올렸다. <살인의 추억>도 가까이에 있지만 잡히지 않는 악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살인의 추억> 영화 초반부 시네마스코프로 넓게 보여주는 풍경은 이 영화가 단순한 경찰영화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탐구를 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곡성>에서도 그런 측면이 드러난다. 예를들면 무당이 처음 곡성에 진입하는 부감 장면은 탁월하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곡성>에서 좋아하는 장면은 일본인이 숲속에서 추격을 당하다가 낭떠러지 끝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장면이다. 서사적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악이라는 달아날 수 없는 것으로부터 느끼는 현기증. 악의 이미지로서 수렁 내지 낭떠러지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

<살인의 추억>

봉준호와 나홍진

-<곡성>을 <살인의 추억>과 연결시키는 관점이 흥미롭다. 솔직히 두 영화가 닮았다고는 생각도 못해봤다.

=<살인의 추억>을 비롯해서 2000년대 한국 경찰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주로 시골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시골 스릴러와 도시 스릴러가 다 나타나고 있다. <추격자>를 봐라. 악은 늘 가까이에 있고 산동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지만 끝내 그걸 찾지 못하고 헤맨다. 핵심은 바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노에 있다. 그런 감성은 <황해>나 <곡성>에서도 다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황해>는 더 고전적인 이야기의 틀 안에서 진행되면서도 에너지의 분출은 거의 광기에 가깝게 강도가 높았다. <추격자>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다 보니 틀에 갇혀 있어서 한정된 측면이 있었다면, <황해>는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서 완전히 에너지가 분출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돼지 뼈를 들고 싸우는 장면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야만성과 광기의 에너지가 넘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나홍진은 드디어 <곡성>에 도달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홍진의 최고작은 <곡성>이다. 악에 대한 성찰, 미장센이나 연출의 면에서도 진일보했고 장르적인 즐거움도 커졌다고 생각한다. <곡성>에는 판타스틱, 호러 장르에 서브 컬처가 다 녹아들어가 있다. 좀비나 악령 엑소시스트 같은 많은 장르적인 장면이 있어서 즐겁게 볼 수 있다. 공간을 그려 나갈 때의 나홍진의 시선과 디테일은 브라이언 드 팔마를 연상시킨다. 악이 밀집되어 있는 산속 공간을 그려나갈 땐 숨쉬기조차 힘들다. <곡성>에서 황정민의 굿판이나 <황해>의 김윤석의 뼈다귀 액션처럼, 나홍진 영화는 항상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 빠진 인물들을 묘사하는데 종국에는 관객마저 그런 상태로 몰고 간다.

-<살인의 추억>과 <곡성>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내 경우 나홍진 감독은 늘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것들을 보여주는데 왠지 낯설다. 반면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처럼 오래된 이야기를 하거나 심지어 <괴물>(2006)처럼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보여줄 때도 익숙한 느낌이다.

=봉준호 감독은 코미디로 시작했고 늘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가 많이 들어가 있다. <괴물>만 보더라도 아이러니와 풍자가 가득하다. <살인의 추억>의 경우 아예 한국 역사, 근대사의 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한국에 잘 알려진 사건과 원작을 가지고 하다보니 내부자의 시선에서 볼 때는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 한국인들은 기본적인 역사적 배경을 알고 영화를 보기 때문에 정치적인 측면이나 아이러니를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반면 나홍진 감독은 아이러니를 즐겨 구사하는 감독이 아니다.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지도 않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첫발을 떼는 것 같다. 두 영화가 겹치는 부분은 그저 경찰로 대변되는 권위에 대한 조롱 정도다. 나홍진 감독은 보다 더 자기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고, 정치적이나 사회적인 요소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매우 장르적인 접근을 한다. <곡성>만 해도 소녀에게 악령이 들릴 때 창고에서 소리가 나는 장면을 보면, 아는 사람들은 금세 <엑소시스트>(1973)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타자의 입장에서 보면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매우 한국적이다. 샤머니즘이나 믿음의 문제가 굉장히 한국적으로 느껴졌고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강하게 촬영됐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시골 풍경도 그렇다. <곡성>을 보면 마치 봉준호, 이창동, 양익준이 한 영화 안에서 다 이어지는 기분이 든다. <살인의 추억>에 있었던 암흑의 에너지가 보이고 나아가 <박하사탕>(1999)의 시대성, <똥파리>(2008)의 폭력도 느껴진다. 타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게 한국이라는 공간의 DNA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뚜렷한 감각을 안긴다. 바로 사람이 몸으로 직접 달려드는 느낌이다.

-예전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설명할 때 ‘Art du piksari’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번역을 할 수 없는 용어로 ‘piksari’를 그대로 표기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인물의 어이없는 실수가 극의 전개와 패턴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순간을 일컫는 것으로,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하며 기사 제목을 그렇게 ‘픽사리의 미학’이라고 썼다.-편집자) 같은 맥락에서 방금 이야기한 습격당하는 느낌이 나홍진 영화의 코드라고 할 수 있을까.

=부분적으로 맞다. <곡성>에서 경찰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랑 같이 있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튀어나와 내 목을 물어뜯을 것 같다. 그 장면으로 대변할 수 있는 코드로 어떤 표현을 하고 싶다. 나홍진 영화에 나오는 좀비도 그렇고 계속 인물들이 자기 몸속에서 나오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걸 바라보는 주인공은 이 사람이 나에게 달려들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당장은 ‘검은 에너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좀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찾아내면 꼭 알려주겠다. (웃음)

-2000년 초·중반 폭발적으로 쏟아진 한국 감독들의 에너지가 지금은 다소 사그라진 것 같다. 아직도 우리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홍상수, 이창동 감독을 이야기한다. 이들 이후 해외에서 주목하는 한국 감독들은 누구인가.

=아쉽지만 최근 한국영화가 프랑스에서 개봉을 많이 못하는 게 사실이다. 2000년대 중반에는 개봉을 많이 했었다. 어쨌든 나는 한국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보고 다른 곳에서도 보는 편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만 봐도 알겠지만 나는 단연 나홍진 감독이 그다음 세대라고 생각한다. <추격자>를 봤을 때부터 5명의 앞선 감독(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이창동, 홍상수)과 곧장 연결되는 사람이라고 느꼈고 특히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랑 깊게 연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옥자>(2017)를 칸국제영화제 전에 편집하고 있을 때 그를 만나 <곡성>에 대해 같은 의견을 나눈 일이 있다. 봉준호 감독 역시 나홍진의 ‘검은 에너지’가 2000년대 중반 한국영화의 에너지와 맥을 같이한다고 말해줬다. 또 한명을 더하자면 연상호 감독이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은 나홍진보다는 좀더 상업적이었지만 동시에 분노가 들어가 있고 정치적인 성향도 뚜렷하다. 물론 이런 요소는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 더 강렬하게 발견되지만 한편으론 실사영화에선 그 균형점을 찾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이른바 ‘발굴’이라 생각한다. 서구영화계에 있어 미지의 영역인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알려왔다. 예를 들면 50년대 일본영화나 80년대 중국 5세대 감독들의 영화, 최근 필리핀영화 등을 유럽영화의 주류 무대로 초대해왔다. 2000년대 중반 한국영화가 널리 소개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한국영화들은 어떤가.

=2000년부터 화산이 분출하듯 한국에서 새로운 작가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2007년 이후 갑자기 활동을 정지했다. 개인적으로 2008년 이후로 한국영화들을 보며 의아했다. 독립예술영화라고 명명된 영화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아마추어적이었고 만듦새나 제작, 기획 차원에서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가령 부산국제영화제의 비전부문에 상영되는 독립영화들이 프랑스에 소개되는 한국영화의 거의 전부다. 이들 영화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그 영화들은 그 위치에서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다만 이전에 소개되던 영화들과 비교하면 상업적, 기획적인 부분의 아쉬움이 분명했다. 당장 봉준호만 봐도 알 수 있듯 2007년 이전의 한국영화들은 장르의 상업적 요소와 작가주의라는 주요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놀라운 영화들이었다. 나는 <카이에 뒤 시네마> 안에서도 주로 장르영화와 미국영화를 선호하는 입장이라 그 절묘한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는 한국영화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프랑스에서도 그런 영화는 거의 없다. 장르와 예술은 마치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분리되어 있다. 반면 한국영화는 그 두 가지를 융화시키고 있었다. 마치 1960~70년대 이탈리아영화가 그랬고, 2000년대 미국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2007년을 기점으로 상업적인 측면이 완전히 사라지고 분리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양극단이 완전 나뉜 상황에서 상업영화와 분리된 아마추어적인 영화들이 소개되고 있다.

-아마추어적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예를 들면 쉽겠지만 여기서 특정 영화를 언급하진 않겠다.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곤 있지만 대중적인 화법과는 지나치게 거리가 먼 영화들이 있다. 영화가 너무 길어서 잘라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예산 혹은 제작과정이 부실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영화들이다. 2008년에 한국영화를 접하고 정말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어느 날 갑자기 증발된 것처럼 작가주의와 대중성의 조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마침 공교롭게 한국에서 정권이 바뀐 시기였기에 그런 이유에서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조지 W. 부시 시대에 우파가 강세를 이루는 상황에서 역설적이게도 할리우드에선 좋은 영화들이 쏟아졌다. 부조리한 시대에 반발하는 움직임들이 영화를 통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게 문화의 힘이고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본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권이 바뀌면서 영화가 오히려 죽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 아니면 CJ로 대표되는 기업자본의 변화가 있었던 건가. 외부인의 입장에서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결과적으로 작가와 상업이 손잡고 갔던 상황이 단절된 것이 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그런 이유로 현재 프랑스에서는 한국영화 개봉이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프랑스에서 요즘 개봉되는 한국영화를 보면 이런 현상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주제적으로는 청소년, 젊은 층의 방황과 성장을 소재로 한 영화가 대다수인데 규모가 작은 건 둘째치고 미성숙한 답변들에 그친다는 인상이다. 약간 과장하자면 습작 같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감독들도 영화를 내버려둔 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황해>

디지털 시대에 종이로 된 영화잡지를 만든다는 일

-영화잡지는 어떤가. 외부에서 볼 때 <카이에 뒤 시네마>는 여전히 권위 있는 비평지인데 프랑스에서는 어떤 위상이고 어떤 방식으로 독자와 만나고 있나.

=<카이에 뒤 시네마>는 딱 세 마디로 정리된다. 작고 독립적인 영화전문지다. 2009년까지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소유권자였다. 하지만 <카이에 뒤 시네마>를 좀더 확대시키고 상업적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무리한 시도로 인해 재정적으로도 수렁에 빠졌다. 역설적이지만 2009년 영국계 미디어그룹으로 소유주가 넘어가면서 현재는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 결국 중요한 건 잡지의 편집권이 완벽히 독립적으로 지켜질 수 있는지에 달렸고 다행히 지금은 보장받고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독자층이 굉장히 일정하다. 수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단단한 독자층은 경제가 좋든 안 좋든 늘 <카이에 뒤 시네마>를 읽는다. 물론 프랑스에는 <프리미어>나 <베스트 무비>처럼 훨씬 더 상업적인 영화잡지들도 있고 <르 필름 프랑세>나 <포지티프>처럼 명확한 지향을 드러내는 잡지도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도 영상물 전반을 다루는 종합지이긴 하지만 본령은 어디까지나 영화와 비평이다. 재정적으로는 소규모라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긴 한데, 넉넉하진 않아 취재하러 멀리 가는 건 어렵다. 한마디로 늘 가난하다. (웃음) 그럼에도 상징적인 가치를 논한다면 <카이에 뒤 시네마>가 주는 이름의 무게는 더 커졌다고 느낀다. 다만 블록버스터나 상업영화에 대해 <카이에 뒤 시네마>가 악평을 썼다고 해서 그게 그 영화의 성공이나 흥행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이제 종이로 발행되는 영화잡지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체감하기로는 시네필이란 영역도 점점 축소(또는 변형)되고 있는 것 같다. <씨네21>의 경우 영화주간지로서 비평은 물론 인터뷰, 산업, 문화 일반까지 다루고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어떤가.

=그런 구성이라면 <씨네21>은 <포지티프>에 가까울 것 같다. 상업영화까지 아우르는 종합지다. 다른 잡지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카이에 뒤 시네마>까지 그 영역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카이에 뒤 시네마>가 상업영화를 아예 다루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상징성의 문제에 있어 <카이에 뒤 시네마>는 좀더 영화적인 순수성을 지향한다. 비유하자면 <카이에 뒤 시네마>는 영화를 지키는 하나의 요새나 성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작은 섬에 가까운 것 같다. 태풍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자유로운 공간인 동시에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찾아오고 교류할 수 있는 개방된 섬이다. 한편으론 요즘 시대에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글, 영화에 대한 길고 진지한 글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부응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고자 한다. 물론 폐쇄적이고 엘리트적인 속성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조차 <카이에 뒤 시네마>가 던지는 상징적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령 해마다 베스트 톱10 리스트를 발표할 때가 되면 모든 미디어가 적어도 2주가량은 <카이에 뒤 시네마>가 던진 리스트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인다. 2017년은 TV시리즈인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 더 리턴>을 1위로 꼽았는데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그건 영화가 아니라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고 사유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며 찬성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쪽이건 환영한다. 화두를 던지고 논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나가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 믿는다. 다시 비유하자면 <카이에 뒤 시네마>와 시네필은 영화를 가운데 둔 애증어린 관계다. 하지만 가난한 연인이지. (웃음)

-미국영화에 아낌없는 애정을 보내는 걸로 알고 있다. 최근에 미국영화 감독 중에 주목할 만한 사람이 있나. 개인적으로는 요즘 계속 스티븐 스필버그가 눈에 들어온다. <우주전쟁>(2005)부터 <링컨>(2012), <스파이 브릿지>(2015), 최근 <더 포스트>와 <레디 플레이어 원>으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는 이색적이기까지 하다.

=동의한다. 최근 할리우드도 한국영화처럼 좋지 않은 시기인 것 같다. 반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경우 90년대 이후 회춘을 해서 영화들이 다시 젊어지고 있다. (웃음) 그 다음으로는 그나마 리안 감독을 꼽을 수 있지만 그것도 사실 새롭진 않다. 제임스 그레이는 내가 언제나 사랑하는 감독이다. <겟 아웃>(2017)은 못 봤지만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도 화제가 됐다.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영화의 현재를 보여주는 단면 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제프 니콜스 감독(<테이크 쉘터> <머드>)은 기복이 있지만 늘 흥미롭다.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아메리칸 슬립오버> <팔로우>)도 주목해야 한다. 칸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팔로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차기작인 <언더 더 실버 레이크>는 네오누아르 범죄 스릴러인데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어 기대중이다. 그 밖에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테드> 정도가 생각난다. 사실 지금 미국영화도 마블로 대표되는 히어로물 일색으로 획일화되어서 발굴할 만한 영화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점점 작가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인 것 같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도 이른바 프랑스식 ‘홍상수들’(웃음)이 꽤 있다. 예를 들면 필립 가렐처럼 독립된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감독들 말이다. 물론 미국영화계에도 그런 방식으로 성장 중인 감독들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근래엔 발견하지 못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도 몇년에 한번씩은 미국영화 특집을 마련해왔지만 올해 미국영화 특집을 장식하는 감독들은 폴 토머스 앤더슨,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3명이다. 아직도! (웃음) 그런 면에서 할리우드는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리안 감독은 미국영화 특집할 때 항상 아쉽게 다루지 못하던 감독인데 지금은 그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종종 할 정도다. 아! 지난해 본 영화 중 제프 니콜스의 <러빙>도 빼놓을 수 없다. 아직은 기대주에 가깝지만.

<트윈 픽스: 더 리턴>

누구나 평론가가 될 수 있지만 평론가로 남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당신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어떻게 영화 글쓰기를 하게 되었나.

=영화평론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어려운 세상이 됐다. 애정이 없으면 버티기 어려운 분야다. 나 역시 애정으로 출발해서 애정으로 서 있다. 다만 나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전통적인 흐름과는 다소 다른 길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카이에 뒤 시네마> 출신들은 노골적으로 말하고 다니진 않더라도 영화를 사랑하는 마지막 단계가 여전히 영화를 찍는 일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웃음) 어렸을 때 나는 <카이에 뒤 시네마>가 아니라 <포지티프>를 보면서 영화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샤를 테송을 만나게 되어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글을 기고했다. 테송은 영화를 보는 시각은 물론 모든 측면에서 열려 있는 사람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앙드레 바쟁이 이야기한 영화의 윤리성 등을 바탕에 깔고 시작된 잡지인데, 나는 앙드레 바쟁도 잘 몰랐다. (웃음) 아직도 나는 <카이에 뒤 시네마>로 대표되는, 소위 말하는 영화 순수주의자는 아니다.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사랑하고 한국영화, 아프리카영화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을 탐색하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 누군가가 내게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평론가를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생계를 유지하는 밥벌이가 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평론가로서 사는 게 힘들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재정 여건도 좋지 않고 소규모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기자 중에 월급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부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원고료를 받는다. 물론 원고료의 액수가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원고료를 가지고도 생활이 가능할 정도는 된다. 4년 전부터는 프랑스 전반의 경제 상황이 나빠져서 점점 힘든 상황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위상을 생각하면 믿기 힘든 일이겠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버티기 힘들다. 꼭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카이에 뒤 시네마>는 젊은 기자들의 비율이 언제나 상당하다. 나는 영화평론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일을 시작한 세대에 속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직업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벌이와 소명이 합쳐져서 직업이라면 절반만 직업이다. (웃음) 시네필로서 어려서부터 영화평론을 하겠다는 친구들에게도 지금처럼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선뜻 권하긴 어렵다. 평론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과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과의 경계도 불분명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평론가가 될 수 있지만 평론가로 남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이 대부분 젊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건 최근의 현상은 아니다. 원래 그랬다. <카이에 뒤 시네마>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위엄 있는 이미지를 연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기자들은 대부분 25살에서 40살 정도다. 항상 젊은 기자들이 글을 쓴다. 그건 누벨바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20년 가까이 버틴 나는 매우 연로한 축에 속한다. (웃음) <카이에 뒤 시네마>는 이를테면 거리의 학교다. 글을 쓰고 싶다고 문을 두드려서 시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여기서 영화를 사랑하는 법을 익힌다. 말하자면 <카이에 뒤 시네마>의 글은 모두 열정과 욕망의 결과물이다.

-한국도 지면이 줄어서 시네마톡 등 점점 말로 하는 비평이 느는 추세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 젊은 기자들이 지속적으로 들어온다면 경력이 오래된 기자들은 <카이에 뒤 시네마>를 나간 뒤 어떤 일들을 하나.

=프랑스에서 평론을 하고 있다는 건 이미 다른 일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퇴사한다는 개념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어떤 자리에 있건 영화 글쓰기는 계속된다. 프랑스에선 중·고등학교에서 영화교육을 의무적으로 하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영화 교육을 자주하는 편이다. 고전영화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최근 이슈들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다. 최근에 제프 니콜스 감독에 대한 열정적인 토론을 한 기억이 난다. 편집위원 중에는 대학교수도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관객과의 대화도 꽤 많다. 다만 이런 모든 행위는 영화 글쓰기의 연장에 있다. 결국엔 나중에 글로 정돈되어 표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방문을 계기로 <곡성>에 대한 긴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너무 즐겁다. 아, 물론 영화평론만을 하는 이들도 있다. 본인의 의지가 있다면 아직 프랑스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당신에게 영화를 글로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진정한 비평은 무엇일까. 객관적이어야 할까 아니면 주관적이어도 좋을까. 평가란 배우의 연기, 미장센, 촬영, 시나리오 등의 요소를 객관적으로 조합하여 합산하는 작업일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는 영화비평은 정확히 그 정반대의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영화를 통해 감정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이야말로 영화비평의 근간이다. 개인의 감상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감상들이 발현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영화를 통해 체험한 것들을 타인과 나누기 위함이다. 나는 20년 넘게 평론을 해오고 있지만 그걸 분석이나 해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가능한 한 어릴 적 스크린을 처음 마주했던 느낌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 순수한 기쁨과 체험을 공유하는 게 영화를 굳이 글로 옮기고자 하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들 때는 누가 내 글을 읽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다. 대답 없는 메아리 같다고 느낄 때 허전하고 불안하다. 영화 글쓰기에 있어 당신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차례로 설명한다면.

=<카이에 뒤 시네마>에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누벨바그 때 평론을 하던 사람들 전원이 감독이 되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감독이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다행히 나는 비교적 그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롭다. (웃음) 영화 글쓰기는 무언가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히 하나의 문학적인 활동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시대가 바뀌면서 짧고 간결하고 쉬운 글쓰기가 미덕처럼 자리 잡고 있는데 쉽다는 것과 감상을 제대로 나눈다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반대의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한명이다. 어린 시절 영화를 보고 느낀 즐거움, 그 환희를 운동장에서 친구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평론의 풍경이다. 샤를 테송이나 세르주 다네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에 대해 글을 쓰다보면 결국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다. 아까 언급한 ‘발견’의 차원에서 보자면 영화를 만난다는 건 단순히 영화 한편을 만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 영화가 만들어진 환경, 둘러싼 문화적 저변까지 함께 경험하고 새로 발견하는 것이다. 이번에 <곡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처럼 새로운 영화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여행할 수 있어 즐겁다. 힘들어도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그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이번 인터뷰가 내겐 새로운 세계를 만난 여행 같았다.

=나도 그렇다. 생각을 나눈다는 건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해줘서 즐거웠다. 다음에는 내가 질문자가 되어 이런저런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소망한다. 이렇게 긴 인터뷰는 오랜만이다. 말을 하는 건 쉽지만 그걸 다시 문장으로 옮기는 괴로움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말보다 글이 사랑스러운 이유가 그 지난한 과정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부디 행운을 빈다. (웃음)

<빌리 린의 롱 하프타임 워크>

뱅상 말로사의 2017년 베스트5

무순. <빌리 린의 롱 하프타임 워크> 리안 감독, <잃어버린 도시 Z> 제임스 그레이, <그 후> 홍상수, <잔다르크의 어린 시절> 브루노 뒤몽, <러버 포 어 데이> 필립 가렐. “2017년에는 영화를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결국 사랑하게 되는 건 제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제임스 그레이는 여전히 미국의 정신을 그린다. 필립 가렐과 홍상수는 감독의 이름 자체가 이미 고유명사다. <잔다르크의 어린 시절>을 연출한 브루노 뒤몽은 지극히 프랑스적인 것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리안 감독의 <빌리 린의 롱 하프타임 워크>는 여러모로 저평가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다룬 이 영화를 보며 미국에 리안 감독이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

<포지티프>

프랑스의 영화잡지들

프랑스는 잡지의 천국이다. <프리미어> 등 대중적인 잡지부터 <카이에 뒤 시네마> <포지티프> <르 필름 프랑세> 등 각자의 색깔을 갖춘 잡지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 2001년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 <르몽드>를 비롯한 신문 기반 매체는 물론 프랑스 잡지들에도 크고 작은 변화를 겪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 중이다. 1988년 <르몽드>가 인수했던 <카이에 뒤 시네마>는 2009년부터 영국계 미디어그룹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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