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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 밟는 배우 유태오 인터뷰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8-04-17

구소련 저항의 상징, 빅토르 최가 되기까지… 홀로 우주에 다녀온 기분이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 라인업이 발표됐다. 경쟁부문의 이창동 감독의 <버닝>, 미드나이트 스크리닝부문의 윤종빈 감독의 <공작>과 함께 눈길을 끄는 이름이 또 하나 있었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러시아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Leto, 여름)의 주연배우로 초청된 한국 배우 유태오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스튜던트>(2016)로 제69회 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후, 러시아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 신진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레토>는 1990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구소련의 전설적인 록가수이자 저항의 상징인 한국계 가수 빅토르 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그룹 키노로 활동하던 빅토르 최의 초창기 시절인 1981년. 빅토르 최를 둘러싼 삼각 로맨스를 바탕으로 젊음, 자유, 저항의 정신을 탐구한다. 유태오는 2천명의 배우들 중 주연인 빅토르 최 역할로 발탁됐다. 1981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난 그는 뉴욕과 런던에서 연기를 공부한 후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씨네21>은 지난겨울 <레토>의 러시아 촬영현장을 방문했다. 촬영현장 기사에 앞서, 배우 유태오와 가진 인터뷰를 공개한다.

-지난해 8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촬영 도중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자신이 운영하는 극장 고골센터의 ‘공금 횡령’으로 연행되면서 촬영에 난항이 겪은 프로젝트였다. 실상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그간 반정부적인 성향의 작품들을 연출해 푸틴 정부에 밉보인 탓에 행해진 조치라 국제적으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한편 감독에게 지지를 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새벽에 호텔에서 연행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갑자기 스포트라이트가 내게 오더라. 호텔 앞에 파파라치가 깔렸다.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뒷문으로 나갔다. 누가 따라오는지 항상 긴장됐고, 배우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줬다. 밖인데도 감옥에 갇힌 것 같은 상태였다. 위험한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생각해서 끝까지 일에만 집중하고 끝내자 했다.

-현재까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가택구금 중인 걸로 알고 있다. 남은 촬영은 어떻게 마무리됐나.

=대본과 감독님의 노트 등이 있어서 나머지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현장 연출은 감독님 지인인 다른 감독님이 대행했다. 그날 찍은 분량을 변호사와 상의하고 다시 찍고 그 과정을 거쳐서 남은 분량을 찍었다. 현재는 4월 18일에 2차 공판이 있어서 기다리는 중이다. 감독님은 하루 두 시간 집 근처를 산보하는 것 외에는 활동을 하지 못한다. 집 안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모든 게 감시되고 있다. 최근 감독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안타깝게도 임종을 지키지 못하셨다.

-구소련의 영웅 빅토르 최에 관한 음악영화다. 시대에 저항한 영웅으로 지금까지 러시아의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다. 빅토르 최의 어떤 면을 그리는 영화인가.

=널리 알려진 강한 로커의 이미지가 대표적인데 그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1981~86년까지 그의 음악 활동 초기를 돌아보면 디스코 팝이나 데이비드 보위 스타일의 음악도 발표했다. 해외 음악 전반에 관심이 많아 모든 걸 흡수하고, 그걸 토대로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한 뮤지션이었다. 80년대 초반은 그 음악적 시도를 꾀하는 출발점이고, <레토>는 그가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강한 자아와, 20대 청년의 순수한 사랑을 동시에 표현하는 영화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2천여명의 배우들을 검토한 끝에, 촬영 시작 불과 3개월 전에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어떤 지점에서 빅토르 최로 적역이었다고 생각하나.

=감독님이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배우들을 찾아다닌 걸로 알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뿐 아니라 미국, 한국 에이전시 등을 거쳐 2천명 정도를 만났다고 들었다. 나는 독일 쾰른에서 광부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교포 출신이다. 배우들 중 미국, 호주, 일본 교포들은 많은데 나는 그런 면에서도 소외감이 좀 있었다. 또 유년기에는 유럽에서 동양인으로 지내면서 표현하지 못한 응어리와 배우로서, 교포로서 느끼는 불확실함 같은 것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빅토르 최에게서 내가 본 것도 그런 멜랑콜리함이었다. 빅토르 최는 한국에서도 구소련에서도 거친 로커이자 남성적이고 자유로움의 상징으로 통하지만, 젊은 시절 그는 시를 좋아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뮤지션이기도 했다. 그런 해석이 감독님과 통한 것 같다. 대부분 빅토르 최의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그와 외모가 비슷한 배우를 찾는데, 키릴 감독님은 빅토르 최와 영혼이 비슷한 배우를 찾고 싶었다는 말을 들었다.

-캐스팅 과정이 극적이었다. 원래는 다른 배우를 추천해 달라는 말에, 스스로 ‘셀프 추천’을 했다고 들었다.

=지난해 4월쯤 한국에 사는 고려인 친구가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데 괜찮은 20대 배우가 없느냐”고 물어왔다. 영화를 하는 친구라, 러시아 프로덕션에서 의뢰가 온 것 같다. 아는 감독님께 이 이야기를 했더니 “태오 너가 직접 한번 도전해봐”라고 하시더라. 마침 그때 머리를 펌을 했었고, tvN 농구 예능 프로그램 <버저비터>를 막 끝낸 후라 살이 좀 빠져 있었다. 카페에서 나오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봤는데, 얼핏 나도 빅토르 최의 느낌을 살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러시아쪽에 사진을 보냈더니 영상을 더 보내달라고 하더라.

-지하 주차장에서 오디션 영상을 제작해 보냈다고 들었다.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옛날부터 작사, 작곡한 노래들이 있었다. 집 지하 주차장에서 빅토르 최 느낌이 나는 의상을 입고 내가 해석한 빅토르 최의 느낌을 담아 노래들을 불러서 보냈다. 일주일 지나고 ‘오디션 보러 와달라’는 답변이 왔다. 그길로 러시아로 가서 4시간 넘게 오디션을 봤다. PD님이 공항에 데려다주면서 “네가 될 거 같다” 하고 언질을 주시더라.

-실존했던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부담이 컸겠다. 특히 러시아어 연기나 빅토르 최의 곡을 노래하는 등 마스터해야 할 것이 많은 도전이었다.

=마침 직전에 백남준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티비 첼로>(2017)를 연기하면서도 느꼈는데,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 크더라. 첫 촬영이 공연 장면이라 450명의 러시아인이 나를 쳐다보는데, 그 450명이 자신들의 머릿속에 그리는 빅토르 최가 있지 않나. 전날부터 잠이 안 오더라. 혼자서 우주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웃음) 영화 속의 9곡을 마스터해야 했다. 무엇보다 언어를 습득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촬영 시작 전 3주 동안 마치 비즈니스 일정을 소화하듯, 매일매일 스케줄표를 관리하면서 연습과 촬영에 임했다. 오전에는 스피치 레슨을 받고, 운동하고, 노래 연습을 했다. 나머지 시간은 호텔 방에 갇혀 기계가 된 것처럼 임했다. 1분1초도 허투루 쓰지 않을 정도로 촬영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여배우들>(2009)을 시작으로 <자칼이 온다>(2012), <일대일)>(2014) 등 한국영화에도 참여했는데,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최근엔 해외 프로젝트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베트남영화 <비트코인 하이스트>(2016), 타이영화 <더 모먼트>(2017), 할리우드영화 <이퀄스>(2015)를 비롯해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된 <서울 서칭>(2015)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하나로 정의하기 힘든 독특한 커리어를 쌓고 있다.

=한 에이전트를 통해 이루어진 프로젝트도 아니고, 돌이켜보면 나도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웃음) 하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다.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플랫폼이 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프로젝트들이 더이상 한국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공동제작 형태도 많아졌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의 활동이 타이밍이 잘 맞은 게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나를 두고 ‘교포’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만, 해외에 가면 ‘한국 배우’라는 레이블링을 한다. 장단점이 있지만 나로서는 그런 선입견을 깨고, 배우로서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내 정체성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의 작업에도 충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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