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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장 방문기
글·사진 이화정 2018-05-03

칸국제영화제 초청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 러시아 촬영장

오는 5월 8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라인업이 발표됐다. 경쟁부문의 이창동 감독의 <버닝>,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의 윤종빈 감독의 <공작>과 함께 눈길을 끄는 작품이 또 한편 있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러시아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Leto)다. <레토>는 러시아 저항의 상징인 로커 빅토르 최를 그린 작품으로, 빅토르 최 역할에는 한국 배우 유태오가 캐스팅 됐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스튜던트>(2016)로 제69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후, 러시아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 신진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8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촬영 도중, 그는 운영중인 고골극장의 공금횡령 건으로 체포된 후 아직까지 가택구금 상태다. 지난해 11월, 촬영이 중단된 이후 극비리에 남은 회차의 촬영이 이루어졌다. <씨네21>이 촬영차 러시아로 입국하는 배우 유태오와 함께 그 현장을 찾았다. 급박하게 이루어졌던 현장의 기록을 고스란히 옮긴다.

“이번 촬영은 절대 극비다.” 지난해 11월 모스크바 국제공항 검색대를 배우 유태오와 함께 통과하면서 그가 다시 확인의 말을 덧붙였다. 옅은 미소 사이로 긴장과 설렘의 표정이 역력해 보인다. 지난 8월 유태오가 촬영 중이던 영화 <레토>(Leto)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촬영 도중 경찰에 연행됐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운영하는 러시아의 컨템포러리 극장인 고골센터의 공금을 횡령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호텔로 복면을 쓴 경찰이 들이닥쳤고, 가택구금된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올 칸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 초청이 이루어진 현재까지 무려 9개월여간 구금 상태다(지난 4월 19일 열린 2차 재판에서 가택구금은 7월로 연장됐다). 화장실을 제외한 집 안 모든 곳에 CCTV가 설치되었고, 하루 2시간 1km 반경 내 산책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안타깝게도 그사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가 양성 중인 고골센터의 배우들도 경찰의 심문을 피할 수 없었다.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구속을 둘러싸고 현재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연극·영화계 인사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감독의 전작 <스튜던트>의 러시아 정교를 향한 맹목적인 맹신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 <레토>의 차기작으로 감독이 성소수자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푸틴 정부에 밉보였다는 점이 구속의 진짜 이유라는 해석이 앞섰다.

199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28살에 요절한 러시아의 영웅, 로커 빅토르 최. 그의 이른 죽음을 두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타살설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사회주의체제의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는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힐 경우 재판에 회부되거나 활동이 정지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이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땅에서 표현의 자유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걸까. 억측일지 모르지만 변화의 시대, 자유와 저항의 기수로 각인된 빅토르 최를 소재로 한 영화 촬영 도중, 현 푸틴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출자가 구속되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어떤 상징처럼 다가왔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구속으로 촬영이 중단되자 현지에서는 빅토르 최를 연기하는 주연배우 유태오를 향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앞선 촬영 내내 영웅 빅토르 최를 연기한 배우가 완전히 베일에 싸여 있던 터라 숙소 앞에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파파라치들이 진을 쳤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니 11월의 모스크바 입국은 그 여름 이후, 남은 촬영을 위한 비밀 촬영 일정이었다.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현지 취재를 요청했고 오랜 기다림 끝에 러시아 프로덕션에서 취재를 와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모스크바로 가기 전, 구금된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현장에 오지 못한다는 것, 대신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동료 연출가가 합류해서 어떻게든 남은 막바지 분량을 찍는다는 언질을 받았다. 유태오의 입국은 <레토> 촬영이 아닌, 다른 단편영화 촬영으로 위장되었다. 감시에 대비해 SNS를 통해 현장을 미리 알리는 것도 전면 금지되었다. 흥미로운 취잿거리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는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1980년대 초반. 모스크바를 재연한 현장.

빅토르 최를 현재로 소환하다

입국 후 바로 유태오는 빅토르 최의 긴 장발 헤어스타일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돌입했다. 머리카락을 한올한올 붙여야 하는 작업이라 장장 7시간이 소요됐다. 반나절의 헤어 작업이 끝나자 유태오에게서 ‘이소룡을 흠모해 표정 연기나 무대 매너까지 닮았던’ 빅토르 최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촬영 때 빅토르 최의 무덤을 찾았던 그는 이번 촬영에 앞서, 빅토르 최의 추모벽이 있는 아르바트 거리를 방문하자는 제안을 했다. 차를 태워준 기사가 신기한 듯 그를 쳐다보기에, “빅토르 최를 아냐?”고 물어보았다. 30대 후반쯤 됐을까? “어릴 때 너무 좋아했다”며 유태오를 향해 그와 닮았다는 말과 함께 수줍게 빅토르 최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지금도 러시아 곳곳에는 빅토르 최의 기념물과 그를 기념하는 상품이 넘쳐난다. 그는 죽었지만 러시아인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영웅이었다. 유태오 역시 빅토르 최를 연기하면서 “러시아인 모두에게 각자의 기억 속 빅토르 최가 있을 텐데, 자칫 잘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컸다고 한다. 그 두려움은 영화의 또 다른 캐릭터인, 빅토르 최의 연인이었던 나타샤의 실존 인물을 만나면서 조금이나마 해소됐다. “나를 보고서 빅토르와 영혼이 닮았다는 말을 해주더라. 그제야 안심이 되더라.”

빅토르 최의 기억을 안고 도착한 아르바트 거리 추모벽. 영하의 날씨. 눈발이 휘날리는 거리를 지나 유명을 달리한 영웅 빅토르 최를 기리는 그래피티 앞에,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영혼을 노래할 배우 유태오가 함께 있는 모습에 사뭇 숙연해졌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노래해. 우리가 당신의 노래를 들었을 때 살아 있어’라는 벽면의 글귀를 띄엄띄엄 읽으며 그가 빅토르 최를 위해 벽면의 재단에 담배 한 개비를 올려놓았다. 마침 빅토르 최의 탄생 55주년이 되는 해라, 일년 내내 아르바트 거리에서는 영웅을 기리기 위한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몰려와 기념촬영을 하느라 왁자지껄 한 틈을 타, 잠깐 불러왔던 빅토르 최의 영혼을 놓아주고 자리를 떴다.

아파트 공연장에서 배우와 스탭들이 동선을 논의 중이다.

영웅보다는 청춘에 집중하는 영화

확실한 촬영 스케줄이 미리 주어지지 않았지만, 감독이 없는 제작진은 그 부재를 실감한 듯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촬영팀이 대절한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오래된 아파트였다. 2018년 모스크바 거리의 아파트지만 낡은 계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방마다 1980년대 구소련의 아파트를 재연할 집기들이 가득했다. 구식 문양이 프린트된 벽지는 가까이서 보니 미술팀이 하나하나 붓으로 그린 것들이었다. 오래된 가구와 조명들이 밤을 틈타 촬영장으로 하나씩 옮겨졌다. 서구에서 들여온 록음악이 인정받지 못하던 구소련 시절, 당시 로커들에게 음향시설을 갖춘 개인 아파트 공연장은 음악 활동을 전파할 중요한 장소였다. 그러니 이 장면은 빅토르 최와 젊은 뮤지션들의 정체성을 설명해줄 중요한 촬영이었다. 이날은 촬영 재개에 앞서 영화에 출연하는 주요 배우들이 모두 모여 동선을 맞춰보는 시간이었다. 촬영현장에 와서 동선을 파악하고 영감을 얻는 것은 연극과 영화 작업을 병행하는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작업 스타일이다. 오늘 동선은 프로듀서가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 배우들이 마치 비밀 운동을 하는 동지라도 된 듯 조용히 아파트로 들어왔다. 지난여름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난 후 함께 모이는 첫 만남, 모두가 상기된 얼굴로 포옹을 하느라 바빴다.

유태오(뒷모습)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오른쪽) 감독이 함께한 촬영장 모습.

“영화가 마무리될 수 있을지 매 순간 불확실한 시간이었다.” 세레브렌니코프 감독과 전작 <스튜던트>부터 함께한 프로듀서 일리야 스튜어트가 감흥을 전한다. 앞으로 남은 4회차 촬영에 그는 지난 시간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빅토르 최가 속한 그룹 키노의 음악은 반항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키릴 감독과 나도 그 정신에 관심이 컸다. 지난 15년 동안 러시아의 선배 프로듀서들도 빅토르 최와 키노밴드 소재의 영화를 만들고자 기회를 엿봐왔지만 시기가 잘 맞지 않았다.” 그러던 얼마 전 빅토르 최와 활동하던 이가 에세이 형식의 단편을 인터넷에 공개했고, 영화는 그 단편을 바탕으로 발전시킨 이야기다. 영화의 제목 ‘레토’(Leto)는 러시아어로 ‘여름’을 뜻한다. 1980년대 들어 소비에트 러시아로 서방 세계의 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언더그라운드 록 신에서도 레드 재플린, 데이비드 보위 등 서구음악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1981년 여름, 빅토르 최가 속한 그룹 키노의 초창기 활동을 바탕으로, 빅토르 최와 그의 음악 멘토인 마이크 그리고 그의 아내 나타샤 사이에서 펼쳐지는 삼각관계를 그린다. “반정부적인 영화가 아니라 멜로영화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빅토르 최와 그와 함께 음악에 열중했던 청춘들을 그리고자 한다. 영웅으로 그를 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영웅이 탄생했느냐에 집중하는 것이다.” 빅토르 최의 주변 인물들은 여전히 대다수 생존해 있고 그들을 통해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의 삼각관계 자체가 당시 사회에서 록음악이 가진 상징적인 메커니즘을 보여줄 좋은 재료가 될 것이라고 봤다.” 촬영이 중단된 후 그들이 보낸 가진 고통스러운 시간과 다시 재개된 촬영으로 인한 흥분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현장이었다.

구금된 감독, 긴박한 촬영현장 분위기

밤의 ‘모의’가 끝난 후, 다음날은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차로 1시간30분가량 떨어진 서민들의 주거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을 향했다. 구금된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을 대신해 동료감독이 촬영을 진두지휘하는 현장이었다. 이미 대본과 감독의 촬영노트가 있어서 그걸 바탕으로 촬영이 진행되지만 ‘아마도 집 안에서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유일한 공간인 화장실에서 디렉팅 사항을 전달하지 않을까’라는 추측만이 오갔다. 촬영장은 이미 1980년대 군의료기관으로 변모해 있었다. 군인들과 당시 복장을 한 남녀노소가 촬영장을 오가는데, 스크린이 없는 데도 눈앞에 스크린이 있는 것 같은 미술과 의상 등의 정교함에 감탄이 앞섰다. 당시 로커들은 러시아 전쟁으로 강제징집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빅토르 최도 입대를 피하기 위해 정신병원 입원을 한 전적이 있을 정도였다. 이날 촬영 장면은 함께 활동하는 밴드 멤버가 군대에 징집되어 신검을 받으러 온 장면이었다. 뒤이어 선 그들 앞의 아주머니가 아들이 징집될까봐 노심초사하며 “얘가 끌려가면 안 되는데…”라는 걱정 어린 대사를 말하고 있었다. 건물 안에서는 신검을 받으러 온 청년 보조출연자들이 탈의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여름 장면을 한겨울 냉방도 안 되는 폐건물에서 진행하다보니 배우들도, 스탭들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밥차에 마련된 따끈한 보르시(러시아식 수프)를 먹으며 촬영장의 추위를 녹였다. 모니터가 있는 진두지휘 막사부터 분장 스탭의 방까지 현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눈에 담았다. 보조출연자가 다가오더니, “(유)태오의 나라에서 왔냐?”며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그들 역시 빅토르 최의 분장을 한 유태오의 모습이 신기한지 쉬는 시간에 사진 촬영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다들 거절당했다. 제작진에 의하면, 지난 촬영에서 빅토르 최의 모습을 미리 공개하려는 요량으로 보조출연자로 신분을 감춘 채 들어와 사진을 찍어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빅토르 최가 살았던 그 시절, 대중은 새로운 시대의 영웅을 필요로 했다. 빅토르 최의 자유분방한 스타일, 카리스마 넘치는 음색, 그리고 시적인 가사들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출구를 갈구하던 이들을 대변해주는 정신이었다. 빅토르 최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는 시대의 영웅이 되었고, 그리고 영웅인 채로 생을 마감했다. 이토록 뜨껍고, 그래서 한기가 드는 현장 방문이 다시 또 있을까. 그렇게 전무후무한 촬영현장을 경험하고, 남은 촬영이 무사히 진행되길 기원하며 다시 모스크바 시내로 돌아왔다. 영화가 완성되고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면, 그때 석방된 감독과 함께 만나자는 인사를 했지만, 기사를 작성하는 이 시점까지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여전히 가택구금 중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청춘멜로영화’라는 수식어를 붙인 <레토>에서 자꾸 정치적 함의를 찾는 건 아닐까 싶지만, 이 영화가 가는 길을 일단은 주의깊게 지켜보고 싶다.

러시아 저항의 상징 빅토르 최는 누구?

록그룹 키노 멤버로서 변화하는 시대를 대변한 러시아의 국민영웅. 1962년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술학교 시절 우연히 서구 음악을 접하고 밴드를 결성한 그는 1982년 결성한 키노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서구 문화 유입이 막 이루어지고 자유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던 당시 펑크록 스타일 음악에 문학적인 감수성이 뛰어난 빅토르 최의 가사는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반전을 노래한 <혈액형>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을 비롯해 자신의 생활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신경안정제> <나는 보일러공이 되고 싶어> 등의 대표곡을 남겼다. 배우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이글라>(1988)가 자국에서 흥행과 함께 독일 뉘른베르크영화제 등에 초청되어 호평받았다. 소련의 영화잡지 <소비에트 스크린>은 빅토르 최를 ‘올해의 배우’로 선정하기도 했다.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그때 빅토르 최는 1990년 8월 휴가차 들른 라트비아공화국 리가에서 자동차 사고로 요절, 타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팬들이 따라 자살을 시도했고, 다섯명의 팬이 목숨을 잃었다. 사후 빅토르 재단이 설립되고, 러시아 전역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겨났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중반 정지영 감독 연출, 신성우 주연으로 빅토르 최의 삶을 다룬 영화를 만들려고 했으나 불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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